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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야 Feb 04. 2023

엄마의 동굴

가끔은 혼자 있고 싶습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동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연인과의 갈등을 회피하며 연락을 두절해 버리는 남자들을 두고 동굴로 들어갔다는 표현을 쓰는데 결단코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회피할 수 없는 육아 중인 부모에게 필요한 곳은 동굴보다는 '엄마의 방, 아빠의 방' 정도로 말할 수도 있겠다. 사실 완전한 대화가 통하지 않는 어린 자녀의 시선을 피해 단 몇십 분이라도 혼자 있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특히 낯을 가리기 시작하는 돌 무렵 이후 엄마 껌딱지들의 엄마 식별 능력은 가히 놀랄 수준이니 말이다.


내 딸 린아도 엄마 껌딱지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등생이었는데 많은 엄마들이 경험하는 화장실 문 열어놓고 샤워하기나 볼일보기는 당연했고, 잠깐의 집안일을 할 때도 예외는 없어 아기띠로 둘러업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느라 청소가 끝난 내 등은 늘 땀범벅이었다. 업혀있는 본인도 척척하게 젖어 떼를 쓸 법도 한데 엄마가 보이지 않는 불안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그 편을 선택한 듯하다. 출산 이후 처음으로 린아를 떼 놓고 2시간 정도 외출한 어느 날은 내내 목놓아 우는 통에 아동학대로 신고라도 들어올까 맘 졸였다는 남편은 몇 번이나 내게 전화를 해댔고,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으로 안절부절못하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기진맥진한 상태에서도 여지없이 흐느끼고 있는 린아를 받아 안고 가여움과 미안함에 어쩔 줄을 몰랐었다. 그렇게 딸아이는 내게 한 줌의 틈도 허용치 않는 강력한 사랑을 갈구했으며 동시에 세상 모두가 나를 비난해도 그에 맞서 싸울 최후의 1인으로 남을만한 비장하고도 절대적인 사랑을 내게 전해 주기도 했는데 그런 유아기의 절대적인 사랑의 경험이 후에 어떤 결핍을 낳지 않게 하는 큰 힘이 되는 것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인 나는 작고 연약한 절대자의 사랑에서 잠시 벗어나길 바라는 또 다른 나의 욕구도 채워줘야 하는데 그 잠시의 휴식을 통해 방전 위기에 처한 모성애를 가득 충전해야 엄마인 나의 역할을 좀 더 충실히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만 특히 집에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런 나를 위해 남편은 린아가 어렸을 때는 주말 중 하루는 데리고 나가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온 적이 많았다. 남편과 딸아이가 놀이터나 공원, 키즈카페에서 보내고 있는 그 서너 시간이 내게는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그때 린아에게는 아빠와의 나들이 후 엄마에게 맛있는 커피를 사다 줘야 한다는 책무가 있었는데 저녁밥을 먹으며 "오늘 아빠랑 밖에서 뭐 했어요?"라고 물었는데 "엄마 커피 사 왔어요."하고 자랑스럽게 대답하는 딸아이를 보며 모성애와 약간의 미안함까지 풀로 충전되고는 했었다.


그렇게 출산 후 2년쯤은 어느 정도는 포기도 하며 인내도 하며 아이에게 절대적인 헌신을 할 수밖에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나는 안전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는 서너 살 무렵부터는 엄마도 엄마의 안전과 안온을 위한 동굴로 잠시 들어갈 수 있도록 주변 누군가의 배려를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이제 아이가 십 대가 되고 나니 오히려 우리와 같이 보내는 주말은 선예약을 해야 할 정도가 됐고, 동굴을 찾을 필요도 없는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가 늘어나 무엇을 하며 보내야 작고 연약한 절대자가 없는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을지 고민 끝에 이렇게 글을 쓰며 나와 아이의 유년 시간을 곱씹어 보기에 이르렀다.


가사와 육아에도 충분히 번아웃이 올 수 있는데 끝없이 부모 자신을 태우기만 하면 불은 빨리 꺼지기 마련이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도 과열을 방지하기 위한 전원 오프가 필요하듯이 적절한 때에 적당한 시간을 들여 엄마의 방에서 또 아빠의 방에서 리프레시할 수 있는 잠깐의 여유를 꼭 가지기를 바란다. 그 쉼이 아이를 위한 에너지를 다시 태우기 위한 충분한 연료가 되어 줄 것이다. 이제 나도 이만 쉬었으니 린아를 위한 엄마로 돌아가기 위해 방 문을 열고 그만 나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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