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다 제 12화
“오늘 우리 집에 경사가 났네.”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가 말했다. 경사라니 무슨 좋은 일인지 귀가 솔깃했다. “고양이 두 마리가 동시에 새끼를 낳았어. 내가 마루에 박스로 집을 잘 만들어 줬더니 아침에 보니까 거기다 새끼를 난 거야. 쥐새끼들 같은 걸 여섯 마리나 낳네.” 그 많은 새끼를 다 어쩐단 말인가. 이런 사태를 경사라고 하는 엄마가 놀라웠다. “또 한 마리는, 그건 몇 마리를 낳는데?” “그거는 어디다 낳았는지 보지도 못했어. 배가 홀쭉하니까 새끼를 낳나보다 하지.” 엄마 집엔 이미 고양이가 너무 많았다. 마당에 고양이들이 바글바글할 생각을 하니 내가 다 심란했다.
마당의 고양이들은 구성원이 계속 바뀌는데 요즘 드나드는 고양이는 4마리다. 그중 암컷 두 마리가 새끼를 낳은 것이다. 두 마리의 암컷은 모녀 사이다. 딸 고양이도 작년에 그 집 마당에서 태어났다. 엄마 고양이가 엄마를 경계하니까, 딸 고양이도 엄마를 경계해서 엄마는 고양이들을 한 번도 만져보지 못했다. 그런데 딸 고양이가 출산 얼마 전부터 경계심을 풀고 엄마에게 만지는 걸 허락하더니, 새끼들을 엄마 손이 쉽게 닿는 곳에 낳았다. 덕분에 엄마는 새끼들이 자라는 걸 가까이 지켜보면서 그 사랑스러운 것들을 만지고 안는 호사를 누리게 됐다. 엄마는 날마다 전화로 새끼들이 밥 먹고 똥 싸고 뛰어노는 게 얼마나 예쁘고 신통방통한지 모른다고 자랑했다.
엄마와 전화할 때 우리 대화의 8할은 고양이 얘기다. 나는 고양이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어떻게 생겼어?” 엄마한테 여러 번 물었다.
“우리 집 고양이들은 아주 예쁘게 생겼어.”
“어떻게 예쁜데?”
“꼭 서양 사람처럼 생겼어.”
고양이가 서양 사람처럼 생겼다니 무슨 소리일까.
“예뻐?” 새끼들에 대해서도 물었다.
“아이구 그렇게 미울 수가 없어. 에미는 인물이 좋은데 에미 닮은 게 하나도 없네.”
“무슨 색인데?”
“다 다르지.”
“노란색이야?”
“노란색? 노란색이 뭐지?”
“길거리에 노란 고양이들 있잖아.”
“그 비슷한 것도 있긴 한데, 노란색은 아니지.”
“그럼 까만색이야?”
“까만색? 까만색은 아니지.”
“그럼?”
“까만색도 아니고 회색도 아니고.......하여간에 말로 설명이 안 되는 요상한 색이야.”
나는 새끼들을 보러 가기로 했다.
엄마는 천안역에서 버스로 40분을 들어간 시골에 산다. 대문을 들어서자 짐작했던 것처럼 마당에 고양이들이 바글바글했다. 한 무더기의 새끼들이 툇마루 위를 뛰어다녔고 뒷마당에는 또 한 무더기의 새끼들이 나뭇더미를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새끼들 옆을 어미들이 지키고 있었다. 어미들은 모녀 사이인데도 생긴 게 전혀 딴판이었다. 엄마 고양이는 보통의 고등어 무늬인데, 딸 고양이는 털이 희고 긴 게 한눈에 페르시안 고양이 잡종이었다. 서양 사람처럼 생겼다는 엄마의 말이 그제야 이해가 됐다. 고양이들의 생김새에 대한 엄마의 묘사는 나름 정확했다. 딸 고양이가 낳은 새끼 여섯 마리는 털 색깔이 제각각인데, 엄마 말대로 어미를 닮은 흰색은 하나도 없었다. 두 마리는 노란색 계통인데, 고양이들에게 흔히 보는 노란색이 아니라 다람쥐 같은 갈색이고, 두 마리는 회색, 나머지 두 마리는 회색에 검은색이 얼룩진, 엄마 말마따나 말로 설명이 안 되는 요상한 색이었다.
엄마와 나는 만나서도 고양이 얘기만 했다. 그런데 고양이들에게 이름이 없다 보니 말할 때마다 설명이 길어졌다.
“에미가 젖을 주는 게 얼마나 예쁜지 몰라.” 엄마가 말하면 내가 되물었다.
“누구? 하얀 애?”
“아니, 저기 나뭇단에 네 마리 에미 말이야.”
“엄마가...” 내가 말하면 이번엔 엄마가 되물었다.
“누구? 여섯 마리 에미?”
“아니.”
“나뭇단에 네 마리 에미?”
“아니, 엄마 말이야.”
“누구, 나?”
“응.”
고양이들에게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딸 고양이는 털이 흰장미 꽃잎 같아서 장미, 엄마 고양이는 털에 노란 국화 색이 섞여 있어서 국화라고 이름 붙였다. 긴 시간 고민했지만, 새끼들에게 이름 붙이는 건 실패했다. 나는 새끼들 각각의 개성을 포착해 이름을 붙여보려 했는데, 새끼들은 전자 현미경으로 본 분자들처럼 구별이 되지 않았다.
