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설명-산꼭대기에 있는 우리 집 옥상은 360도로 펼쳐지는 전망을 자랑한다. 전 세입자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서 BTS의 뮤직비디오를 찍고 싶다고 촬영 섭외가 들어왔었다고 한다. 세입자의 사정으로 찍지는 못했다지만.)
처음 집을 보러 갔을 때 거실 창 밖을 가득 채운 나뭇잎이 보기 좋았다. 뽕나무였다. 이듬 해 봄, 나무에 잎이 돋아나는 것과 동시에 오디가 맺혔다. 오디가 잘 익으면 쨈을 만들어야지 하고 별렀는데, 나무가 제공하는 영양소를 탐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요다가 몸에 흰 실 같은 걸 휘감고 다녀서 어디서 그런 걸 묻혀오나 했더니, 그늘진 나뭇가지에 흰 실타래가 엉겨 있었다. 뽕나무이의 분비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흰 실타래가 나무 전체를 뒤덮었고 오디는 그 안에서 바싹 말라갔다.
여름에 하수도가 막혀서 마당을 팠더니 땅 속에서 뽕나무 뿌리가 하수도관을 꽉 껴안고 있었다. 인부들이 나무를 그대로 놔두면 뿌리가 관을 막을 거라고 했다. 집주인이 나무를 벨지 여부를 나더러 결정하라고 했다. 고민하다 자르기로 했다. 하수도관 보다 뽕나무이 때문이었다. 한번 생긴 벌레는 해마다 다시 생긴다는데, 봄마다 끈적한 실타래가 마당을 뒤덮을 일이 심란했다. 뽕나무를 베고 나자 마당엔 단풍나무 한 그루가 남았다.
다음 해 봄, 단풍나무 그늘에 앉아 요다를 쓰다듬는데 손끝에 작은 알갱이가 만져졌다. 알갱이를 끄집어내 읽던 책장에 문질렀더니 누런 액체가 묻어나왔다. 벌레였다. 자세히 보니까 요다 등에 똑같은 벌레가 여러 마리 붙어 있었다.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같은 벌레가 잔뜩 떨어져 있었다.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수백 수천 장의 단풍잎 뒷면에 그 벌레가 깨알같이 달라붙어 있었다. 진딧물이었다. 질겁해서 집안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집안도 다를 게 없었다.
이사하던 해의 봄이었다. 아침에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웬 벌레 떼가 바닥을 새까맣게 메우고 있었다. 샤워기로 물을 뿌려 모조리 수장시킨 뒤 수챗구멍을 막았다. 벌레가 그리로 올라온 줄 안 것이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전날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문틀의 찢어진 시트지 틈으로 벌레가 기어 나오는 게 보였다. 시트지를 들춰 보니 나무가 한 뼘 넘게 없었다. 그것들이 먹어 치운 것 같았다. 약을 친 뒤 시트지를 막았다. 그것으로 그것들을 다시 보지 않게 되길 바랐다. 그러나 몇 시간 뒤에 그것들은 부엌 벽에서 쏟아져 나왔다. 밤마다 집안 곳곳에서 그것들이 쏟아져 나왔고, 나는 그것들이 나오는 구멍을 막고 또 막았다. 그 노력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2주가 지나자 그것들이 자취를 감췄다.
이듬 해 봄, 아침에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그것들이 또 바닥을 새까맣게 메우고 있었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 검고 긴 몸통에 날개 달린 모습이 여왕개미와 비슷했다. 검색창에 ‘날개 달린 개미’라고 치니까, 그것들의 사진이 줄줄이 떴다. 자신들이 먹어 치운 불운한 집들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것들의 정체는 흰개미였다. 흰개미는 죽은 나무를 먹으며 죽은 나무 안이나 땅속에 살다가 일 년에 딱 한 번 밖으로 나온다는데, 그것들이 화장실에 나타나는 게 바로 이때였다. 성체가 된 것들이 짝을 지어 분가하기 위해 지상으로 나오는 거라고 했다. 짝짓기를 위해 일부가 나온 게 그 정도면 안 보이는 곳에는 얼마나 많은 숫자가 있다는 것일까?
