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모임

by 김지현

우리 집에는 대문과 쪽문, 두 개의 출입문이 있다. 쪽문 밖은 건축자재를 쌓아놓은 야적장이다. 이사하던 해 봄 그곳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그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더니, 이듬해 봄 그곳에 또 다른 고양이 두 마리가 입주했다. 요다와 산책하면 둘이 졸졸 따라다녔다. 둘과 친해져서 밥을 챙겨주게 됐다. 아침에 쪽문을 열면 둘이 나란히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식사 예절이 어찌나 바른지 먹을 걸 가지고 다투는 일이라곤 없었다. 밥을 한 그릇에 주면 하나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다른 하나가 먹고, 두 그릇에 나눠주면 각자 자기 걸 다 먹고 기다렸다 상대가 남긴 걸 먹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고소영

둘에게 ‘고소영’과 ‘긴코’라고 이름 붙였다. 고소영은 탤런트 고소영처럼 코에 점이 있고, 긴코는 코가 약간 긴 편이었다. 둘 다 수컷인데 덩치가 작은 고소영이 동생처럼 보였다. 고소영은 항상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언어에서 ‘바라보는’은 ‘두려움’을 뜻한다고 한다. 고소영은 두려워서 내게 눈을 떼지 못한 것인데, 나는 그 크고 둥근 눈이 깜찍해서 매번 감탄하며 마주 봤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양이도 자기를 똑바로 마주 보는 걸 공격 신호로 받아들인다. 나는 뒤늦게 그런 사실을 깨닫고 야단맞는 학생처럼 고소영의 눈을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지만, 고소영은 좀처럼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전신주에 몸을 비비는 긴코

반면에 긴코는 나와 있을 때면 졸린 듯 반쯤 감은 눈을 천천히 껌벅이곤 했다. 나를 편하게 여기는 거였다. 조금 친해지고부터는 나만 보면 담벼락이나 전신주에 몸을 비볐는데, 그건 애정 표현이었다.

고소영, 긴코 그리고 요다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골목에 모여 같이 시간을 보냈다. 나도 틈 날 때마다 밖에 나가 그 모임에 꼈다. 고양이들은 각자 차 한 대씩을 차지하고 그 아래 엎드려 있다가 심심하면 한번씩 서로에게 달려들어 가볍게 뒹굴고는 다시 엎드렸다. 얼핏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자기들 나와바리를 관리하는 거였다. 고양이들이 일제히 귀를 쫑긋 세우고 어딘가를 주시해서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오다가 멈춰 서서 긴장한 채 이쪽을 보고 있는 낯선 고양이를 발견하게 됐다. 집에서는 샌님인 요다가 밖에서는 대장 노릇을 했다. 요다가 앞장서서 침입자와 신경전을 벌이면, 긴코와 고소영은 뒤에 숨어 상황을 지켜봤다. 항상 요다가 이겼다. 침입자가 눈치를 보다 되돌아가면, 멤버들은 다시 멀찌감치 간격을 두고 엎드렸다. 이 구역을 지나다니는 외부 고양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편안하게 앉거나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건 오직 셋만의 특권이었다. 아니, 나까지 넷.

우리 모임은 동네 초입의 팔각정에 나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이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들의 모임과 비슷했다. 할머니들은 밥 때가 되면 같이 밥을 해먹고, 심심하면 화투를 치기도 하지만, 주로는 각자 다른 곳을 보며 멍하니 앉아 있는다. 그러다 누가 지나가면 일제히 그곳을 쳐다보는데, 사람은 물론 고양이 한 마리도 할머니들의 레이더망을 피하지 못한다. 금방 인사하고 지나간 이는 뉘 집 손주인데 어느 대학에 들어갔고, 주차된 차에서 내리는 이는 어느 집의 둘째 아들인데, 어머니를 모시는 문제로 형제들끼리 싸우더라는 얘기를 옆에서 듣고 있으면, 내가 버스를 타고 가면 내 얘기를 하겠구나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아진다. 나는 매일 팔각정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지만, 할머니들이 있을 때는 물론이고 아무도 없을 때도 팔각정에 앉지 않는다. 눈치 보이고 불편해서다. 다른 고양이들이 우리 구역을 지나갈 때 바로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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