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다 제15화
동물은 두 종류로 나뉜다. 집을 짓는 동물과 짓지 않는 동물. 집을 짓는 동물은 집 짓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쏟아 붓는다. 집 대출금을 2-30년씩 갚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개미, 수달 같은 동물도 맨날 집 짓느라 바쁘다. 집을 다 지었다고 일이 끝나는 건 아니다. 집은 끊임없는 관리를 요구한다. 관리하지 않으면 사람 집이든 개미집이든 수달집이든 금세 폐가가 되어버린다. 집을 짓고 사는 동물은 일평생 집 짓고 돌보는 일에서 헤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반면에 집을 안 짓는 동물은 집 지을 일도 관리할 일도 없으니 사는 게 날마다 휴일이다. 내가 마당에서 허리 한 번 못 펴고 화분에 물 주고 풀 뽑고 비질 하는 동안 장독대에 누워 뒹굴대는 요다를 보면서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나는 요다를 오해하고 있었다. 내가 집을 관리하는 동안 요다 역시 자신의 집을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분류는 잘 못됐다. 동물은 집을 짓는 동물과 짓지 않는 동물로 나뉘는 게 아니라, 유형의 집을 짓는 동물과 무형의 집을 짓는 동물로 나뉜다. 사람이 나무 돌 같은 유형의 재료로 집을 짓는다면, 고양이는 냄새라는 무형의 재료로 집을 짓는다. 나무 돌로 된 집은 짓는데 품이 많이 들어도 한번 지어 놓으면 오래가는데 반해, 냄새로 지은 집은 짓기는 쉬워도 금방 휘발돼 버려서 날마다 새로 지어야 한다. 고양이는 특정 장소에 자기 체취를 묻힘으로써 날마다 새로 집을 짓는다. 고양이는 몸 구석구석에 체취 분비선이 있어서 바닥에 누워 뒹굴거나 차 바퀴나 나무처럼 수직으로 서있는 것들에 몸을 비벼 자기 체취를 묻힌다. 발톱으로 긁는 것도 체취를 묻히는 방법의 하나다. 체취 이외에 똥오줌 냄새도 빼놓을 수 없는 건축 재료다.
요다는 자고 일어나면 마루에 놓인 소파를 발톱으로 박박 긁은 뒤 밖으로 나간다. 요다는 마당에 나가자 마자 바닥에 누워 뒹군다. 대문 앞에서도 골목에서도 자꾸만 뒹군다. 요다는 의식을 행하 듯 일정한 장소에 누워 뒹굴고 특정 기둥에 몸을 비비며 이동한다. 발톱을 긁는 장소도 정해져 있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희고 풍만한 배를 드러낸 채 누워서 나른하게 몸을 비틀고, 어디가 가렵기라도 한 듯 벽에 몸을 비비고, 발톱을 잔뜩 세우고 나무기둥을 긁는 요다의 모습은 에로영화에서 보던 에로틱한 행위와 흡사하다. 요다의 고혹적인 눈빛, 만지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희고 풍만한 배, 부드럽고 유연한 몸매가 에로틱한 느낌을 배가한다. 벽돌로 집을 짓는 게 힘겨운 노동이라면 냄새로 집을 짓는 건 에로틱한 유희다. 요다의 집 짓기 의식이 골목과 주차장을 거쳐 아랫마을 밭에 이르면, 요다는 검고 부드러운 흙을 파헤친 뒤 오줌을 눈다.
인간과 고양이의 집은 건축재료는 달라도 공간을 구획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우리 집과 야적장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 그 담을 경계로 우리 집은 요다의 집이고 야적장은 야적장 고양이들의 집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양이에게 집은 배타적인 공간이라 야적장 고양이들은 우리 집 마당에 들어오지 않고 요다는 야적장에 들어가지 않는다.
