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현 Aug 13. 2021

나의 방

요다 제26화

 J와 싸우고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잡을 줄 알았는데 안 잡았다. 하는 수 없이 짐을 싸기 시작했다.      


먼저 노트북을 챙겼다. 그런데 노트북에는 여러 장치가 딸려있다. 24인치 모니터, 키보드와 마우스, 키보드와 마우스에 각각 딸린 손목 받침대와 모니터를 올려놓는 3권의 백과사전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일종의 의료기구다. 오랜 나쁜 습관으로 몸이 고장 나 컴퓨터를 하는데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씩 장만한 것들이다. 노트북을 쓰기 위해선 그것들 모두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들을 가져가자니 부피가 너무 크고, 안 가져가자니 그것들 없이 노트북을 쓸 일이 생각만 해도 불편했다.      


제일 처음 장만한 건 24인치 모니터다. 노트북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알이 타는 것 같았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안구건조증이라면서 무조건 눈을 쉬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쉬고 싶어도 컴퓨터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더니, 의사는 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면서 자기도 모니터를 세 개씩 놓고 일하니 눈이 너무 피곤해서 2시간마다 30분씩 환자를 안 받고 눈을 감고 쉰다고 했다. 의사 뒤에는 대형 모니터 세 대가 놓여있었다. 모니터라도 큰 걸 쓰면 눈이 덜 피곤할 거 같았다. 24인치 모니터를 사서 노트북에 연결했다. 화면이 커지니 확실히 눈이 덜 피곤했다.      


눈이 좀 편해지자 이번에는 목이 나갔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으면 뒷목이 깁스한 것처럼 뻣뻣하더니 결국 목을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의사가 목디스크라면서 나의 거북목을 지적했다. 의사는 절대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인사하거나 머리 감을 때조차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했다. 사람 머리 무게는 5kg인데, 고개를 숙일수록 목에 가해지는 부담이 커진다. 똑바로 서 있는 기둥과 기울어진 기둥 위에 각각 수박을 올려놓을 때 기둥에 가해지는 부담을 생각해보라. 의자에 앉아 있는 내 옆모습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고개가 60도 이상 앞으로 숙여졌다. 고개를 60도 숙일 때 목에 가해지는 부담은 27kg, 특대형 수박 세 개의 무게다. 백과사전 세 권을 밑에 받쳐 모니터의 키를 높인 뒤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앉았다.      


 다음에는 손가락이 나갔다. 자판 누를 때마다 손가락 첫 번째 마디가 쿡쿡 쑤셨다. 눈과 목이 아플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컴퓨터 앞에 앉기가 무서웠다. 의사가 퇴행성 관절염이라면서 나이 들수록 점점 더 나빠질 거라고 했다. “치료 방법이 없나요?” 내가 물었다. 의사가 한 손을 주먹 쥐었다가 펴는데 가운뎃손가락이 펴지지 않았다. 의사가 다른 손으로 가운뎃손가락을 억지로 잡아 펴면서 말했다. “나중에 이렇게 굳으면 수술해도 되는데, 안 불편하면 그냥 사셔도 돼요.”      


키보드를 바꿔 보기로 했다. 키보드가 고물이라 키가 잘 안 먹어서 세게 치느라고 손가락이 더 아팠다. 손가락에 충격이 덜 가는 키보드가 있을 것 같았다. 검색해 보니 짐작대로 여러 제품이 있었다. 그런데 뭘 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나의 키보드를 두고 누구는 그걸 쓰고 통증이 없어졌다면서 추천하고 누구는 통증이 심해졌다면서 비추했다. 모르는 분야에 발을 디딜 때마다 그 안에 뜻밖에 넓은 세계가 있다는 데 놀라게 된다. 눈알이 타는 고통을 참아가며 리뷰를 읽고 공부한 끝에 키보드를 샀다. 가격은 138,000원. 키보드에 만원도 쓰기가 아까워 고장 난 키보드를 써왔지만, 이제 손가락만 안 아플 수 있다면 더 큰돈도 아깝지 않았다. 새 키보드가 골치 아픈 통증을 해결해 주리라는 희망으로 주문한 택배가 도착하길 기다렸다. 마침내 키보드가 도착했고, 써보니 정말 손가락이 덜 아팠다.      


