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by 김지현

산책하려고 쪽문을 나서자 고양이들이 밥 달라고 야옹거리며 달려들었다. 야적장 앞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제법 있어서 밥 줄 때마다 눈치가 보였다. 고양이들이 밥 먹는데 골목에서 윗집 할머니가 내려왔다. 각진 턱에 부리부리한 눈이 매서운 인상이라 처음에는 할머니와 마주칠 때마다 긴장했는데, 알고 보니 고양이를 좋아했다.

“괭이들 밥 주느라 수고가 많소.”

윗집 할머니가 멈춰 서서 밥 먹는 고양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가 괭이들 놀이터야. 볕 좋은 날은 드러누워 볕 쬐고. 괭이야, 이리와. 괭이야.”

윗집 할머니가 제일 가까이 있는 찰리에게 손짓했지만, 찰리는 쳐다보기만 하고 다가가지 않았다.

“너 왜 할머니만 좋아하고 나한텐 안 오냐?”

윗집 할머니가 따지듯 말했다. 그런데 찰리가 좋아한다는 할머니는 나를 가리키는 거였다. 오십 대 초반에 벌써 할머니 소리를 듣다니. 나를 그렇게 부르는 건 윗집 할머니만이 아니었다.

“애기 아빠랑 같이 살지요?”

하루는 아랫집에 사는 체구가 작고 귀여운 인상의 할머니가 물었다.

“네?”

“애기 아빠. 고양이랑 다니는.”

“아, 네.”

“근데 색신가 할머닌가?”

“.......?”

“애기 아빠는 애기 아빠라고 부르면 되는데, 색신가 할머닌가 몰라서 부르질 못하겠네.”

전에 살던 동네에선 진우를 동생이냐고 물었는데, 이 동네에선 다들 아들인 줄 알았다.

“걔 아기 아빠 아니에요. 아기 없어요. 그리고 저는 걔 여자 친구에요.”

내가 알아듣게 설명을 했건만, 아랫집 할머니는 그 뒤에도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윗집 할머니에게도 내가 할머니라고 불릴 만큼 나이가 많지는 않다는 말을 할까 하다가 관뒀다.

“괭이야, 이리 와. 이리 와.”

윗집 할머니가 손을 내밀며 다가가자 고양이들이 도망쳤다.

“괭이들이 할머니만 좋아하고 나한텐 안 와.”

웟집 할머니가 서운해하며 가고 나자, 앞집 대문이 열리면서 목사가 나왔다. 이 동네에선 양복 차림을 보기 힘든데 목사는 언제나 말끔한 양복 차림이었다.

“안녕하세요!”

목사가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고양이. 쭈쭈쭈쭈”

목사가 내 발 밑에 있는 찰리를 보고는 귀여워하는 시늉을 했다. 그가 ‘이놈의 고양이!’ 하면서 찰리를 향해 발길질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랬던 목사의 태도는 내가 사모 장례에 조의금을 낸 뒤로 180도 달라졌다.

“교회 다니세요?”

목사가 다가와 물었다. 목사는 장례가 끝나자 묵은 살림살이를 버리고 집을 수리한 뒤 대문에 교회 간판을 걸었다.

“아니요.”

“교회 다니세요.”

“네에.”

일요일 아침마다 목사가 마이크에 대고 찬송가를 부르는 소리가 여간 거슬리지 않았다. 같이 찬송가를 부르는 건 그 소음에서 벗어나는 한 방법일 터였다. 교회를 다녀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가까우니까 어떻게 하나 한번 와보세요.”

“네에.”

“천국 가셔야지요.”

“네에.”

말을 마친 목사가 시간을 확인하더니 정류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팔순이 다 된 나이에 뛸 수 있는 무릎을 가졌다니 부러웠다. 고양이들에게 밥을 줬으니 나도 이제 운동을 가기로 했다.

“나 운동 간다.”

내가 걷기 시작하자 고양이들이 줄줄이 따라왔다. 고양이들은 앞 서거니 뒤 서거니 하며 공터를 누비다가 도로에 이르자 불안에 휩싸여 우왕좌왕했다.

“너네 가. 나 운동해야 돼.”

나는 고양이들을 뒤에 남겨두고 도로를 따라 걸었다. 고양이들이 쫓아오지는 못하고 차 밑에 숨어 목놓아 야옹거렸다. 안 되겠어서 진우에게 전화했다.

“수퍼 앞인데, 요다가 도로에서 울어.”

‘요다’라는 말 한 마디에 진우가 부리나케 뛰어나와 요다와 다른 고양이들을 공터로 데려갔다.

