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다가 밖에 나가고 싶어해서 목줄을 해서 데리고 나갔다.
“괭이를 끈을 맸네.”
아랫집 할머니가 요다를 보고 말했다.
“고양이가 아파요. 많이 아파요.”
“말도 못 하는데 어떻게 아픈지 안디야.”
할머니 말대로 나는 요다가 아프다는 걸 오랫동안 알아채지 못했다. 신부전 진단을 받은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요다는 기운이 없어 보일 뿐 아픈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요다가 노인처럼 천천히 걷다가 자꾸 멈춰 섰다. 뭔가의 냄새를 맡으려는 것도 풀을 먹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요다를 내려다보았다. 요다의 코가 창백했다. 코 색깔이 원래 저렇게 창백했었나? 예전의 색깔을 떠올려보려고 애썼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문득 빈혈로 인해 코가 창백해진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다는 다시 걷기 시작했지만 몇 걸음 못 가서 또 멈춰 섰다. 왜 자꾸 멈춰 서는 것일까. 혹시 어지러운 걸까.
빈혈이 있으면 어지럽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 나는 빈혈이 심하다는 얘기를 듣고도 그로 인해 요다가 어지러울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의사가 수혈을 권했을 때 길게 고민하지 않고 안 하겠다고 한 건 그래서였다. 하루가 멀다고 토했지만, 그걸 보면서 속이 메스꺼울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요다가 나처럼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을 느낄 거라고 상상을 못 한 것이다. 데카르트는 동물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라고 했다. 누가 동물도 고통을 주면 소리를 내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는 피아노도 치면 소리가 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유명 철학자가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다니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토하긴 해도 메스꺼움을 느끼지 못하고 빈혈로 죽긴 해도 어지러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여기다니, 나 역시 동물이 나와 같은 고통을 느낀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요다를 안아 들었다. 너무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