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여자의 얼굴이 낯익었다. 막동이였다. 20년 만인데도 첫눈에 알아봤다. 반가운 마음에 쫓아가 어깨를 툭 쳤다.
“왜 그러시는데요?”
돌아보는 막동의 얼굴에는 경계심이 역력했다. 나를 ‘도를 아십니까’로 여기는 것 같았다.
“나 모르겠어요?”
막동이 경계하니까 존댓말이 나왔다.
“누구신데요?”
“막동이 아니니?”
“맞는데, 저를 아세요?”
이름을 듣더니 막동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나 모르겠니? 우리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는데, 짝이었던 적도 있었어.”
“이름이 뭔데?”
“김현경”
“......?”
“워낙 흔한 이름이라서, 이름 들어서는 잘 모르겠지?”
“아니야, 기억나는 것도 같아. ××중학교?”
“응, 맞아.”
“응, 그래 기억난다.”
막동은 비로소 반색했다.
“너 이뻐졌다.”
빈말이 아니었다. 중학생 막동이는 푸석하고 주눅 든 모습이었던 데 반해 삼십 대의 막동이는 주눅 든 데가 없고 윤기가 돌아 한결 예뻤다.
“그렇게 금방 알아보겠어?”
“응. 너 이 동네 살아?”
“응. 너도?”
“아니 일이 있어서 왔다가 지하철 타러 가는 길이야.”
“나도 그쪽으로 가도 돼. 이쪽은 시끄러우니까 뒤로 가자.”
우리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결혼은 했어?” 막동이 물었다.
“아니.” 내가 대답했다.
“아니, 왜 결혼을 안 했어?”
“그냥.”
“그냥 왜 결혼을 안 해? 독신주의야?”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넌?”
“나는 했지. 26살에 했는데.”
“아이도 있고?”
“응. 하나. 중학교 다녀. 너는 결혼 안 할 거야?”
“몰라. 결혼해보니까 좋아서 그러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라도 다 하는 거니까.”
“일은 안 해?” 내가 화제를 돌리려고 물었다.
“해. 지금도 거기 갔다 오는 길이야.”
“무슨 일인데?”
“편의점 아르바이트. 너는?”
“나는 영화 만들어.”
“영화? 좋은 직장 다니네.”
“아니 무슨 회사 같은 거 다니는 건 아니고 그냥 영화 만든다고.”
“연락처 하나 적어줘.”
“나 명함 있어.”
내가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다.
“와, 명함도 있고 너 출세했구나.”
“출세는 무슨 동네에서 만원 주고 만든 거야.”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어?” 막동이 물었다.
“××여고.”
“대학교도 들어갔지? 너는 공부 잘했잖아.”
“잘 하기는. ××대학교.”
“거 봐 좋은데 들어갔잖아. 너 그때부터 공부 잘 했잖아.”
“뭐야, ××대가 공부 잘 해야 들어가는 데는 아니잖아. 너는?”
“나는 상고 들어갔잖아.”
“그럼 타자는 잘 치겠다.”
“응.”
“우리 떡볶이 같은 거 먹을래?”
“그래.”
막동이가 아는 식당이 있다면서 앞장섰다. 허름한 건물 2층에 있는 즉석 떡볶이집이었다.
막동이는 떡볶이가 익는 동안 계속 단무지를 집어 먹었다.
“너 배고팠구나?”
“응. 이 집 단무지가 맛있다. 너도 먹어봐.”
“야, 좀 기다렸다 떡볶이 먹어.”
“아니야, 단무지가 정말 맛있어.”
막동이가 단무지를 우물우물 씹어 삼키더니 말했다.
“나 이름 바꿨다.”
“정말? 뭐로?”
“수지.”
“정말이야?”
“응, 진짜야.”
“수지, 니가 진 거야?”
“응.”
“웃기네. 자기 이름을 자기가 짓고. 그게 한자로는 무슨 뜻인데?”
“수자는 빼어나다는 뜻이고 지자는 여자 이름에 많이 쓰는 건데.”
“지혜로울 지?”
“응, 맞아. 너 한자도 많이 아는구나.”
막동이가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여줬다.
“정말이네. 언제 바꾼 거야.”
