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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Jul 09. 2020

분노가 내 몸에서 나가질 않는다

PMS 정말 싫다

생리 주기가 3-4주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사는 걸까. 

생리 주기가 5-6주 정도 되는 나도 PMS와 생리통 때문에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원래 생리통과 PMS가 이렇게 심한 편은 아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생리를 초등학교 6학년 정도부터 시작했는데,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오히려 생리통이 적은 편이었고 PMS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가끔 스트레스가 많을 때 생리통이 왔고, PMS보다는 차라리 생리 끝나고 나서 복통이 왔다. 그러나 작년부터 온갖 PMS 조절 식품 및 약, 복통약을 먹어도 처치가 안 될 정도로 고통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약이 어느 정도 고통을 완화해주기는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사라지지를 않으니 PMS고 생리통이고 내 몸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나는 심해진 PMS와 생리통의 원인이 곧 내 분노와 무력감과 우울과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온몸을 꼬고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벅찬 감정이 몸에서 나가질 못하니, 몸이 피를 토해낼 때마다 이런다. 여러 무기력감이 나를 싸고돈다. 코로나 19로 인해 위축된 경제 상황 속에서 계속 일을 구해야 하는 취준생의 무력감, 계속 면접을 다니면서도 결과가 없는 무력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날 못 견디게 만드는 건 그런 무력감이 아니다. 그런 무력감은 힘들어도 지나갈 것이다. 나를 못 견디게 하는 무력감은 내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무력감이다. 면접에서 불합리를 겪을 때의 무력감. ‘경력 있는 신입’을 원하는 사람을 만날 때의 무력감. 이 상황에서 가족과 부딪힐 때 느끼는 무력감. 


그러나 내 PMS를 더 심하게 하는 무력감은 이 땅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없다는 무력감이다. 계란 한 판을 훔친 사람과 동일한 징역형을 살게 된 손정우가 미국 송환되지 않고 풀려났을 때의 무력감. 이 나라의 유력한 정치인 두 명이, 나의 가치가 가까웠다고 믿었던 두 사람이, 내가 가까이서 본 적이 있었던 두 사람이 그 가치를 배신했음을 알았을 때이다. 나는 김지은 씨가 JTBC 뉴스룸에 나와 인터뷰할 때 유튜브 실시간 댓글로 지나갔던 모욕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김지은 씨에 대해 감히 ‘불륜’으로 치부했던 말들을 잊지 못한다. 안희정 전 지사를 가까이서 봤을 때, “여러 가지 의미로 조심하는 정치인이다”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 ‘조심’이 그토록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를 않는다. 


여성 정책 선구자, 성폭력 피해자 변호사로서 이름을 날리고 겨우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안부 문자를 전했던 그는 어떠한 가. 그 사람들이 그렇게 오랜 기간 권력형 성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라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조심’하는 이들은 흔히 비겁하기 마련이다. 한 사람은 코로나 시국 이래 건재함을 드러내는 장례식을 옥상에서 치렀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범죄에 대한 그 어떠한 책임 없이 사라졌다.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어떠한 시스템도 죄를 지은 자를 벌하지 않는다. 


이러한 나라에서 여성으로서 피 흘리는 일은 저주일 테다. ‘가임기 여성 지도’ 같은 쓰레기를 만들고 ‘저출생’이 아닌 ‘저출산’을 해결하겠다는 심보를 가진 나라에서 피 흘리는 여성으로 살아남기란 그 자체로 기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피를 흘리는 내 몸이 가엽고도 싫다. 참으로 쓸모없는 피다. 6개월짜리 아이로 디지털 성폭력 영상을 만든 자에게 겨우 징역 1년 반을 선고하는 나라에서 출산을 함부로 상상할 수 있는가? 내 아이가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먼저 하게 되지 않을까. 출산보다는, 언젠가는 입양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조차도 이러는데. 


분노가 몸에서 나가질 않으니 아프다. 약으로 몸 상태를 조절하는 데도 그렇다. 변하기에는 너무 힘든 세상인 걸 알고 있으니 쉽게 빠져나가지를 못한다. 무력감으로 온몸이 갉아 먹히는 기분이다. 


그러나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오늘 누군가에게 들은 대로 “살아남은 자에 대한 배려”를 마음으로 새기고자 한다. 교보문고에서 완판 된 <김지은입니다> 리스트를 보며, 악다구니로 살아남는 영화 <B급 며느리>를 보며. 살아남은 자를 위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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