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녕 Mar 26. 2020

상처 받는 건 싫은데 익숙해져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그게 왜 내 잘못이 되는데


지난 연말에 사주 보러 갔을 때 그랬다. 2019년은 태양 사주인 내가 그냥 물도 아니고 진흙탕에 잠겨 있는 해라 힘들었고, 2020년은 그래도 관운 들어와서 취직될 테니 걱정하지 말라 그랬다. 정확히는 2월부터 좋아질 거라고 했는데… 언제 좋아집니까. 오늘도 벼락 맞았는데요. 


어제 오후에 온 면접 전화를 받았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2초 만에 전화가 끊어졌다. 그 이후로 5번 넘게 전화를 다시 걸고 메일을 보내도 아무 대답이 없다가, 오늘 아침에서야 담당자와 겨우 전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전화를 일부러 끊었다고 판단되었기에 면접 명단에서 벌써 제외되어서 오늘 면접을 볼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문자와 이메일로 합격 통보를 하는 세상에, 불합격자에게도 모두 문자와 이메일 통보를 하는 다른 회사들과 너무 차이 나는 것 아닌가. 설사 내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끊었을 지라도 얼마든지 다시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낼 수 있는데, 그게 귀찮아서 누군가의 면접 기회를 박탈한다고? 


내가 지원한 자리가 정규직이 아니라서 그럴 수 있다. 

내가 그저 취준생이라서 그럴 수 있다.

내가 20대라 그럴 수 있다. 

그렇다고 한들 그 모든 게 내 잘못이 아닌데,

왜 미안하다는 말 하나 없이 그게 내 잘못이 되어야 하지?


생각보다 아프지는 않아


불행 중 다행이라면, 상처 받아도 예전만큼 아프지는 않다. 취업, 언론고시를 작년부터 준비하면서 하도 이상한 상황들을 많이 접해서 그런가. 그게 내가 아프지 않거나 상처 받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고통과 상처가 익숙해질 뿐이다. 고통과 상처가 가장 익숙해지면 안 되는 직업을 준비하는데, 그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끊임없이 무뎌져야 한다. 작년에 충분히 무뎌지지 않아 온몸이 아팠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지금은 약과 정신력과 주변 사람들로 버텨나가고 있다. 그래서 오늘 황당한 일을 겪었는데도 생각보다는 화가 안 났다. 조금은 포기해서 그런가 봐. 


오히려 엄마가 미친 듯이 화를 냈다. 

유녕아, 너 화 안 내니?

화 안 나는 거 아닌데. 요즘 더 화낼 기운도 없어서 그러는 건데.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그래도 요즘 날 버티게 하는 건… 희망이다. 이 터널에 적어도 끝은 있을 거라는 믿음. 어느 구역에서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그렇게 안 좋아질 것 같던 엄마와의 관계도 나아지고, 가족사도 조금은 정리되겠지. <스토브리그>와 <하이에나>를 보며 드라마에 가지는 희망. <시사인> 읽기 프로젝트를 하루에 한 번씩 인증하며 나 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보상들. 그래도 좋아하는 옷과 귀걸이를 택배로 받을 때의 설렘. 


그런 것들이 날 버티게 해. 


그러다 보면, 쨍-하고 해 뜰 날 오는 거 아니겠어?


매거진의 이전글 가끔 내 발로 기회를 차 버릴 때가 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