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태국 여행 2018-2019 4화 바간
바간은 미얀마 최고의 관광지다. 고대 버마 왕조의 수도로 너른 평원에 세워진 수천 개의 불탑으로 유명하다. 양곤에서 바간 가는 버스를 탔다. 양곤 시내를 벗어나자 평야가 이어졌다. 가도 가도 끝없는 지평선 위에 드문드문 뾰족한 금탑들이 서 있었다. 간혹 도로 가까이 금탑을 둘러싼 마을이 나타나기도 했다. 마을이라고는 해도 나무로 지어진 집 몇 채가 고작이었다. 사진에서 본 바간의 탑들은 붉은 벽돌이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채색이 벗겨진 것이지 처음 세워질 땐 금빛으로 채색돼 있었다고 했다. 수천 년 전 탑들은 버스에서 본 탑들과 같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나무로 지어진 마을의 집들도 그때와 별다르지 않은 모습일 것이다. 10시간 동안 수천 년 전의 풍경이 이어지다가 바간에 이르러서야 시멘트로 지은 2층 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위스테이 호텔은 시내에서 떨어진 들판 위에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었다. 양곤에 있는 동안 미얀마 시골에 가보고 싶었는데, 호텔 주변이 바로 내가 가보고 싶어 했던 시골이었다. 아침에 창문을 열자 창밖으로 추수가 끝난 너른 들판에 둥글게 쌓아 올린 볏단과 이삭을 줍는 농부들이 보였다. 다른 데 가려고 말고 들판이 보이는 방에서 책을 읽자고 생각했다.
여행 떠나기 전 주변에서 다리를 이유로 여행을 만류하면, 여행 가서도 서울에서처럼 숙소에만 가만히 앉아 있을 거라고 대답했다. 또 밖에 나가는 경우엔 짧은 거리도 무조건 택시를 타겠다고 했다. 진짜로 그럴 작정이었다. 그러나 두 가지가 다 쉽지 않았다. 그나마 다리 상태가 아주 안 좋을 땐 숙소에 있지만, 상태가 조금만 나아져도 어디든 돌아다니지 못해 안달이 났다. 택시를 타는 것도 그랬다. 택시도 타본 사람이 탄다고 걸어서 십 분 거리를 가면서 택시를 타게 되질 않았다. 또 택시가 항상 잡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래저래 다리는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었다.
그날도 창밖 풍경에 만족하고 방에 앉아 책을 읽자는 결심은 오 분을 못 갔다. 밖에 나가 볏단에 기대 책을 읽기로 했다. 방에서 볏단까지 직선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러나 울타리가 가로막고 있어 그 몇 배나 되는 거리를 빙 돌아가야 했다. 호텔을 나가 도로를 지나 벌판을 가로질렀다. 벌판에서 한 여자가 이삭을 줍고 있었고, 그 옆으로 큰 개 한 마리가 그녀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볏단으로 가기 위해선 그 둘을 지나쳐야 했다. 내가 다가가자 개가 짖기 시작했다. 여자가 웃으며 개를 타일렀다. 둘을 지나 볏단에 기대앉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편했다. 책을 읽는 내내 저만치서 여자가 이삭을 줍고 개가 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농사짓는 농부들을 그린 그림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밀레의 만종. 나는 화가들이 농사짓는 농부들을 그린 게 미학적이라기보다는 윤리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노동의 경건함 같은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해 왔다. 교과서에서 그렇게 배웠고, 우리 시골 농부들의 골이 파인 주름과 갈퀴 같은 손이 아름다움보다는 윤리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이삭 줍는 농부들의 모습은 추수가 끝난 벌판만큼이나 아름다웠다. 화가들은 그 아름다움에 마음 사로잡힌 것이 틀림없다. 아름다움에는 농부들의 미모가 큰 몫을 했다. 미얀마에 가기 전에 내가 알던 단 한 사람의 미얀마인은 아웅산 수치. 처음 그녀를 봤을 때 정치인이 미인일 수 있다는 데 놀랐다. 그런데 미얀마에 가보니 다들 인물이 좋았다. 농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젊고 잘 생긴 농부들이 일하는 벌판에는 서정적 아름다움이 넘쳤다.
