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촌에 갔다가 그곳에 사는 K의 안내로 마을 구경을 했다. 화촌의 다운타운은 크고 번화했다. 인근 부대의 군인들을 상대로 한 장사라고 했다. 제일 중심이 되는 골목엔 술집 간판이 빼곡이 들어서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고 자란 K는 그 골목의 옛 모습을 기억했다. 한때는 거기가 다 방석집이었다고 했다. 그 시절엔 방석집 여자들이 다니는 미용실이 십여 개나 됐고, 남자들이 여자들 줄 선물을 사던 금은방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이 젊은 군인들의 취향에 맞게 변해있었다. 술집 골목을 벗어나자 촌에서는 보기 힘든 이디야 커피와 베스킨라빈스 매장이 눈에 띄었다. 치킨집이 많았는데, 군인들이 퇴역한 후에도 그 맛을 못 잊어 택배로 시켜먹는 유명한 집들이라고 했다.
K는 모르는 사람이 없어서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나눴다. 우리는 K의 학교 동창이 하는 컴퓨터 수리점에 노트북 수리를 맡기고, K의 후배의 아내가 하는 꽃집에서 수선화 구근을 사고, K의 선배가 하는 옷 가게에 들어가 옷 구경을 했다. K는 농협 하나로 마트의 계산원과는 인사를 나누지 않았는데, 그 마을에 K가 모르는 사람이 있다니 뜻밖이었다.
그날 밤에는 펜션에 묵었다. K의 시부모님댁 2층을 개조해 만든 펜션인데, 경쟁이 너무 심해 개점 폐업상태라고 했다. 우리는 복층으로 된 팬션의 2층에 이불을 덮고 마주 앉았다. K는 말하길 좋아하고 말을 재미나게 잘했다. K가 마을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얘기하다가 친구 얘길 꺼냈다.
K와 초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 얘기였는데, K는 친구가 글을 잘 썼다는 걸 몇 번이고 강조했다. 친구에겐 오빠가 하나 있는데, 오빠를 종교처럼 떠받들던 엄마는 오빠 하나 먹이기도 힘든 데 너 같은 게 태어나 밥만 축낸다고 친구를 구박했다. 졸업하고 나서 친구는 학교 다닐 때 엄마가 생리대를 안 사줘서 생리대 대신 신문지를 썼다고 털어놨다. 그만큼 집이 가난하기도 했다. 친구는 초등학교까지 걸어서 한 시간 걸리는 산골에 살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산삼을 캐서 겨우 초등학교 옆으로 이사를 나올 수 있었지만,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다시 중학교까지 한 시간을 걸어 다녀야 했다. 고등학교 때 대학에서 주최하는 공모에 소설이 당선됐다. 원하기만 하면 그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엄마는 친구가 대학에 들어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돈을 벌어 오빠를 뒷바라지하라는 것이었다.
대학생이 된 K에게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였다. 친구는 애를 낳았다고 했다. 찾아가 보니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작은 방에 친구가 아이를 안고 누워있었다. 친구는 오빠에게서 도망치려고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친구의 오빠는 대학에 가서 유명한 노동운동권이 되었다. 그런데 노동운동을 한다는 그는 친구의 월급날이 되면 회사 앞에서 친구를 기다렸다. 피하면 자취방 앞에서 기다렸다. 친구는 회사를 그만두고 결혼했다. 친구는 동대문 미싱사였고 아이 아빠는 재단사였다. 그 남자가 좋았던 건 아니었다. 결혼하고 싶은데 주변에 남자가 그밖에 없었다.
남편은 둘째 아이를 낳고부터 바람피우기 시작했다. 남편이 이혼을 요구했지만, 친구는 거절했다. 그러자 내연녀가 수시로 전화를 해 이혼을 요구했다. 친구는 이혼을 결심하고 가지고 있는 적금과 보험의 명의를 자기 것으로 돌리고 나서 명의변경이 끝난 날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말했다. 그런데 그날부터 남편에게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견디기 힘든 악취였다. 친구는 남편과 헤어지고 나서 여러 명의 남자와 사귀었다. 그런데 매번 어느 순간부터 남자들에게 참을 수 없는 냄새가 나서 헤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야기가 끝나자 K는 주책없이 너무 늦게까지 수다를 떤 게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일어섰다. 나는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서 K가 일어나는 게 서운했다.