요다와 야적장 고양이의 영역은 일치하지는 않지만 겹쳐진다. 이들은 이웃공동체로 우리집과 야적장을 중심으로 사방 7-80 미터를 같이 관리한다. 고양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모임을 갖는다. 골목에 모여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엎드려서는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 것이다. 이 모임은 동네 노인들 모임과 여러 모로 비슷하다. 동네 동정이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곳에 모이며, 그 동정파악이 큰 흥미거리라는 점이 그렇다. (물론 노인들이 동네사람에게 관심 있는 반면 고양이들은 동네 고양이에게 관심이 있다.) 모여 있다 뿐 별 하는 일 없어 보이지만, 실은 깨알같이 자기 나와바리를 관리 중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이 구역에서는 다른 고양이를 보기 힘들다. 간혹 지나가는 고양이는 있지만, 지나가기만 하지 어딘가 자리를 잡고 앉거나 누워 있는 건 본 적 없다. 이 구역에서 앉거나 누워 시간을 보내는 건 요다와 야적장 고양이들만의 특권이다. 그런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부단한 관리가 필요하다.
요다는 옥상이나 장독대에 엎드려 있을 때가 많다. 요다는 꼭 난간에 자리 잡는데, 망을 보기 위해서다. 어느 날 밤 느른하게 장독대에 엎드려 있던 요다가 뭔가를 발견하고는 긴장해 몸을 일으켰다. 골목에 검정고양이 한 마리가 서있었다. 검정고양이는 골목을 사이에 두고 긴코, 고소영과 대치 중이었다. “야우우웅” 요다가 낮고 긴 소리로 으르렁대자 검정 고양이의 귀가 더욱 납작하게 뒤로 젖혀졌다. 검정 고양이는 한 발을 앞으로 내민 채 걷다가 멈춰선 자세 그대로 안 움직이고 서 있었다. 정지화면을 보는 것 같았다. 모두가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골목에선 서부 영화에서 총잡이들이 총을 뽑기 직전처럼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누구 하나 털끝이라도 까딱하면 그 순간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 같았다. 총만큼은 아니더라도 고양이들이 지닌 무기는 충분히 치명적이다. 서부 영화에선 결국 누군가 총을 뽑고 이어서 일제히 총알이 난사되며 피가 튀게 마련이지만, 고양이가 무기를 사용하는 일은 드물다. 2분 30초 간의 숨 막히는 대치 끝에 검정 고양이가 슬로우 모션이 걸린 것처럼 천천히 몸을 돌렸다.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이 서부영화의 한 장면처럼 쓸쓸했다.
이 구역에서 침입자와 맞서는 건 언제나 요다다. 요다가 다쳐 들어온 적이 없는 걸로 봐서 이 구역에서 진짜 싸움이 벌어진 적은 없을 것이다. 고양이는 이긴다고 해도 양쪽 다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기 보다는 기싸움으로 승부를 겨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승패를 가르는 건 몸집의 크기다. 요다는 집에서 잘 먹어서 떡대가 좋은데, 요다의 용기는 심장이 아니라 그 떡대에서 나오는 것이다. 요다는 매번 침입자와 용맹하게 맞섰고, 침입자들은 판에 박힌 패배자 연기라도 하는 것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천천히 몸을 돌려 쓸쓸히 물러났다. 그런데 고양이들은 그렇게 지켜온 자신들의 영역을 전혀 뜻밖의 상대에게 빼앗기게 된다.
새끼 고양이 찰리가 처음 야적장에 나타나던 날 그 자리엔 긴코가 있었다. 긴코는 잔뜩 경계하며 찰리를 탐색했지만, 검정고양이와 마주쳤을 때처럼 위협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다. 사람 사회와 마찬가지로 고양이 사회에서도 새끼는 열외로 취급된다. 찰리는 그러한 지위를 이용해 야적장에 마음껏 드나들더니, 얼마 뒤에는 엄마와 형제를 데리고 나타났다. 찰리의 엄마를 보자 마자 흑두건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흑두건은 이름 그대로 까만 눈가리개를 한 삼색이로 인상이 여간 더러운 게 아니다. 흑두건의 까만 눈가리개와 까만 털을 찰리가 물려받았는데, 전체적으로 인물이 없는 집안이다. 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야적장을 드나들더니, 야적장 한 구석에 아주 자리를 잡았다.
언제나 뒷문을 열면 긴코와 고소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둘 대신 찰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왜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새끼에게 야적장을 뺏긴 것일까? 머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어느 날 긴코가 야적장 앞에 서서 안으로 못 들어가고 눈치만 보고 있기에 왜 그러나 했더니 나무더미에 흑두건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사료를 먹으려면 그 앞을 지나가야 했다. 긴코가 눈치를 보다가 슬금슬금 그 앞을 지나 가려니까 흑두건이 튀어나왔고 긴코는 꽁지가 빠지게 도망쳤다. 흑두건이 드나들면서 긴코와 고소영이 쫓겨나는 바람에 야적장은 어부지리로 찰리의 차지가 된 것이다.