내친김에 손목 통증도 잡아보기로 했다. 자판을 두드리면 손가락뿐 아니라 손목이 아팠다. 검색을 통해 키보드와 마우스 사용 시 손목 꺾임이 통증을 유발한다는 것과 손목 받침대로 통증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장 사서 사용해 보았다. 키보드를 치고 마우스를 잡을 때마다 찾아오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부위의 통증이 장치의 도움으로 서서히 완화된 데 반해 손목 통증은 손목 받침대에 손목을 올리는 것만으로 즉각적으로 사라졌다.     


이 글을 쓰는 데는 노트북뿐 아니라 위의 장치들이 모두 필요하다. 그런데 그 모든 게 풀세트로 갖춰진 곳은 이 넓은 세상에 오직 내 방뿐이다. 나는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켤까? 그러나 자존심을 굽히기 싫었다. 노트북에 연결된 선들을 분리한 뒤 노트북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노트북에 이어 붓펜을 챙겼다. 노안이라 작은 글씨가 잘 안 보여서 손글씨 쓸 때 붓펜을 쓰게 됐다. 처음엔 굵은 심 볼펜을 써보려고 했다. 교보까지 가서 1.2mm 볼펜을 샀는데 볼펜으로는 글씨를 두껍게 쓰는데 한계가 있었다. 마침 교보에서 덤으로 준 사인펜이 있어서 써보니 비로소 글씨가 시원스럽게 잘 보였다. 그전까지 나는 사인펜을 거의 안 썼다. 글씨가 너무 굵고 투박하게 써져서 별로였다. 그런데 이제 그게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됐다. 사인펜의 잉크가 빨리 닳는 것도 좋았다. 서랍에 잔뜩 있는 사인펜을 써서 없앨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나의 문구들이 쓰레기로 버려질까 봐 걱정이다. 나 죽은 뒤에 덩치 크고 값나가는 것들은 재활용될 가망이 있지만 작고 하찮은 문구는 아무 고민 없이 버려질 것이다. 나의 문구들이 그런 꼴을 당하지 않도록 내 생전에 써서 없애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모든 사무가 디지털화되면서 전통적인 문구를 쓸 일이 없어져서 더 그렇다. 사인펜보다 나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는 건 스테플러 심이다. 서랍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가지고 있는 스테플러 심 두 상자가 있다. 쓰는 속도가 더디긴 해도 살날이 새털 같으니 언젠가는 다 쓰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요즘은 문서를 출력 않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보니까 스테플러 쓸 일이 거의 없다. 앞으로 점점 더 그럴 것이다.     