장미의 새끼 여섯 마리는 한 몸처럼 움직였다. 잘 땐 다 같이 자고, 일어날 땐 다 같이 일어나고, 밥 먹을 땐 다 같이 먹고, 밥 먹고 나면 다 같이 세수하고, 놀 때는 다 같이 놀았다. 각자 행동이란 없었다. 간혹 한 마리가 저만치 떨어져 있으면 다른 놈이 달려들어 목을 물고 뒹굴었다. 그렇게 둘이 서로의 얼굴을 물어뜯고 있으면, 또 다른 놈이 달려들어 그중 한 마리의 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 옆에는 나머지 세 마리가 서로의 목과 다리를 문 채 삼각형으로 누워있었는데, 그 모습이 그룹섹스 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룹섹스도 그처럼 평화로운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다가 한 마리가 구석에 들어가 잠들면 하나둘씩 그 위에 포개져 잠이 들었다. 나중에 온 놈은 먼저 자는 놈의 배와 머리를 밟고 올라가 누웠는데, 그래도 어느 놈 하나 눈을 뜨지 않았다.
장미는 종일 새끼들이 바라보이는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다. 아무 하는 일 없이 보였지만, 새끼들을 돌보는 거였다. 장미는 내가 새끼들에게 다가가면 하악질 해 나를 쫓고, 밥때가 되면 엄마를 극성스럽게 따라다니며 밥을 재촉했다. 툇마루에 밥그릇을 놓으면 여섯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새끼들은 놀 때는 벙어리처럼 아무 소리도 내지 않다가 밥 먹을 때는 양양 소리를 냈다. 맛있어서 나오는 감탄사인지 자기 걸 안 뺏기려고 위협하는 소린지 알 수 없었다. 새끼들이 밥을 다 먹고 하나둘 세수를 시작하면 그제야 장미는 남은 음식을 먹었다.
새끼들은 맹렬하게 먹고 맹렬하게 자랐다. 첫날 툇마루를 벗어나지 못하던 새끼들은 다음 날은 하룻밤 새 눈에 띄게 길어진 다리로 툇마루에서 내려가 마당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머지않아 새끼들은 마당을 벗어나게 될 것이었다. 그 전에 무슨 조처를 취해야 했다. 그 집은 대문 바로 앞이 도로다. 차들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그 도로에선 사고가 끊이지 않는데, 특히 고양이가 사고를 많이 당했다. 개는 차가 오면 피하는 데 반해, 고양이는 자기가 그 차보다 빨리 지나갈 수 있다고 여겨 차에 달려든다고 한다. 구청에 속도방지 턱을 만들어달라고 민원을 넣었지만, 산업도로라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엄마는 고양이가 안 보이면 도로변부터 살폈다. 불길한 예감은 몇 번이나 사실로 확인됐다. 그 집에 사는 한 새끼들도 그 같은 최후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새끼들이 마당을 벗어날 만큼 자라기 전에 새끼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야 했다.
고양이 사이트에 새끼들 분양 광고를 올렸다. 반응이 좋았다. 페르시안 고양이의 피가 섞인 어미 덕분이었다. 세 집에서 두 마리씩 새끼들을 데려가기로 했다. 그러나 새끼들을 입양 보내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어미들은 머지않아 또 새끼를 낳을 것이고, 그러면 모든 일이 원점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어미들에게 중성화 수술을 시키기로 했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아니다 보니 병원에 데려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국화가 사람 손에 순순히 잡힐 리가 없었다. 닭 냄새를 풍겨 국화를 집안으로 유인한 뒤 이불을 씌워서 잡기로 했다.
내가 수술 전에 서울로 돌아오게 돼서 엄마 혼자 고양이를 잡아야 했다. 엄마가 실수할까 봐 전화로 몇 번이나 포획 작전을 리허설 했다. 그런데 수술 전날부터 장미와 국화가 보이지 않았다. 어미들은 새끼를 두고 그렇게 오래 집을 비운 적이 없었다. 다음날 국화가 어느 집 대문 앞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입에서 물이 나온 게 약을 먹은 것 같았다. 장미는 열흘 뒤 보일러실에서 발견됐다. 죽은 지 오래돼서 시체가 엉망이었다. 엄마는 어느 집에서 약을 놨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차 사고만 걱정했는데, 위험은 도처에 있었다.
서울에서 온 세 쌍의 부부가 장미의 새끼 여섯 마리를 데려갔다. 새끼들은 좁은 집에 갇혀 지내는 대신 안전한 생활을 보장받게 될 것이다.
엄마는 고양이들 밥 주는 게 너무 힘들다면서 사료 살 때마다 이것만 다 먹으면 사료를 안 줄 거라고, 사료를 닷새만 안 주면 고양이들이 안 온다니까 닷새 동안 제주도라도 갔다 올 거라고 한다. 그 소릴 들은 게 벌써 몇 년 짼데, 엄마는 서울에 올 때마다 고양이들 밥을 줘야 한다면서 내려가길 서두른다.
작년에 국화는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그중에 둘은 차에 치여 죽고, 하나는 목에 가시가 걸려 죽고, 하나는 약 먹고 죽고, 수컷 한 마리만 살아남았다. 올해 국화가 낳은 새끼 네 마리는 엄마가 쳐다보기만 해도 도망친 덕분에 아무 데도 보내지지 않고 마당에 남았다. 새끼들은 곧 자랄 테고 그중 몇 마리는 새끼를 낳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마당에선 그 모든 일이 내년에도 되풀이될 것이다.
(국화의 새끼 네 마리는 모두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한 마리는 가을에 교통사고로, 나머지 세 마리는 겨울에 약을 먹고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