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폰 터치 캣

by 김지현
야적장 쌀 포대 위의 찰리

처음 보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야적장에서 걸어 나왔다. 사료를 먹고 나오는 거였다. 어쩌는가 보려고 쪼그리고 앉아 길을 막아보았다. 녀석은 나를 보고 멈칫거렸지만 도망치지 않고 잠시 눈치를 보다가 후다닥 속도를 내서 내 앞을 지나갔다. 대담한 성격이었다. 얼마 뒤 녀석은 야적장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코 밑에 검은 점이 있는 녀석에게 찰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찰리 채플린의 찰리.


야적장에서는 날마다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 그런 일들을 촬영해 기록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가진 폴더 폰의 카메라는 화질과 성능이 몹시 떨어졌다. 극장에서 본 갤럭시 S20 광고가 떠올랐다. S20으로 찍은 영상의 화질은 극장 스크린에서 보기에도 손색없었고, 모델의 옷을 줌으로 당긴 이미지는 실 한 올까지 선명했다. 검색해보니 S20 시리즈에는 S20, S20+, S20 울트라 세 기종이 있었다. 이름이 길수록 성능이 좋았다. 울트라에는 무려 10배 줌 기능이 있었다. 그때까지 고양이들은 내게 일정한 거리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멀리서 움직이는 고양이들을 찍기 위해서는 고배율의 줌 기능이 필수였다. 울트라를 사기로 했다.

S20 울트라의 가격은 1,595,000원. 그처럼 고가의 스마트폰을 사기로 한 건 정가대로 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예전처럼 보조금으로 살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매장에 가서 알아보니 보조금 제도는 사라진 지 오래고, 대신 여러 할인제도가 있었다. 판매원이 할인제도를 설명해줬다. 그런데 종류가 한 두 개가 아닌 데다 생소한 용어로 돼 있어서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바쁜 판매원을 붙들고 일일이 되물을 수가 없어서 여기서 이해 못 한 걸 저기 가서 물으며 매장들을 돌아다녔다.

판매원은 2-30대 남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들 눈엔 내가 노인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벽에 붙은 포스터의 S20 BTS 에디션에 대해 물었더니, “있어요, 방탄소년단이라고.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인데…….”라며 내가 BTS를 모를 거라 전제하고 설명했고, 몇몇은 내 나이를 물으면서 65세 이상이면 통신요금이 할인된다고 했다. 65세 이상이 아니라서 아쉬웠다.

할인제도에 대해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평소 접할 일 없는 직종과 연령대의 판매원들과 얘기하는 게 나름 재밌기도 해서, 외출할 때마다 오가는 길에 있는 휴대폰 매장에 들렀다. 하루는 어느 매장에 들어서는데, 판매원의 얼굴이 낯익었다. 이미 한번 갔던 데 같았지만 확실치 않아서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더니, 그도 나를 쳐다봤다. “S20울트라 가격을 여쭤보려고 하는데요.”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어 내가 묻자, 그가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냉담하게 대꾸했다. “지난번에도 같은 걸 물어보셨잖아요.” 맞다고 하고 바로 나갈 수가 없어서 나는 변명하듯 말했다. “그때 말씀하신 걸 제가 적어 놓질 않아서 다시 한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지금 우리 매장에 S20 울트라 재고가 없어요.” 그가 하던 일을 하면서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휴대폰 매장 투어를 끝낼 때가 된 것이다.

집에 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는데 길 건너에 휴대폰 매장이 보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때까지 가본 적 없는 매장이었다. 마지막으로 그 매장에 들러 보기로 했다. 낡은 새시문을 열고 들어가니, 노랗게 염색한 머리에 목이 늘어진 티셔츠를 입은 판매원이 혼자 허름한 매장을 지키고 있었다. 뚱뚱한 체구에 웃을 때 보이는 작은 이가 지인과 닮은 그에게 호감이 갔다.

“지금 쓰시는 기종하고 바꾸시려는 기종하고 간격이 크네요. 울트라로 하시려는 이유가 있으세요?”

“카메라 때문에요. 고양이들을 찍으려고요.”

