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을 준비가 안 된 거야
※ 이 글은 망한 면접 썰을 푸는 글입니다. 굳이 수치스러운 기억을 푸는 글이니 그냥 지나치셔도 됩니다.
지옥 같던 연말 연초가 대충 지나가고 나서의 일이다. 몸과 마음이 최악으로 망가진 상태였기에 생각했던 만큼 각종 모집에 많이 지원을 못 했다. 온갖 병원에 가고 나서 겨우겨우 하나의 공고만 지원하는 데 성공했다. 그나마도 원래 있던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겨우 붙여 넣고 조금씩 수정해서 완성했다. 몸 컨디션을 회복하느라 집에만 박혀 있다가 서류 발표가 나는 것도 까먹고 있었다. 겨우 집에서 나와 교보문고에 왔는데, 서류 발표 문자 보니 겨우 생각이 났다. “당연히 떨어졌겠지.”라는 마음으로 확인했는데….?
붙었다.
처음에 눈을 의심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제정신으로 쓴 서류가 아니었다. 그런데 붙어요?
이것보다 공들여 쓴 서류도 떨어질 때가 꽤 있었는데.
심지어 1 지망도 아니고 그냥 경험 삼아 썼는데?
(참고로 1 지망이었던 친구는 서류부터 떨어졌더라)
그렇게 이틀 만에 면접을 준비해야 했다.
(그것도 8시 40분까지 가야 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그 면접이 잘 진행됐으면 좋으련만… 인생은 실전이다. 안타깝게도 그러지는 못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화장을 하고, 익숙한 5호선에서 낯선 역에서 내려 면접 장소에는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건강 때문에 커피는 요즘 일부러 피하지만, 그날만큼은 스타벅스에서 진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로비로 향했다.
놀랍게도 면접을 보는 곳은 방송국 중에서도 좋은 라운지에 속했다.
M씽크 시절 항상 행사하던 2층 라운지가 생각나는 곳이었다.
(노파심에 말하는데 M 본사는 아니었다.)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거였다.
“공채 면접이야 사람 너무 많다고 치고… 인턴 면접을 이런 곳에서 본다고?”
왜냐하면 내가 면접 보았던 곳들은… 대부분 인턴 면접에서 회사의 좋은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그랬고. 여기서부터 면접 잘 봐야겠다는 생각을 더 했어야 했는데.
브런치 영화 리뷰 작가 타이틀 떼자
면접 안내하시는 분이 면접관이 남자 3분이라 그래서 조금 긴장을 했다. 그런데 다시 확인했다. 좋은 곳이었다. 디지털 팀이라 그런지 면접관들이 비교적 젊은 편이었고, 내가 면접 본 곳 중에서는 매너가 제일 젠틀한 편이었다. 나의 장단점에 대해서 정중하게 물어보았고, 경력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콘텐츠를 물어보았으며, 무례하지 않았다. 내가 문제였다.
첫 질문은 예상치도 못한 Icebreaking 질문이었다.
“좋아하는 영화가 뭐예요?”
디지털 예능 팀의 첫 질문 치고는 신선했다. 내 전문 분야잖아?
그런데 왜 다른 영화 내버려두고, 본 지 한참 된 <쇼생크 탈출>이 입에서 나오냐.
다른 영화 많잖아. <매트릭스> 시리즈, <500일의 썸머>, <타이타닉>, <캐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좋아하잖아. 독립영화 중에는 <일리노어 릭비>, <허스토리> 좋아하잖아. <언더독> 이야기했으면 한국 애니메이션 이야기도 할 수 있었을 걸?
그렇게 시작된 면접이 좋게 진행될 리가 없다. 덕분에 생각해둔 디지털 콘텐츠 이야기 반의 반도 못 하고 나왔다. 음악 프로그램에 관해 하고 싶은 이야기도 참 많았는데. 그래서 집에 가서 거세게 이불 킥을 했다.
아악 바보 새끼.
붙잡을 때가 아니었어
그래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떨어질 만한 면접이었어. 다만 공채 면접 떨어졌을 때도 들지 않던 생각들이 들었다.
많이 배울만한 곳이었는데.
요즘 세상에 인턴 월급 200 넘게 주는 곳 다시 찾기 힘들 텐데.
그 기회 잡았어야 했는데.
물론 주변 사람들은 위로해주었다. 그 컨디션에 서류 합격하고 아침 9시 면접에 간 것만으로 기적이라고. 솔직히 면접장이 아니라 응급실 갈 것 같았다고 걱정해주던 사람이 몇이더라. 제발 좀 쉬라고 주변에서 더 난리야. 내가 불안해서 쉬지 못하는 것뿐.
딱 하나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친구 자취방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올 때 하던 말.
“유녕아, 생각보다 사람들은 눈 앞에 기회가 스쳐 지나가면서도 못 알아보고 지나가.
그냥 이번도 그랬다고 생각해.”
1 지망이 아니라는 데 감사해야 하는 건가. 그랬으면 더 말도 안 되게 후회했을 테니까.
물론 지금도 마냥 쉬지는 못한다. 그러나 사소한 것들을 더 챙긴다. 불안해서 잠을 못 자던 때는 지나 일부러 늦게 일어난다. 밥을 먹어도 토할 것 같던 시기는 지나가고,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은 때는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한다. 식욕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먹고 싶은 것들이 더 늘었어. 양꼬치와 맥주를 먹고 나서 다음 날에 무진장 후회한 적도 있지만 말이야. 그렇게 이 터널을 지나려고 해.
그렇게 살다 보면 다시 기회를 잡을 날이 오리라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