다음날도 아침을 먹자마자 이북을 들고 볏단으로 향했다. 벌판에서는 농부들 몇이 이삭줍기를 하고 있었다. 무엇을 줍고 있는 것일까? 자세히 보니 볏단이며 바닥에 떨어진 이삭에 자잘한 땅콩이 적지 않게 달려있었다. 그 넓은 밭이 다 땅콩밭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외출하고 싶을 때면 병원엘 가곤 했다. 양곤의 의사는 내게 먹지 말아야 할 음식으로 감자, 고기 그리고 땅콩을 들었다. 고기를 안 먹기는 쉽지 않아도 땅콩은 먹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간에선 땅콩을 피할 수가 없었다. 식당에 가면 식전 서비스로 땅콩을 주고, 샐러드를 시켜도 국수를 시켜도 토핑으로 땅콩이 얹어졌다. 그런데 알고 보니 땅콩 재배지였던 것이다.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너른 벌판에 호텔이 덩그러니 서 있을 뿐 주변에 인가라고는 없었다. 저만치서 농부가 산길을 내려오는 게 보였다. 그 산 너머에 마을이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산까지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허허벌판이라 멀게 느껴질 뿐 그리 먼 거리는 아닐 것이다.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내게는 무리였다. 더 가서는 안 된다고, 그냥 거기 앉아 있자고 자신을 설득했다. 그러나 나는 벌써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땅콩 농사는 모래땅에서 잘 되는 것일까? 밭 전체가 모래땅이었다. 땅이 단단하지 않으니 걸을 때마다 발목이 흔들렸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망설이면서 들판의 절반을 걸었고, 돌아가려면 걸어온 만큼을 다시 걸어가야 한다는 걱정을 하며 나머지 절반을 걸었다. 그렇게 산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앞에 서자 거기까지 왔는데 올라가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산길은 경사가 완만한 데다 땅이 단단해서 오히려 걷기가 수월했다. 저 언덕까지만 가봐야지, 저 모퉁이까지만 가봐야지 하면서 산길을 돌고 돌아 언덕을 오르고 내리니 어느새 마을이었다.
길게 뻗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대나무 울타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힘들게 거기까지 갔는데 마을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골목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길이 바둑판처럼 격자로 나 있는 데다 어느 길이나 똑같이 양쪽으로 대나무 울타리가 이어지고 있어서 그 길이 그 길 같았다. 호텔로 가는 산길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헛갈리지 않도록 한 방향으로만 걷기로 했다. 그러나 두어 번 길을 꺾어지고 나자 호텔로 가는 산길이 어느 쪽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지척이 현지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외국인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나를 보고 또 봤고, 이웃까지 불러 같이 봤다. 한 아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지나쳐 가더니 조금 가다가는 뒤돌아보며 ‘어이!’하고 부르고 또 조금 더 가다가는 뒤돌아서서 ‘어이!’하고 부르기를 반복했다.
다리를 아끼느라고 어느 집 담장 아래 주저앉았다. 잠시 후 그 집 할머니가 나와서 나를 쳐다보다가 앞집 사람들을 불렀다. 앞집 사람들까지 몰려나와 나를 쳐다보게 됐다. 나는 앉고 그들은 선 채로 멀뚱히 서로 마주 보고 있는데, 할머니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 무슨 뜻일까? 한참 만에 내가 혼자 왔는지 묻는다는 걸 이해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에 자신감을 얻은 내가 말했다. “코리안.” 다들 코리안이란 말을 알아들었다. 그러나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고 다시 서로의 얼굴만 마주 보게 됐다. 그때 앞집 남자가 바나나를 들고나와 보여주며 안으로 들어가자고 손짓을 했다. 냉큼 따라 들어갔다.