유튜브에 올라온 흰개미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땅속의 것들은 밖에 나온 것들과 모습이 전혀 달랐다. 날개가 없고 크기가 훨씬 작았으며 온몸이 투명했다. 유령처럼 허연 것들이 땅속에서 바글대는 모습이 여간 징그럽지 않았다. 흰개미에겐 기능성 의상을 갈아입듯 역할에 맞게 신체를 바꾸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배가 수십 배 크기로 부푼 여왕의 모습은 거대한 애벌레 같았다. 여왕은 비대해진 몸을 혼자서는 뒤집지도 움직이지도 못했다. 흰개미들이 달라붙어 부지런히 몸을 씻기고 입에 먹을 걸 넣어주는 동안 여왕은 꼼짝 않고 누워서 밤낮없이 알을 낳았다. 3초마다 한 개씩 매일 3만 개의 알을 낳는다고 했다. 15년을 산다고 하니 평생 1억 5000만 개의 알을 낳는 것이다. 발 밑에 있을 거대한 흰개미 왕국을 상상하게 됐다. 소름이 쪽쪽 끼쳤다.
하루는 그것들을 치우다 지쳐서 그냥 돌아다니게 놔두고 방문을 닫고 들어가 잤다. 지상의 공기에 적응을 못한 탓인지 비실거리다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맥없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애써 죽이지 않아도 놔두면 얼마 못 버티고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서 나가 보니 그 많던 게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들은 짝을 찾으면 날개를 떼 버리고 새로 살 곳을 찾아 들어간다. 거기서 새로운 흰개미 왕국이 시작되는 것이다. 집안 구석구석에서 새로 시작되고 있을 흰개미 왕국을 상상하게 됐다.
해충방제업체에 전화했다. 업자는 흰개미의 경우 방제작업을 해봐야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들다면서 난색을 표했다. 눈에 보이는 건 빙산의 일각이고 90프로 이상이 안 보이는 데 있기 때문에 완전히 없애려면 집을 뜯어내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지 않냐는 거였다.
이번에도 2주가 지나자 그것들이 사라졌다. 일 년 365일 중에 350일을 안 보이는 데 처박혀 지내다가 보름 정도만 기어 나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다시 일년이 흘렀다. 어느 봄밤, 날벌레 몇 마리가 방에 날아다녔다. 흰개미였다.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마루 천장의 나무 프레임에서 흰개미 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벽면을 가득 메우고 이동하는 모습이 흡사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해변의 바다거북 떼 같았다. 장관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보름달이 뜨는 밤, 호주의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해변에선 수백 수천 마리의 바다거북이 동시에 알을 깨고 나와 바다로 향한다. 바다에 이르기까지의 몇 분이 이들의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시간이다. 밝은 보름달 아래 수많은 갈매기 떼가 이들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바다거북이 갈매기 떼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극히 일부만이 살아남아 바다에 도착한다. 나는 먼 바다로 헤엄쳐 가는 바다거북을 보며 가슴 뭉클했다. 현장에 있었을 촬영 스태프들이 부러웠다. 그처럼 희귀하고 장엄한 자연의 대서사시를 나도 직접 볼 수 있다면.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서 바로 그와 같은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흰개미 수천 수만 마리가 일년에 딱 한 번 있는 짝짓기를 위해 지상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냉혹한 것이다. 나는 진공청소기를 꺼내 세기를 최대로 올린 뒤 흡입구로 그것들을 조준했다. ‘오늘 밤 니들이 살아남아 짝짓기에 성공할 확률은 제로야.’ 흡입구가 움직일 때마다 벽이 지우개로 지우는 것처럼 하얘졌다.
(이사 온 지 4년째 되는 해에 집안에 개미가 생겼다. 고양이 사료에 까맣게 달려드는 개미떼를 보면서 나는 개미가 흰개미의 천적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개미 때문일까. 그 다음 해부터 흰개미가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