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같이 살면 아침마다 목덜미에 감기는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잠에서 깨게 될 줄 알았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면 고양이가 내 손에 머리를 바싹 들이밀고, 턱을 쓰다듬으면 합죽이처럼 아래턱을 쭉 내밀고, 배를 쓰다듬으면 발라당 드러누울 줄 알았다. 그런데 요다는 만지는 걸 싫어한다.
요다를 만지는 건 오직 사냥놀이 할 때만 허락됐다. 흔들흔들 까딱까딱 움직이는 내 손을 볼 때마다 요다는 사냥감을 발견한 포식자의 표정으로 돌변해 달려들었다. 송곳 같은 이에 물리면 장난 아니게 아팠다. 내가 물리지 않으려고 맹렬하게 달려드는 그 조그만 뒤통수를 손아귀에 꽉 움켜쥐면, 요다는 자기를 잡고 있는 그 손을 어떻게든 물어보려고 악어처럼 입을 쫙 벌리고 버둥거렸다. 작고 부드러운 몸뚱이가 내 팔에 매달려 버둥거리는 그 느낌이 좋고, 그게 요다를 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내가 먼저 장난을 걸 때가 많았다. 나는 장난하다 말고 자꾸만 요다를 끌어안고 얼굴을 부볐고, 그러면 요다는 싫다고 ‘야아옹!”하며 버둥거렸다. 내가 모른 체 한참을 꼭 껴안고 있다 내려놓으면, 요다는 다시 정색하고 공격을 시작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요다는 유년기를 지난 뒤에도 내가 만지려고만 하면 손가락을 콱 깨물며 장난을 치려 든다. 그나마 장난칠 기분이 아닐 때는 나의 손길을 못 느끼는 것처럼 아무 반응을 안 하고 가만히 있는다. 내가 적당한 선에서 그만 두지 않고 계속 만지면 슬그머니 몸을 빼는데, 몸을 빼다 말고 갈지 말지 망설이는 것 같은 어정쩡한 자세로 나의 손길을 견디다가, 내가 눈치가 보여 손을 떼면 그제야 가버린다. 나는 고양이를 곁에 두고도 만질 수 없는 괴로움을 친구에게 호소했다.
“나는 고양이를 봐도 만지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아.”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는 나의 괴로움을 이해하지 못했다.
“부드러운 털을 보면 만지고 싶은 건 달콤한 과일 향기를 맡으면 먹고 싶은 것처럼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니야?”
그러나 친구는 과일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과일을 봐도 먹고 싶은 마음이 전혀 안 드는데.”
“알았어. 그럼 과일은 취소하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물컹한 감촉에 대해서만 물을 게.”
“나는 바로 그 부드럽고 따뜻하고 물컹한 감촉이 불쾌해서 고양이를 만지기 싫은 거야. 상미네 가면 걔네 고양이가 자꾸 내 무릎에 올라와 앉거든. 그때마다 싫지만 그렇다고 매몰차게 밀어버릴 수도 없어서 여간 곤란한 게 아니야.”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나의 손길을 견디는 요다의 어정쩡한 자세가 떠올랐다. 무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