나는 비로소 맘 편하게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마을버스가 지나갔다. 마을버스는 마을 초입에서 시작되는 일방 통행로를 따라 산꼭대기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내려간다. 다리가 건강했을 때는 그 도로를 따라 동네를 몇 바퀴씩 돌았는데, 집들에 가로막힌 경사로를 오르다가 산마루에 이를 때마다 마음이 덩달아 환해지곤 했다. 산마루를 따라 시야가 탁 트인 스카이웨이가 펼쳐진다. “이런 풍경도 자꾸 보면 무심해져?” 언젠가 그곳을 같이 걷던 친구가 물었을 때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스카이웨이를 지날 때마다 언제까지나 그곳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히게 됐지만, 자꾸만 앞으로 나아가려는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다 다리를 다쳐 경사로를 오르내릴 수 없게 되고 나서야 스카이웨이에 머물 수 있게 됐다.

평지가 이어지는 스카이웨이를 왔다 갔다 하는데, 공터에 뒤 돌아서 있는 남자가 눈에 띄었다. 슈퍼 앞에 테이블이 놓인 뒤로 거기서 술을 마시는 동네 남자들이 상습적으로 노상 방뇨를 했다. 나의 스카이웨이에서 그런 짓을 하다니. 한마디 하려고 뒤에 가서 째려보고 섰는데, 어찌나 술을 많이 처드셨는지 남자는 기다리기 지루하도록 오줌을 길게 눴다.

“왜 거기다 오줌을 누세요?”

나는 바지춤을 추스르며 돌아서는 남자에게 소리를 꽥 질렀다. 마스크를 한 키 작은 남자가 놀라고 무안해서 뭐라고 중얼중얼 변명했다.

“거기다 오줌 누지 마세요.”

나는 그의 말을 끊고 돌아서면서 소리쳤다.

다시 도로를 왔다 갔다 하는데 남자가 길가의 집에 들락날락하며 도로에서 서성댔다. 욕 먹은 게 기분 나빠서 뭐라고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는데 좀처럼 말을 붙이지 못하고 서성대기만 했다.

“여기 사세요?”

내가 보다 못해 먼저 말을 걸었더니,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네.”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사시면서 집 화장실에 가면 되지 저기다 오줌을 누세요?”

내가 쏘아붙이자 남자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반격을 해왔다.

“이 동네 오래 사셨어요?”

“네.”

“얼마나 사셨어요?”

“십 년이요.”

“십 년이면 이 동네선 애기요. 나는 여기서 62년을 살았어요. 여기는 우리 집이고, 저기는 우리 외삼촌집이고.”

“.........”

“아직 절 모르셔서 그러는데 내가 이 동네를 정말 아껴요. 이 앞에 나무랑 풀이랑 다 내가 베고 사람들이 쓰레기 함부로 버리면 뭐라 허고.”

“그런 분이 길에 오줌을 누세요?”

“하지 마. 그냥 가.”

그때 진우가 다가와 내 팔을 잡아당겼다.

“누구요? 아들이요?”

남자가 진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진우의 뒤로 고양이들이 줄줄이 따라오고 있었다. 남자가 고양이들을 가지고 트집을 잡거나, 나 없을 때 고양이들에게 분풀이할까 봐 겁이 덜컥 났다.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너는 가.”

나는 다급히 진우를 돌려보냈다.

“아줌마가 절 잘 모르셔서 그러는데요.”

남자가 나를 아줌마라고 칭했다. 진우를 아들이라 했으니 이제 할머니라 불릴 일만 남았구나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호칭이 어찌나 반갑고 고마운지 남자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눈 녹듯 녹아버렸다.

“제가 이 동네를 정말 아끼는 사람이에요. 외지인들이 차 타고 와서 여기다 먹던 거 버리고 그러면 내가 뭐라고 막 해요. 쓰레기 버리지 말라고.”

나는 남자의 말에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같은 말을 하고 또 했지만 나는 그것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이 앞에서 날마다 운동하시잖아요. 앞으로 만나면 인사하고 지내요.”

억울함이 풀린 남자가 사뭇 친근한 투로 말했다.

“마스크를 쓰고 계셔서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내가 말하자 남자가 마스크를 벗었다. 둥글고 귀여운 얼굴이었다.