“카메라는 S20+도 울트라랑 거의 똑같은데. 플러스로 하세요. 플러스로 하면 요금을 좀 낮출 수 있어요.”

“줌 기능이 다르잖아요.”

“열 배 줌까지 쓸 일이 있나? 제가 테스트해봤는데, 새를 찍으려고 했더니 새가 조금만 움직여도 화면에서 나가서 쫓아갈 수가 없던데.”

나는 그의 말 한마디에 사려는 기종을 울트라에서 플러스로 바꾸기로 했다. 그러나 플러스도 만만한 가격은 아니었다.

‘휴대폰 싸게 파는 곳’을 검색했다가 ‘휴대폰 성지’라는 걸 알게 됐다. 휴대폰 성지는 휴대폰을 싸게 파는 곳으로, 성지 위치를 좌표라 불렀다. 성지에 가려면 좌표가 필요했다. 링크를 타고 좌표가 숨겨진 카페에 들어가 번거로운 가입과 등업 절차를 거쳐 성지의 카톡 대화방에 초대됐다. 인사말을 올리자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올라왔다.

‘폰파라치 및 통신관계자 판별을 위해 간단한 인증 후 진행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신분증(뒷자리 가려서) 인증 부탁드립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신분증을 보내기가 찜찜했지만, 어렵게 거기까지 가서 중간에 그만둘 수가 없었다. 시키는 대로 했지만 인증 절차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인증이 가능한 명함으로 다시 한번 본인인증 부탁드립니다^^’

내가 명함이 없다고 하니까 남편의 명함과 가족관계증명서 또는 그에 준하는 서류를 보내라고 했다. 남편이 없다고 말할까 하다 관두고, 다른 카페에 가입해 다른 판매자의 카톡방에 들어갔다. 거기서는 신분증 이외의 인증을 요구하지 않았다. 마침내 성지로 들어가는 관문이 열린 것이다.

‘S20+ 사고 싶은데 40만 원이 맞나요?’

엔터 키를 누르자마자 내가 올린 메시지가 곧바로 삭제되더니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떴다.

‘채팅방 관리자가 메시지를 가렸습니다.’

휴대폰 가격을 언급하면 거래가 중지된다는 카페 공지의 경고문이 떠올랐다. 성지에서는 가격에 대한 언급이 엄격하게 금지됐다. 신고 시 증거로 사용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힘들게 열린 성지의 문이 닫힐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판매자는 거래를 중지하지 않았다.

‘오늘 방문해도 되나요?’

‘네~ ××역 6번 출구 오셔서 카톡 주세요~’

판매자는 위치를 바로 알려주지 않고 다시 카톡을 하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길에서 카톡을 하기가 어려웠다. 폴더 폰으로 카톡이 안 되니까 구형 스마트폰 공기계를 따로 가지고 다녔는데, 공기계는 와이파이가 제공되는 곳에서만 쓸 수 있었다. 집에 있던 진우의 스마트폰을 빌렸다. 진우의 스마트폰, 공기계, 폴더폰 이렇게 세 대의 휴대폰을 가지고 성지로 향했다.

‘6번 출구 앞입니다.’

××역 6번 출구에서 진우 스마트폰의 핫스팟을 켜고 거기에 공기계를 접속해 카톡을 보냈다.

‘××병원이 근처에 있어요. 그 건물 907호로 오시면 됩니다~’

성지가 휴대폰 매장일 줄 알았는데 사무실로 오라고 하니 겁이 덜컥 났다. 고민하다 좌표를 알려준 카페 운영자에게 카톡을 보냈다.

‘좌표 찾아왔는데 매장이 아니네요. 제가 이런 게 처음이라...안전할까요?’

보내기 버튼을 누르자 나의 메시지가 곧바로 삭제되더니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올라왔다.