“오래됐어.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난 정말 내 이름 때문에 너무 창피했거든. 학교 다닐 때 애들도 맨날 놀리고. 엄마한테 그렇게 얘기하면 엄마는 그게 뭐가 어때서 그러냬. 근데 나는 남자 만나거나 사회 생활하거나 어디 가서 이름 얘기하는 자리가 너무 싫은 거야.”
“그랬구나. 근데 나는 살면서 가끔 니 생각을 했는데, 그게 순전히 니 이름 때문이었던 것 같거든.”
막동이와는 딱 한 번 같은 반이었고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는데, 살면서 문득문득 막동이를 떠올리곤 했다. 이름 때문이었다. 특이한 이름이 화제에 오를 때마다 나는 중학교 때 우리 반에 막동이란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었다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면 막동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졌다. 초록 물고기에서 한석규가 연기한 막동이를 보면서, 나중에 한석규가 후원하는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광고를 보면서도 막동이가 떠올랐다. 때로는 아무 계기 없이도 막동이가 떠올랐고, 막동이가 궁금했다.
“니 이름이 아니었으면 널 기억 못했을 거야. 니가 날 기억 못 한 것처럼. 김현경 같은 이름을 어떻게 기억하겠니.”
“아니야. 니 이름 참 예쁘잖아. 니 이름 참 예뻐.”
누군가가 그처럼 진심 어린 표정과 말투로 내 이름을 예쁘다고 말해준 건 처음이었다.
“예쁘기는…….”
그러나 현경은 경희, 정희, 희정, 은경, 은주, 현주 같은 흔해 빠진 여자 이름 중 하나일 뿐이다.
“진짜야. 니 이름 참 예뻐.”
막동이는 자신의 평범치 않은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로 인해 나의 평범한 이름이 좋아 보였을 것이다. 나도 중학생 땐 막동이란 이름이 쪽팔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자식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준 부모가 내가 다 원망스러울 정도로. 그런데 나이를 먹으니 보는 눈이 달라졌다. 막동은 부르기에 정겨워 자꾸만 부르고 싶은 이름이다. 막동이의 부모가 그렇게 자꾸 부르다가 이름이 되었으리라. 막동아 하고 불러보라. 그 동글동글한 소리가 얼마나 정겨운지. 막동이는 글씨로 써놔도 그 모양이 참 귀엽다. 막동이는 그렇게 부르기 좋고 보기 좋은 데다 개성적이라 기억하기도 좋다. 자기 전화번호도 까먹을 만치 기억력이 형편없는 내가 수십 년을 기억할 정도로. 나는 막동이가 이름을 바꾼 게 쌍꺼풀 없는 눈이 참 예쁘던 친구가 쌍꺼풀 수술을 하고 나타난 것처럼 서운했다.
우리는 식당을 나와 브라보콘을 하나씩 손에 들고 걸었다.
“누구랑 살아?” 막동이 물었다.
“엄마랑. 아버지는 돌아가셨어.” 내가 대답했다.
“그렇구나.”
“너네 부모님은 두 분 다 살아계시니?”
“아니, 엄마만. 우리 아버지는 나 고2 때 돌아가셨어.”
“그랬구나.”
막동이는 형제가 많은 집안의 막내라 아버지가 나이가 많으셨다. 아이들이 막동이 아버지가 할아버지라며 수군대던 기억이 났다. 그 얘길 들으면서 나는 아버지가 옛날 사람이라 그런 촌스런 이름을 지어줬구나 하고 생각했다.
“너 법에 대해서 좀 아니?” 막동이가 뜬금없이 물었다.
“아니.”
“두 사람이 싸웠는데 한 사람은 진단서를 끊고 다른 한 사람은 진단서를 안 끊었어. 그런데 경찰에서는 쌍방과실이라는 거야. 그래도 진단서를 끊은 사람이 이기게 돼 있는 거 아니니?”
막동이는 자기가 식당에서 술을 마시다 다른 테이블에 앉은 여자랑 싸움이 붙어 서로 치고 받다가 코뼈가 부러져 진단서를 끊었다는 얘길 했다. 막동이는 이름만이 아니라 여러모로 달라진 것 같았다. 코뼈가 부러질 정도로 주먹다짐을 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그런 얘길 거리낌 없이 하는 태도가 그랬다.
“그러고 보니 너 코가 좀 부은 것도 같다.”
