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소

by 김지현

1

고양이들에 비해 키가 큰 나는 침입자를 제일 먼저 발견할 때가 많았다. 야적장 구석에 얼룩소가 누워 자고 있었다.

얼룩소는 얼룩소 무늬의 고양이로 산책할 때마다 윗동네에서 마주치던 놈이다. 나는 진작부터 놈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동네에서 회색 털을 가진 고양이는 놈 하나였다. 유난히 큰 덩치도 눈에 띄었다. 깍두기들처럼 상체가 발달해 목이 두껍고 얼굴이 넙데데한 게 남성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는 수컷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몇 번인가 암컷과 같이 있는 걸 본 적 있다. 그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놈의 엉덩이 사이에는 탱글탱글한 고환 한 쌍이 달려 있었다. 놈을 눈여겨본 건 외모도 외모지만 대담한 태도 때문이었다. 처음 봤을 때 놈은 ‘거주자 주차 가6’에 주차된 스포티지의 보닛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건 흔치 않은 풍경이다. 보통의 소심한 고양이들은 보닛 위보다는 차 밑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까이 지나가며 놈을 살폈다. 놈은 내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귀 끝만 따라 움직일 뿐 눈조차 뜨지 않았다. 그 뒤로 거주자 주차 가6을 지날 때마다 스포티지의 보닛 위에 누워 있는 놈을 보게 됐다.

그런데 어느 날 놈이 자기 자리를 벗어나 야적장 적재함 위에 떡하니 자리 잡고 누워 나를 놀래켰다. 그 뒤로 놈은 하루가 멀다고 야적장에 나타났다. 고양이는 좀처럼 자기 구역을 벗어나지 않으며 남의 구역에 눌러 앉아 시간을 보내는 짓 따위 더더욱 하지 않는다. 그런데 놈은 야적장 구석에 처박혀 잠까지 자고 있었다. 양아치였다.

그날 야적장에 있는 놈의 존재를 나 다음으로 알아차린 건 요다였다.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요다는 놈이 있는 폐자재 더미로 다가가더니 그 주위를 살피고 나서 조용히 물러났다. 요다는 예방접종 부작용으로 다리를 절면서 자신감이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자기가 상대하기 힘들면 주위의 도움을 청해도 될 텐데 고양이는 협력을 모른다. 요다는 놈의 존재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집안으로 들어갔다.

설거지하는데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부엌 창으로 내다보니 찰리가 누워있는 놈 옆에 버티고 서 있었다. “아오, 아오!” 둘은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 소리를 들은 요다가 싱크대로 뛰어올라왔다. 요다는 조심스럽게 밖을 살핀 뒤 창가로 다가가 앉았다. 우리는 같이 싸움을 구경했다.

얼룩소와 찰리

놈과 찰리는 하루가 멀다고 싸웠다. 마주서서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하면 싸움이 시작된 거였다. 둘은 같은 자세로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 움직이지 않았다. 싸움이 정적이라고 해서 격렬함이 덜한 것은 아니다. 둘 사이에선 첫 일격을 날리기 직전의 숨막히는 긴장이 흘렀다. 어느 쪽이든 털끝 하나라도 움직이는 순간 피 튀기는 혈투가 벌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고양이는 자신의 성능 좋은 무기를 웬만해선 동족에게 쓰지 않는다. 그랬다간 쌍방이 치명적인 부상을 피할 수 없는 까닭이다. 팽팽한 긴장이 이어지다가 패배를 인정하는 쪽에서 몸을 돌려 물러나면 싸움은 그것으로 조용히 끝난다.

그러나 어느 쪽도 쉽게 물러서지 않으면 싸움은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전투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호랑이처럼 으르렁대는 소리를 더해 압박의 수위를 높이는 것이다. 부엌 창문 밖에서 막 2라운드가 시작되고 있었다.

평소 5분 10분을 넘어가지 않는 싸움이 이날은 30분이 다 되도록 끝날 기미가 없었다. 야적장에서 하는 싸움에선 대부분 야적장 고양이가 이긴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상당한 것이다. 놈은 진작에 패배를 인정하고 싸움을 끝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구석에 처박혀 누운 자세가 문제였다.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나려면 먼저 몸을 일으켜야 하는데, 그 행동은 공격 신호로 받아들여질 위험이 컸다. 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누워 목소리만 높이다가 돌연 몸을 쓱 일으켰다. 그 순간 찰리는 놀라 뒤로 한 발 물러섰고, 요다는 겁을 집어먹고 방으로 도망쳤다. “아오, 아오!” 몸을 일으킨 채 다시 싸움이 이어졌지만, 결국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놈이 고개를 돌려 물러나는 것으로 싸움이 끝났다.

패자가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나면 승자는 그 뒤를 쫓지 않는 법이다. 얼룩소는 폐자재에서 내려오더니 골목에 자리 잡고 앉아 태평하게 세수를 했고, 찰리는 탈환한 폐자재 위에서 놈을 내려다보았다.


2.

목사 집 지붕 위의 얼룩소

야아아웅......야아아웅. 목사 집 지붕 너머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얼룩소였다. 놈은 이 구역에 접근할 때면 멀리서부터 낮고 느린 울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진군을 알리는 북소리 같았다. 장독대에 있던 찰리와 나는 긴장해 소리 나는 쪽을 주시했다. 용마루 위로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지붕을 가로지르며 오줌을 뿌리고 다니는 놈을 바라보았다.