‘♥공지♥필독♥

카페 운영 제1원칙 신뢰성………’

자칭 ‘믿을 수 있는 기업’이란 광고문구처럼 믿을 게 못 되는 말이라 생각하면서도 그 말에 조금 안심이 됐다. 기업들이 돈을 들여 그런 광고를 계속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핸드폰 벨 누르세요’ 907호 문 앞에는 그렇게 인쇄된 A4용지가 붙어있었다. 벨을 눌렀다. 벨에서 손을 떼다가 문손잡이의 손이 안 닿는 부분에 뽀얗게 앉은 먼지에 눈길이 갔다. 긴 시간 쌓인 까맣게 찌든 먼지가 아니라 공사할 때 생긴 흰 먼지였다. 흰 먼지는 그곳이 입주한 지 얼마 안 된 사무실이라는 것과 입주자가 사무실 관리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무 때고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장사하는 떴다방이구나 싶어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젊은 남자가 나왔다. 나와 카톡을 주고받던 사람 같았는데, 말끝마다 물결무늬를 붙이던 싹싹함은 온데 간데없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10평쯤 되는 텅 빈 오피스텔 한가운데 책상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중년남자가 모니터 옆으로 고개를 내밀고 나를 쳐다봤다. 역시 웃음기 없는 굳은 표정이었다. 이사 나간 집처럼 텅 빈 사무실, 한가운데 놓인 책상과 남자들의 굳은 표정. 사무실이 새것이라는 점을 빼면 영화에 나오는 마약밀매 소굴과 흡사했다. 나의 긴장한 모습이 그 분위기를 화룡점정으로 완성시키고 있었다.

“어디서 보고 오셨어요?”

젊은 남자가 나를 앉혀놓고 취조하듯 물었다.

“성지××에서 보고 왔는데요.”

“성지××요? 카페요?

“네.”

“거긴 어떤 경로로 들어가셨어요?”

“블로그 통해서. 카페 운영하는 사람이 하는 블로그...”

“검색하시다가 링크 통해 가신 거예요?”

“네.”

“그 카페에 들어갔던 내역을 보여주세요.”

“지금요? 집에서 노트북으로 했는데요. 제가 폴더 폰을 써서. 공기계도 하나 있어요. 여기 올 때도 스마트폰 빌려서 핫스팟을 켜서 카톡하고.”

내가 가방에서 스마트폰 두 개를 주섬주섬 꺼내 보여주며 설명했다.

“지금 그게 본인 게 아니세요?”

“네.”

“그럼 폴더 폰을 보여주세요.”

내가 가방을 뒤져 폴더 폰을 꺼냈다. 젊은 남자가 중년 남자를 바라보았다. 내가 폰파라치가 아니라는 인증이 끝난 것 같았다.

“S20+를 사신다고 하셨죠?”

중년 남자가 물었다.

“네.”

“가격은 보고 오셨죠?”

“네.”

그가 종이에 40이라고 적었다. 40만 원이라는 뜻이었다.

“6개월 동안 9만 원짜리 요금제를 유지해 주셔야 돼요. 어떻게, 사시겠어요?”

“네.”

“지금 재고가 없는데 휴대폰을 내일 가져가셔도 되겠어요?”

“그럼 돈은 어떻게 하나요?”

“내일 오셔서 내시면 돼요. 개통은 오늘 하고요.”

“.........”

“그 모델이 의정부에 있어서 그걸 퀵으로 받으려면 15,000원은 내야 하는데, 저희가 워낙 마진이 적어서 그럼 정말 5천 원 밖에 안 남아요.”

여느 판매원과 다름없는 태도로 변한 중년남자가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하시겠어요?”

“.......”

“생각해보세요.”

“사실 저는 여기가 매장인 줄 알고 왔어요. 두 분도 제가 무서우시겠지만, 저도 두 분이 좀 무서워요.”

내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네, 이해해요. 충분히 이해하죠.”

중년 남자가 자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매장이 없어서 불안하시겠지만, 사실 저희도 매장도 있고 사업자등록도 다 있어요. 그런 거 없이는 핸드폰을 팔 수가 없어요. 근데 이게 편법이다 보니까 매장에서 하다가 걸리면 문을 닫아야 하거든요. 매장 인테리어 하려면 3천만 원씩 드는데 그럼 그 돈 다 날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사무실을 내서 하는 거지만, 저희도 매장 있어요. 의정부에 있는 매장도 저희가 하는 거거든요.”

“.........”

“생각해보세요.”

여기서 사면 매장에서 사는 것보다 얼마나 이익일까. 계산을 해보려 했지만, 암산이 되지 않았다.