긴코와 고소영은 야적장을 떠나 어디서 잠을 자는 것일까? 둘은 버려진 유리 차양을 새로운 거처로 삼았다. 올 여름 한 달 넘게 장마가 이어졌는데도 둘은 비가 그치면 하나도 젖지 않은 뽀송뽀송 한 모습으로 사료를 먹으러 온다. 문제는 야적장엔 언제나 찰리가 있다는 것. 찰리는 둘만 보면 달려든다. 꼬리를 수직으로 치켜세운 채. 고양이는 꼬리를 수직으로 치켜세워 상대에 대한 호감을 표현한다. 찰리는 둘과 놀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둘은 찰리가 귀찮기만 하다. 둘은 찰리가 가까이 오면 피하고 달려들면 도망친다. 그쯤 싫은 내색을 하면 그만 해야 할 것 같은데, 찰리는 눈치가 없는 건지 눈치를 안 보는 건지 계속 달려든다. 나라면 화 내고 그래도 안 되면 콱 물어줄 것 같은데, 고양이들은 그냥 피하기만 한다.
그런데 찰리는 둘을 따라다니다가도 요다가 나타나면 요다를 따라간다. 왜 하필 요다인지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요다에게 꽂혀서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따라다닌다. 요다는 찰리를 귀찮아 하는 기색이 역력한데, 역시 피하기만 하지 화를 안 낸다. 고양이들은 의외로 유순한 평화주의자들이다. 요다와 2년을 같이 살면서 요다가 화내는 걸 한번도 못 봤다. 요다가 화를 안 내는 건 내가 자기보다 크고 힘이 세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요다는 주먹만 한 찰리에게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저 피할 뿐이다. 사람도 싫을 때 부딪치기 보다는 피해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면 감정이 쌓여 결국은 폭발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고양이는 물이 장애물을 만나면 돌아가듯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그냥 피한다.
그런데 찰리를 피하는 요다의 태도엔 애매한 구석이 있다. 정말 찰리를 쫓아버리고 싶으면 지붕 위로 올라가버리면 된다. 그런데 요다는 찰리가 따라올 수 있게 길로 달아난다. 또 빨리 달아나버리면 찰리가 못 따라갈 텐데, 중간쯤 가다가 멈춰 서서 찰리가 따라오면 다시 달아나길 반복한다. 그러다 결국은 지붕위로 올라가 사라져 버리고 찰리는 그 밑에서 울다가 혼자서 먼 길을 되돌아온다. 그런 찰리의 모습은 영락없이 같이 놀아 주기 싫어하는 형을 따라다니는 동생 같다. 골목에선 요다와 찰리의 쫓고 쫓기는 경주가 하루에도 몇 번씩 되풀이된다. 찰리의 놀라운 점은 매번 거절당하면서도 마치 한번도 거절당하지 않은 것처럼 요다가 나타나면 다시 달려든다는 것이다.
찰리는 차차 고양이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아침에 사료를 주려고 뒷문을 열면 긴코, 고소영 그리고 찰리가 같이 기다린다. 고양이들은 차례대로 순서를 지켜 먹는다. 여름 내내 비가 와서 사료 그릇을 나무 상자 안에 넣어두는데, 상자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 공동화장실 앞에 줄 선 것처럼 보여서 코믹하다. 순서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긴코가 먼저 먹을 때도 있고 찰리가 먼저 먹을 때도 있는데, 누가 먼저 먹든 재촉 않고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다. 찰리는 기다리는 동안 살랑거리는 고소영의 꼬리에 매달려 장난질이다.
어느 날 아침 사료를 들고 나가니 긴코와 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찰리가 먼저 먹기 시작해서긴코가 뒤에서 기다리는데 풀숲에서 흑두건이 나타났다. 긴코는 흑두건을 보자 후다닥 도망쳤다. 찰리가 상자에서 나온 뒤에도 흑두건은 내 눈치를 보느라 선뜻 상자에 들어가지 못했다. 우리가 서로를 쳐다보고 있는 동안 찰리가 야적장 입구에 똥을 눴다. 냄새가 지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