남자와 헤어져 야트막한 언덕을 올랐다. 언덕 위에는 작은 광장이 있고 그 주위로 노인정과 공중화장실 그리고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쉬는데 흰색 스포티지가 와서 섰다. 차문이 열리기도 전에 고양이들이 그 주위로 모여들었다. 항상 흰옷을 입고 다니는, 내 또래의 통장이 차에서 내렸다. 고양이들이 아우성치며 그녀의 발 밑을 맴돌았다. 통장이 차 트렁크 위에 그릇들을 올려놓고 사료를 더는 동안 아우성 소리는 더 커졌다. 그 소리를 들은 고양이들이 광장으로 속속 몰려들었다. 그 중에는 삼색이 모자가 끼어있었다.

“새끼가 살아있었네.”

집 앞에 나와 담배를 피우던 반백의 남자가 삼색이의 새끼를 보고 소리쳤다.

“새끼 나왔어!”

반백의 남자가 내 옆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에게 외쳤다.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온 고양이들의 배식이 끝나고 삼색이 모자의 차례가 됐다. 밥을 주니까 새끼는 그릇에 달려들어 아귀같이 먹는데, 삼색이는 안 먹고 저만치 떨어져 앉았다.

“왜 안 먹어? 배 안 고파?”

통장이 삼색이에게 묻자, 반백의 남자가 대신 대답했다.

“새끼 먹이느라 그러지. 사람보다 낫다니까.”

반백의 남자가 흐뭇한 표정으로 삼색이를 바라보았다. 우리 동네의 나이 많은 남자 어른이 고양이를 예뻐하다니 뜻밖이었다. 나는 내가 밥을 주는 게 아닌데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오가는 이들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싫은 내색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통장도 권력이라 그 앞에서 그런 내색을 하기 힘든 것일까?

“빨리 와 빨리. 뭔 사료를 시도 때도 없이 줘!”

건너편 노인정에서 한 할머니가 광장이 쩌렁쩌렁 울리게 큰소리로 통장을 불렀다. 통장이 그 못지 않게 큰 소리로 대꾸했다.

“이렇게 난리치는데 안 줘 그럼!

그때 뒤늦게 나타난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삼색이 새끼의 밥그릇을 기웃거렸다.

“앵앵이 너는 저리 가서 먹어야 돼.”

통장이 노인정으로 향하자 앵앵이가 앵앵거리며 그 뒤를 따라갔다.

나는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마을버스가 몇 대나 지나갔을까. 스카이웨이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멈춰 서서 병풍처럼 둘러 쳐진 맞은 편 산과 그 아래 자리잡은 동네를 바라보았다. 크고 단정한 주택들이 있는 그곳은 옛날 드라마에서 부잣집 사모님들이 전화 받을 때 ‘여보세요’라고 하지 않고 ‘성북동입니다’라고 하던 그 성북동이다. 우리 동네가 개발 안 되고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건 그쪽의 힘 있는 양반들이 자기들 전망을 지키기 위해 압력을 넣은 때문이라던데, 예전 모습 그대로이긴 그 동네도 마찬가지다. 그 한가운데를 지나는 도로를 바라보았다. 급하게 하강하는 직선의 도로가 철 지난 스키장의 슬로프 같아서 깊은 산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슈퍼를 향해 걷는데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악을 악을 쓰는 소리였다.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긴코가 공터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가 언제 악을 썼냐는 듯 시치미를 뚝 뗀 얌전한 얼굴이었다. 내가 다가가자 긴코가 차 바퀴에 몸을 비비며 반가워했다. “나 운동해야 돼. 집에 가.” 나는 긴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다시 돌아섰다. 그러나 걷다가 돌아보면 긴코가 같은 자리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너네 때문에 운동을 못 한다.”

공터에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긴코와 같이 집으로 향했다. 긴코가 신이 나서 앞장 서 가다가 돌아와 내 다리에 감기며 몸을 비볐다. 하마터면 긴코의 몸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 했다. 긴코는 또 가다가 말고 자꾸 배를 드러내고 누웠고 그러면 나는 주저앉아 그 희고 부드러운 배를 쓰다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죽고 못 사는 연인들처럼 몇 발자국 가다가 쓰다듬고 또 몇 발자국 가다가 쓰다듬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공터에서 나를 기다리는 긴코

(그림 설명-내가 도로를 걷고 있으면 긴코가 공터에서 나를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짝짓기 철이 시작되면서 긴코를 보기 힘들어졌다. 하루는 긴코가 털이 뭉텅 빠져서 돌아왔다. 못 보던 새 야위고 눈매가 날카로워져 딴 고양이 같았다. 그날 이후 긴코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도로를 걷는데 공터에 노란 고양이가 지나갔다. 쫓아가면서 불렀더니 돌아보는데 긴코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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