어느 날 싸움이 끝나고 나서 놈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찰리를 뒤따라가 공격했다. 그 뒤로 찰리를 봤다 하면 무조건 달려들어서 인정사정없이 물어뜯었다. 결국 찰리는 야적장을 뺏기고 우리 집 마당으로 후퇴했다. 그러나 마당도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사흘 내내 비가 와서 찰리에게 창고 문을 열어줬는데, 새벽에 창고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뛰어나가보니 난장판이 된 창고에 털이 한 주먹씩 굴러다니고 있었다. 놈이 담을 넘어 창고에 들어왔을 테고, 찰리는 퇴로가 막힌 상황에서 놈과 맞붙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싸움으로 찰리는 앞발을, 놈은 목을 다쳤다. 놈의 상처가 더 컸다. 놈은 물린 데를 또 물려 목에 피떡이 졌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도 싸움에 가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 나는 집을 향해 다가오는 놈에게 돌을 던지며 소리쳤다. 놈이 먹을 걸 주는 줄 알고 좋아라 달려와 냄새를 맡았다. 가!” 나는 더 크게 소리치며 더 큰 돌을 던졌다. 놈은 그제야 나의 적의를 알아채고 멈춰 섰다. 나는 놈을 싫어하지 않았다. 고양이들과 원수지간이라 하는 수 없이 적대적으로 대했을 뿐. 말 못 할 사정으로 마음에도 없는 모진 소리를 해야 하는 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정이 나 같을까. 나는 놈에게 소리 지르며 마음 아팠다.

그러나 계속되는 잔인한 공격은 결국 내 마음에도 증오를 싹트게 했다. 고소영은 한번도 놈에게 맞선 적 없었다. 그런데 놈은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고소영을 악착 같이 쫓아가 물어뜯었다. 놈에게 물려 뒷다리를 절고 다니던 고소영이 그 다리가 나을만하자 다른 쪽 뒷다리를 또 물렸다. 그 작은 몸에는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고 모든 상처는 뒷다리와 꼬리에 집중돼 있었다. 도망치는 상대를 공격하다니. 나는 놈의 소리가 들리면 자다가도 뛰어나가 사납게 소리를 지르며 돌을 던졌다.

나는 매일 저녁 찰리와 같이 장독대를 지켰다. 해가 산 뒤로 넘어가고 가로등이 켜지면 지붕 저편에서 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놈은 그날도 어김없이 나타나 거들먹거리는 걸음걸이로 목사 집 지붕 위를 한 바퀴 돌아 지붕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앉았다. 우리는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오랜 싸움에 지친 나는 놈이 그 이상 다가오지 않기를 바랐다. 찰리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덩치 큰 내가 버티고 있어서였을까? 놈은 한참만에 몸을 일으키더니 골목으로 내려오지 않고 용마루를 넘어 사라졌다. 야아아웅 야아아웅. 낮고 느린 울음소리는 놈의 모습이 사라진 위에도 한동안 들려왔다. 찰리와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지붕 너머를 주시했다. 그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3.

목사 집 지붕과 사랑에라도 빠진 것일까. 얼룩소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지붕 위에 와서 한참씩 있다 갔다. 지붕 위를 돌아다니는 내내 야옹거리는 게 꼭 지붕과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뭐가 있길래 그러나 싶어서 여러 차례 지붕을 둘러봤지만, 별다른 걸 찾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 집 지붕 위에서 새끼들과 같이 있는 흑두건을 보게 됐다. 흑두건은 눈 구멍이 난 두건을 쓴 것처럼 눈 주위가 까만 삼색이로 찰리의 어미다. 봄가을로 우리 집 주변에 새끼를 낳았는데, 이번에는 그곳에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옥상에서 그들을 쳐다보는데 멀리서 놈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흑두건이 소리나는 쪽으로 가더니 잠시 후 놈과 같이 나타났다. 둘은 다정해 보였다. 새끼들을 거느리고 같이 거니는 모습이 휴일에 나들이 나온 젊은 부부 같았다.

며칠 뒤, 지붕 위에서 놈이 흑두건의 등에 올라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교미가 끝나고 둘은 나란히 누워서 쉬었다. 둘만의 오붓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왼쪽에서부터 얼룩소, 흑두건, 하니, 줄무늬, 고소영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른 수컷 두 마리가 나타나 지붕을 맴돌았다. 놈과 마찬가지로 험상궂은 상처를 전리품처럼 과시하는 덩치 큰 수컷들이었다. 잠시 어수선한 신경전이 있었지만 곧 자리가 정리됐다. 처마 밑에 흑두건이 새끼 둘을 양쪽에 끼고 앉았고, 바로 옆에는 놈이, 그 옆에는 다른 수컷이 일렬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런데 지붕 바로 아래 골목에서는 고소영이 흑두건을 안타깝게 해바라기 하고 있었다. 평소 흑두건을 보면 도망치기 바빴던 고소영은 별안간 눈에 콩깍지가 씌어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흑두건을 쫓아다녔다.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는 것 같았지만.

한편 건너편 장독대에서는 찰리가 그 소동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관망하고 있었다. 제 어미인 흑두건에게 성적 매력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얼룩소는 찰리와 공연한 혈투를 벌인 것이다.

며칠이 지나 시끌벅적했던 소동이 끝나자 집 나갔던 고소영이 돌아왔다. 고소영은 다시 흑두건을 보면 도망쳤고, 얼룩소의 발길은 뜸해졌다. 오랜만에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한쪽 귀 끝이 잘린 얼룩소와 마주쳤다. 중성화 수술을 한 것이다. 그 뒤로 얼룩소를 한 번인가 두 번 더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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