“.......저 안 살래요. 죄송해요.”

내가 말했다.

“아니에요. 아닙니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러실 거 없어요.”

두 남자가 선량한 얼굴로 나를 배웅했다.

그곳에서 나오자마자 제일 가까운 휴대폰 매장에 들어갔다. 판매원이 나를 반갑게 맞았다. 평범한 환대에 그렇게 마음이 놓일 수가 없었다. 곧바로 S20+를 사겠다고 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사기 위해서는 먼저 필수 항목의 선택을 완료해야 했다. 판매원이 나를 앉혀놓고 각종 결합 상품을 권했다. 결합상품을 같이 들 가족이 없고, 인터넷은 이미 다른 회사 걸 쓰고 있으며, 티브이는 없다고 대답했다. 선택항목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판매원이 카드 가입을 권했다. 삼성카드에 가입해 할부로 사면 1,353,000원짜리 단말기를 612,000원 할인해준다고 했다. 단말기 값을 절반이나 할인해준다는 말에 삼성카드에 가입하기로 했다. 판매원이 카드를 하나 더 가입하면 더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서 롯데카드의 가입도 권했다. 매월 5,000원의 요금을 추가로 할인해준다고 해서 롯데카드에도 가입하기로 했다. 할인 받으려면 각각의 카드를 월 40만원 이상 써야 했다. 최근 몇 달 간 병원에 다니느라 지출이 많은 편이었는데, 병이 빨리 나을까 봐 걱정됐다. 수 십 장의 계약서에 사인을 마치고 마침내 스마트폰을 받아 들고 일어서다가 문득, 카드에 연회비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회비 여부를 물었더니, 카드당 25,000원이라고 했다. 3년의 계약기간 동안 연회비만 15만 원이었다.

스마트폰을 개통하자마자 들고 밖으로 나갔다. 카메라를 켜자 가로로 긴 액정 안에서 찰리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소영이 다가오자 찰리가 그 뒤를 쫓아갔다. 골목 저편으로 멀어지는 찰리를 향해 줌 인했다. 최대치로 줌인하니까 찰리의 뒷모습이 자글자글하게 깨졌다. 스마트폰을 사면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게 한둘이 아니지만, 가장 후회되는 건 울트라를 포기한 것이다. 24만 원 때문에 10배 줌을 포기하다니.

줌 기능을 빼면 카메라의 성능은 훌륭했다. 촬영하는 재미에 밖에 더 자주 나가게 됐고,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고양이들과 더 가까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찰리가 다가오더니 내 다리에 몸을 비볐다. 고양이들과 몸이 닿은 건 처음이었다. 그때까지 고양이들과 나 사이에는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만큼의 거리가 유지되고 있었다. 고양이들이 그 거리를 가로질러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내게 다가오는 데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고양이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었고 고양이들을 만지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고양이들이 불결하게 느껴지고 할퀴고 물까 봐 겁이 나기도 해서 그 이상 다가서지 못했다. 그런데 찰리가 건널 수 없는 강처럼 놓여있던 그 거리를 가로질러 내게 다가온 것이다. 찰리의 털이 종아리의 맨 살에 닿는 느낌이 꺼림칙했다. 긴장해서 뻣뻣하게 서 있는데 찰리가 내 다리 사이로 8자를 그리며 맴돌았다. 긴장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찰리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찰리가 놀라 저만치 도망쳤다. 찰리와 눈높이를 맞추려고 바닥에 주저앉아 찰리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찰리가 주춤주춤 다가와 다시 내 다리에 몸을 비볐다. 그 등에 가만히 손을 갖다 댔다. 찰리는 순간 놀라 움찔했지만, 이내 긴장을 풀고 내 손바닥에 머리를 바싹 들이밀면서 골골거리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찰리를 쓰다듬으면서 다른 손으로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켰다. 찰리가 스마트폰을 보고 놀라 저만치 달아났다가 잠시 후 액정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보송보송한 털이 화면에 가득 찼다.

내 다리에 몸을 비비는 찰리. 그 순간을 기록한 S20+. 책에 삽입된 대부분의 그림은 S20+로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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