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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야 Jan 20. 2023

밥 잘 사주는 예쁜 엄마

완벽한 엄마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가 2019년에 꼽은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가 밀레니얼 가족(Emerging 'Millennial Family')이었는데, 특히 가정에서 '적정 행복'을 추구하는 이 가족에게 '밥 잘 사주는 예쁜(?) 엄마'는 대세 중의 대세가 될 것이며, 이 엄마들이 새로운 소비문화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 예측했었다.


밥 잘 사주는 엄마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나는 그때 당시 드디어 나를 대변하는 키워드가 트렌드가 되었다며, 요리를 하지 않는 엄마도 대세가 될 수 있다고 남편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성장이 중요한 시기의 아이들을 잘 먹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냐 만은 일을 하는 엄마로서 요리를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거나 삼시 끼니의 적정한 타이밍을 맞추기가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집안일이라는 것도 하다 보니 적성이라는 것이 생기는데 나는 요리보다는 설거지나 세탁을 선호하는 편으로 그렇다고 요리를 못 한다기보다는 요리에 흥미가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갖은 재료를 손질하고 다듬고 조합하고, 불 앞에서 한참을 서서 동시에 많게는 서너 가지의 음식을 스피드 하게 만들어 내야 하는 그 과정들이 나를 너무 지치게 만듦과 동시에 나의 밥맛까지 앗아가는 것이다.


퇴근 후 지친 심신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도 남이 차려주는 맛있는 저녁 한 끼를 먹기만 했으면 좋겠는데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것부터 집안일이 다시 시작되니 이 스트레스를 감당하기가 만만치가 않다. 이런 스트레스가 모여 집안의 공기를 냉랭하게 만들곤 하는데 가족 구성원 간의 적당한 합의를 통해 모두가 '적정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우리만의 가족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가족은 우선 장을 보러 거의 나가지 않는다. 아주 가끔 주말에 딱히 할 일이 없을 때 재미를 찾아 오프라인 마트를 가기는 하지만 주 1-2회는 컬리의 새벽배송이나 이마트 쓱배송을 이용하고, 네이버 쇼핑에서 미리 찜해둔 밀키트나 반찬을 별도로 주문하거나 정육각에서 신선한 고기를 원하는 부위별로 미리 예약해서 구매하고 있다. 식재료를 구입하러 직접 나가는 것도 남편이나 나의 시간을 저당 잡아야 하기에 필요한 것은 거의 대부분 온라인으로 구매를 하는 편이다.


우리 부부는 주 2-3회는 동시에 재택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침과 점심은 각자의 스케줄에 따라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는 편이고, 저녁은 웬만하면 집에서 만들어 먹으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집 근처에서 외식을 하거나 한 달에 한두 번은 배달 음식으로 때우기도 한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당번이라고 하면 그날 재택 업무를 한 사람이 거의 암묵적으로 담당하게 되는데 상대방이 준비한 저녁 메뉴에는 크게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 것이 룰이라면 룰이다. (대부분은 사전에 메뉴 공유를 한다.) 남편 역시 요리를 잘하거나 좋아서 한다기보다는 우리 가족의 생존(?)을 위해 시작하게 됐는데 결혼 전까지 딱히 요리를 할 필요가 없었던 그는 지금은 레시피를 찾아보며 뚝딱뚝딱 여러 가지 요리를 곧잘 해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여전히 '집밥'하면 나 역시 엄마가 떠오르지만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럴듯한 집밥을 차릴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났을 리는 없다. 워킹맘으로 엄마인 인생을 살기로 결정한 이상 요리뿐만 아닌 다른 모든 집안일에 전업맘만큼의 정성을 쏟을 수도 없다. 아이에게 가족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매일매일 차려줄 수는 없지만 맛있는 밥을 잘 사주는 것에 엄마의 또 아빠의 사랑을 가득 담는 것으로 우리 스스로를 위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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