넓은 마당에서 사람들이 걷어온 곡식을 부려놓고 손질하고 있었다. 남자가 가져다준 과자와 바나나를 먹으면서 집안을 둘러보았다. 양철로 된 지붕을 제외하고는 기둥과 벽, 문, 바닥 할 것 없이 전체가 나무로 된 집이었다. 기둥만 굵은 나무고 나머지는 전부 대나무였다. 대바구니를 엮듯 대나무를 엮어 벽이며 문과 바닥을 만든 집은 대바구니만큼이나 가볍고 시원해 보였다. 대나무로 만든 물건도 여럿 눈에 띄었다. 의자와 평상, 땅콩이 널려있는 깔개와 땅콩을 담은 광주리. 그때까지 내가 보아온 대나무로 된 물건들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때가 꼬질꼬질하게 낀 채 가장자리에 구멍 한두 개쯤은 나 있는 게 보통이고, 농사일에 쓰는 물건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이곳에선 어느 것 하나 낡고 찌든 구석이라고는 없이 깨끗하고 단정했다. “뷰티풀 하우스!”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는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당 한 귀퉁이 외양간에는 소가 두 마리 있었다. 우리처럼 누렁소가 아니라 흰 털에 낙타처럼 등에 혹이 난 소. 가까이서 보니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검고 긴 속눈썹이 눈을 덮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예쁘지 않은 것이 없는 그 집에 더 있고 싶었지만, 하는 일 없이 남의 집에 있기는 어려웠다.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다리를 아끼기 위해 걷더라도 호텔 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그러려면 호텔이 어느 쪽인지 알아야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위스테이 호텔!” 다행히 모두가 호텔이란 말을 알아들었다. 그러나 위스테이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마을 사람들이 그쪽 밭으로 일을 다니고 또 워낙 가까운 거리라 당연히 위스테이 호텔을 알 줄 알았다. 개를 데리고 이삭 줍던 여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마저 있었다. 그러나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삭 줍던 여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일 같은 것도 벌어지지 않았다.
다리가 아파 골목에 앉았다. 뒹구는 나무통 위에 걸터앉았는데, 나무통은 의자처럼 편안하고 그늘은 시원했다. 더 돌아다녀 봐야 다리만 아플 뿐이니 거기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한참을 앉아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마을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 호텔로 가는 길을 물었던 사람들이었다. “저 외국인 좀 봐. 여태 길을 못 찾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네. 가여워서 어떡하나.” 뭐 그런 말들을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내게 다가와 진지한 표정으로 뭐라고 했다. 얼굴에서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결심이 읽혔다. ‘당장 호텔로 가려던 게 아니라 호텔로 가는 길을 확인한 것뿐이며, 길을 못 찾아 좌절해서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이 자리가 좋고 편해서 앉아 있는 것이다.’라는 뜻을 전달하고 싶었지만 전달할 길이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도우려고 애쓰는데 호응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그중 아기 안은 여자가 이웃을 불러왔다. 지금까지 만난 마을 사람들은 하나 같이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사람 특유의 자신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새로 온 이웃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가 물었다. “위스테이 호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세웠다.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호텔까지 나를 데려다주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제 나는 호텔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호텔에 가봐야 좁고 답답한 방이 기다리고 있을 뿐 할 것도 없는데, 여기서 나무그루터기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쉬다가 다리가 괜찮아지면 동네 구경을 더 하고 싶은데, 벌써 호텔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라탔다. 마을 사람들이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호텔에 돌아온 시간이 10시 반, 아직 조식 시간이 남아있었다. 나가기 전에 아침을 먹었지만 돌아다니고 나니 또 배가 고팠다. 식당에 들어가 접시에 음식을 담는데 종업원이 다가와 뭐라고 했다. 아침을 두 번 먹는다고 뭐래는 줄 알고 움찔하는데, 그가 머리에 붙은 지푸라기를 떼어줬다. 살펴보니 지푸라기와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긴 씨앗들이 머리카락과 옷 여기저기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있었다. 기대있던 짚단에서 붙은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