다음 날도 K를 만났다. 점심에 K의 차를 타고 근처 식당에 갔다. 밥을 먹고 나서 K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웃 할머니의 러브스토리였다.
할머니도 화촌 토박이로 어릴 적 집이 가난했다. 할머니의 부모는 입 하나라도 덜 욕심으로 어린 딸을 밥술이나 먹는 집을 찾아 시집보냈다. 그런데 신랑은 술주정뱅이였다. 술 취해 집에 돌아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밭일은 고스란히 할머니 몫이었다. 그래도 금실은 좋았다. 술에 취한 남편은 할머니가 일하는 밭을 지날 때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순자야, 사랑해!” 그러면 할머니는 더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영태야, 나도 사랑해!” 할머니도 술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남편 못지않게 술을 많이 마셨다. 할머니는 사 온 술을 다 비워야 자는 남편이 꼴 보기 싫어 자기가 뺏어 마시다 술이 늘었다고 하지만, 할머니도 술을 어지간히 좋아했다.
할머니 나이 쉰에 동네 여자들과 같이 점을 보러 갔다. 점쟁이는 할머니에게 “남자가 있겠는데”라고 했다. 할머니는 남자 없다고, 남편 이외에 다른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만약 남편 말고 다른 남자가 또 있다면, 양복이 잘 어울리고, 운전할 줄 알고, 술 못하는 남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 설렜다.
할머니 나이 예순셋에 남편이 죽었다. 술 취해 차에 치인 것이다. 그런데 장례식에 뜻밖의 조문객이 찾아왔다. 어릴 적 할머니 옆집 살던 오빠였다. 그는 어릴 적 할머니를 짝사랑했지만, 너무 가난해서 청혼할 수 없었다. 그는 할머니가 시집가고 난 뒤 상심해 다른 마을로 이사했는데, 화촌의 지인들과 계속 연락이 닿았기에 할머니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다. 그는 조문하고 가면서 할머니에게 마음 추스르면 연락 달라고 하면서 전화번호를 줬다. 전화번호를 받고 할머니는 고민이 컸다. 수십 년 만에 할머니 앞에 나타난 오빠는 양복이 잘 어울리지도 않고, 운전할 줄도 모르는 촌스런 시골 할아버지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허황한 이상에 매달려 모처럼의 기회를 놓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할머니는 장례가 정리된 뒤 오빠에게 전화했고, 처음 만나던 날 사귀자고 말했다.
그 뒤로 K는 빨갛게 입술을 바르고 화려한 머플러를 멘 할머니가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곧 도착할 버스엔 옆 마을 할아버지가 타고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 버스로 춘천에 가서, 거기서 속초 가는 버스로 갈아타고 속초 바닷가에서 데이트했다.
할머니의 사랑은 생활에도 살뜰한 도움이 됐다. 농사일은 철마다 일손이 필요한데, 그때마다 할아버지가 찾아와 김매주고 약 쳐주고 추수해줬다. 구들방에서 고추 말리는 게 얼마나 맵고 고통스러운지 잘 아는 할아버지는 몇 해 전 가을에는 할머니에게 고추건조기를 선물했다. 그 후로 K는 할머니 집 앞을 지날 때면 정성스레 고추건조기를 닦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곤 한다. 얼마 전 일흔넷 살 생일에는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이날까지 살아줘서 고맙다면서 여든 생일에는 닷 돈 목걸이를 해주겠다고, 꼭 그때까지 같이 살아달라고 당부했다. 처음엔 할머니가 노망났다고 동네 창피하다고 수군거리던 동네 노인들도 지금은 다들 할머니를 부러워한다.
나는 전에도 몇 번 화촌에 간 적이 있지만 특별한 인상은 받지 못했다. 서울 근교에 있는 풍광이랄 게 없이 날림으로 개발된 어수선한 시골 마을 중 하나로 여겼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는 화촌을 글 잘 쓰는 소녀가 한 시간씩 산길을 걸어 등하교하던 곳, 화려하게 외출복을 차려입은 할머니가 버스정류장에서 옆 마을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곳으로 기억하게 됐다. 좋은 가이드를 만난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