“병원에 갔을 때까지도 나는 코뼈가 부러졌는지 몰랐잖아. 병원비만 100만 원이 나왔어. 내가 그렇게 힘이 센 여자는 처음 봤잖아.”
“왜 너도 힘깨나 쓸 것 같은데.”
막동이는 몸이 탄탄했다. 어깨가 넓어 꽉 끼던 그의 교복 상의가 떠올랐다. 그때 우리가 치고받고 싸웠으면 나는 그의 싸움 상대가 못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여기를 꽉 눌러서 무릎을 꿇리는데 정말 꼼짝도 못 하겠는 거 있잖아. 그러고는 발로 사정없이 사람을 까는 거야. 정말 그렇게 힘 센 여자는 처음 봤다니까.”
“그러니까 덤비긴 왜 덤벼.”
“그렇게 힘이 셀 줄은 몰랐지.”
“남편은 뭐래?”
“뭐래긴 뭘 뭐래. 어차피 다 저질러진 일인 걸.”
“남편 성격이 좋네.”
“근데 그 여자가 힘은 그렇게 세면서 또 남편은 그렇게 무서워하더라고. 경찰서에 가서는 조서 쓰면서 사정을 하는 거야. 자기 남편한테는 절대 알리지 말아 달라고. 그리고 나를 그렇게 때려놓고는 경찰서에 가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한테 자기가 많이 아프다 그런다. 그래 내가 분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어.”
“그 여자는 정말 다친 데 없었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자기는 아프다고 하지.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막동이도 그 여자를 어지간히 패준 것이 틀림없었다.
“학교 다닐 때 니가 되게 순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순한 성격이긴 해. 너는 그때는 깍쟁이였던 것 같은데.”
“너 우리 학교 다닐 때 일 중에 기억나는 거 있니?”
“아니 별로 없는데. 너는?”
“나도 없어.”
사실 나는 막동이에 대한 기억이 선명한 편이다. 중학교 때 시험이 끝나면 교실 뒤 게시판에 반 석차를 붙여놓았는데, 누가 일등인지 만큼이나 누가 꼴등인지가 아이들의 관심사였다. 막동이는 어떤 아이와 꼴등에서 일 이등을 번갈아 가며 했다. 막동이와 꼴등을 다투던 아이가 기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데 반해 막동이를 이렇듯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이름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짝이었던 기간이 얼마나 됐을까? 나는 막동이와 같이 밥을 먹는 게 싫었다.
“니 반찬이 뭔지 맞춰볼까?” 어느 날 내가 도시락 뚜껑을 열려는데 막동이가 말했다.
“뭔데?” 내가 물었다.
“멸치.” 막동이가 말했다. 나는 맨날 멸치 반찬을 싸 갔던 것이다.
도시락 뚜껑을 열자 막동의 말대로 멸치가 들어있었다. 나는 창피했고 창피를 준 막동이에게 화가 났다. ‘제까짓 게 나한테’ 하고 심사가 뒤틀렸다. 내가 뚱한 얼굴로 물을 마시니까 막동이 신기한 발견이나 한 듯이 말했다.
“너는 물 마실 때 코가 컵으로 들어간다.”
막동은 나를 더 놀리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무안해서 말을 걸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안 그렇게 물을 마시는 사람이 어딨니? 넌 맨날 이상한 소리만 하더라.” 내가 쏘아붙였다.
‘너는 물 마실 때 코가 컵으로 들어간다.’ 바보 같은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물 마실 때면 그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을 할 때 막동의 입가에 달라붙어 있던 자신감 없는 웃음기도. 막동이도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기억에는 나의 깍쟁이 짓이 포함돼 있겠지.
헤어지며 막동이는 자기가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연락하지 않았다.
그날 나는 망설이다 막동이의 전화번호를 묻지 않았다. 일부러 연락해 만날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막동이가 연락할까 봐 은근히 걱정까지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막동이의 전화를 기다리게 됐고 전화번호를 묻지 않은 게 후회됐다. 그 뒤로 또 긴 시간이 흘렀다. 나는 요즘도 가끔 막동이를 생각한다. 주로는 티브이나 광고에서 수지를 볼 때 생각하게 된다. 막동이 아니 수지와는 이름이라는 끈에 묶여 자꾸만 기억하게 되는 인연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