맞춤한 필기구를 찾은 기쁨에 묵은 필기구를 써 없앨 수 있다는 기쁨이 겹쳐 너무 글씨를 많이 썼나 보다. 엄지손가락이 아팠다. 글씨 쓸 때 힘을 줘 손가락에 무리가 간 것이다. 서랍 안을 들여다보았다. 붓펜이 눈에 띄었다. 붓펜이라는 작명도 그렇지만, 검정 바탕에 금색 궁서체로 이름을 세긴 디자인이라니. 붓펜은 전통의 실용화를 표방하며 구린 디자인을 전통의 계승인 양 여긴다는 점에서 필기구계의 개량 한복이다. 나는 첫눈에 붓펜을 혐오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을 돌아 만난 붓펜은 나를 위한 맞춤 필기구가 아닌가. 붓펜은 눈이 시원해질 정도로 글씨가 굵고 선명하게 써지는 데다, 붓펜으로 글씨를 쓰면 손에 힘을 저절로 빼게 된다. 힘을 주는 순간 획이 뭉개져 버리기 때문이다. 붓은 예민한 도구다. 쥐는 힘에 따라 획의 굵기와 모양이 달라져서 쓰는 내내 손끝의 감각에 집중하게 되는데, 손끝에 전해지는 붓의 감촉이 얼마나 에로틱한지 모른다. 나는 여러 종류의 붓펜을 거쳐 모가 길어 글씨가 시원스럽게 써지고 카트리지를 교환할 수 있는 쿠레타케 붓펜을 쓴다. 가방에 그걸 한 자루 챙겨 넣었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도 가방에 넣었다. 나는 소음에 몹시 취약한데, 골관절 질환과 달리 이건 어릴 적부터 그랬다. 독서실 다닐 때 다른 애들이 속삭이는 소리, 글씨 쓰는 소리, 과자 먹는 소리가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었다. 그때도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 있었다면 그 애들을 미워하는데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딜도가 우리 가정을 구했어요. 박민규의 소설 제목이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 우리 가정을 구했다. 우리 집은 물을 쓰면 집 전체에서 윙 하는 소리가 나는데, J는 늘상 물을 틀어놓고 지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설거지하고, 설거지했다 하면 한 시간씩 하고, 설거지 안 할 때는 씻는다. 그때마다 나는 헤드폰을 쓴다. J가 유튜브를 봐도, 새벽에 일어나서 왔다 갔다 해도, 책 읽거나 글 쓰는데 자꾸 말을 시켜도 헤드폰을 쓴다. 그럼 소음이 견딜만한 크기로 작아지고 곤두섰던 신경이 누그러진다.     


마지막으로 실내용 슬리퍼를 챙겼다. 오랫동안 발 통증으로 고생했는데 온갖 병원을 돌며 별별 치료를 다 해도 소용없더니 발바닥 아치가 높은 신을 신고 나서 통증이 현격히 줄었다. 아치가 너무 높은 발의 구조가 통증의 주요 원인인 것이다. 나쁜 눈이 안경으로 교정되는 것처럼 구조가 불안정한 발은 그에 맞는 신발로 교정됐다. 장애가 교정되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교정 도구에 의존하는 건 번거로운 일이다. 초2 때 안경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안경 없이 생활한 날이 단 하루도 없다. 아침에 눈 뜨면 안경부터 찾아 끼고 자기 직전에야 안경을 벗는다. 이제 신발도 그렇다. 아침에 침대에서 내려오면서 슬리퍼를 신고 자기 직전에야 슬리퍼를 벗는다. 집을 나서며 현관에서 아치 높은 슬리퍼를 벗어 가방에 넣고 아치 높은 샌들로 갈아신었다.      


천안의 엄마 집에 가기로 했다. 기차역까지 가는데 가방이 너무 무거웠다. 그렇지 않아도 짐이 많은데 오랫동안 안 들어갈 것처럼 보이려고 입지도 않을 옷까지 잔뜩 넣은 탓이었다. 쇼핑몰에 들러 캐리어를 샀다. 가방을 통째로 캐리어 안에 넣어버리고 바퀴를 밀고 다니니 살 것 같았다.      


“싸우고 집 나온 거 아니지?” 엄마가 캐리어를 보고 물었다. 안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집안에 테이블이라곤 부엌에 놓인 식탁이 전부다. 식탁 위에 노트북을 놓고 앉았다. 식탁은 너무 낮고 의자는 너무 높았다. 내가 할 수만 있다면 꼭 가지고 다니고 싶은 것이 책상과 의자다. 높은 의자에 앉아 낮은 식탁에 놓인 노트북 모니터를 구부정한 자세로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창문은 있으나 유리가 불투명해 밖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모니터를 보다가 눈이 피곤하면 모니터 너머로 창밖을 바라보곤 한다. 내 방 창밖에는 붉은 담장이 있고 그 너머로 파란 하늘이 지나간다. 그 시간 담장 아래 그늘에는 찰리가 자고 있을 터였다. 챙긴다고 챙겼지만 두고 온 게 너무 많았다. 다음 날 도로 짐을 싸 집으로 돌아왔다.

작가의 이전글 얼룩소의 비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