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태국 여행 2018-2019 5화 바간
바간까지 가서 파고다를 안 볼 수는 없는데, 파고다를 어떻게 둘러봐야 할까? 진즉에 오토바이를 배워두지 않은 게 후회스러웠다. 오토바이를 탈 줄 알면 아픈 다리로도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토바이 타기가 자전거 타기보다 쉽다던데 지금이라도 배워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자전거를 배울 때 그랬던 것처럼 오토바이를 배우기 위해서도 여러 번 넘어져야 할 것이다. 걷다 넘어져도 이 지경인데 오토바이를 타다가 넘어지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안전하게 툭툭을 대절하기로 했다.
툭툭은 오토바이 뒤에 2인승 좌석이 달린 오토바이 택시다. 툭툭을 타고 파고다로 향하면서 운전사가 모는 차 뒷자리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이 낯설었다. 내가 대절한 차를 타고 다니고 호텔 일인실에서 자고 마사지를 받는 여행을 하게 될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젊어서는 돈이 없어 도미토리에서 자고 종일 걷고 또 걷는 것 외에 달리 선택에 여지가 없더니, 나이 들어서는 건강상의 이유로 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바간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탑과 절이 있다. 어디부터 가야 할까? 운전사가 있으니 굳이 내가 머리 아프게 공부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운전사에게 대표적인 곳 몇 군데만 가자고 했더니, 큰 사원 입구에 나를 내려줬다.
미얀마에선 사원에 들어갈 때 맨발로 들어가야 한다. 신발은 물론 양말도 벗어야 한다. 신발은 바닥이 더러우니까 그렇다 쳐도 양말까지 벗어야 하다니 여간 번거로운 노릇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건 그리 번거로운 규율이 아니었다. 다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니까 그저 슬리퍼를 훌렁 벗어놓고 들어가면 됐다. 그러나 나는 다리를 다치고 나서 슬리퍼를 신은 적이 없다. 슬리퍼를 신으면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가 다리가 금세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 슬리퍼를 찍찍 끌고 다니는 건 건강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인 것이다.
입구에 서서 운동화를 벗고 양말을 벗었다. 양말을 벗으니 햇빛을 본 지 오래된 창백한 발이 드러났다. 막 발을 가지게 된 인어공주처럼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디뎠다. 맨발로 걷는 것이 실로 오랜만이었다. 다리가 아픈 이후로는 집안에서도 신발을 신고 지내온 터라 신발의 도움 없이 맨발로 땅을 디딜 자신이 없었다. 온 신경을 발에 집중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바닥에 딱딱한 돌의 압력이 느껴졌다. 발바닥으로 그 압력을 견디기가 겁이 나 다음 스탭을 주저하다 보니 걸음을 뒤뚱거리게 됐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동안 걸을만하다는 걸 알게 됐고 차차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기게 됐다.
신발과 양말에 의해 보호되는 발은 걷기에만 바쁘지 자신이 내딛는 곳을 감각할 일이 없다. 그런데 맨발로 걸으니 내가 있는 공간을 눈 귀 이전에 발바닥으로 감각하게 됐다. 지금도 나는 그 사원을 발바닥에 닿던 감각으로 기억한다. 사원의 바닥은 여러 가지 소재로 돼 있었다. 돌이 제일 많았지만, 돌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같은 돌이라고 해도 마모된 정도에 따라, 젖었는지 말랐는지, 햇볕이 닿는지 그늘인지, 비질을 얼마나 꼼꼼하게 했는지에 따라 그 감각이 다 달랐는데, 그 다채로운 감각이 여간 흥미로운 것이 아니었다. 입구에서부터 길게 이어지는 회랑에는 정사각형의 돌이 바둑판무늬로 박혀 있었다. 무수히 밟고 다녀 반들반들해진 그 돌이 발바닥에 닿을 때마다 부드러운 감각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분 좋았다. 실내뿐 아니라 마당도 맨발로 다녔다. 뜨겁게 달궈진 돌바닥 위를 종종거리다가 실내로 들어가면 발바닥이 제일 먼저 시원해졌다. 바닥엔 부분적으로 장판이나 신발털이 매트가 깔려있었다. 돌이 무겁고 육감적이라면 플라스틱은 가볍고 자극적이었다. 특히 신발털이 매트의 까칠까칠한 감각은 스토리가 늘어질 때쯤 등장하는 액션씬처럼 유쾌하고 자극적이었다.
발과 사원의 접촉은 에로틱했다. 나는 쾌락에 탐닉하느라 지나치게 걸었고 그러다 길을 잃고 말았다. 원형으로 된 파고다는 사방에 출입구가 있는데 그 모습이 비슷해서 어디가 어딘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제일 가까운 출구로 나가 보았지만, 신발을 찾을 수 없었다. 난감한 표정으로 신발들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수위가 다른 출구로 나가보라고 손가락질했다. 옆에 있던 장사꾼들도 일제히 손가락으로 반대쪽 출구를 가리켰다. 여기 말고도 세 개의 출구가 더 있는데 그 중 어디로 나가라는 것인가. 그때 한 상인이 능숙한 영어로 말했다. “상점들이 많은 데로 들어왔지요? 그러면 곧장 가서 불상 앞에서 오른쪽 길로 나가세요.” 그는 나도 모르는 내 신발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신발을 찾아 신고 밖으로 나왔다.
사원을 한 곳밖에 못 봤는데 벌써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아픈 다리로 사는 건 적은 용돈으로 사는 것과 같다. 다리 상태에 따라 하루 용돈이 5000원일 때도 있고 3000원이거나 2000원일 때도 있다. 가진 돈은 적고 쓸 데는 많으니 어디에 얼마나 돈을 쓸지 신중하게 계획해 착오 없이 써야 한다. 기분을 내는 건 절대 금물이다. 일상에서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매일 가는 곳과 하는 일이 정해져 있고, 도무지 예외적인 일이라곤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지에선 다르다. 여행지에서 나는 자기 처지를 잊고 피노키오처럼 쉽게 유혹에 빠졌다.
첫 번째 장소에서 하루치를 다 걷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두 번째 장소에선 앉아만 있기로 했다. 두 번째 장소는 작은 파고다들이 여러 개 모여 있는 곳으로 방문자가 드물어 호젓했다.
한 파고다에 들어갔다. 파고다를 빙 둘러 여러 개의 불상이 있었다. 안쪽에 있는 한 불상 앞에 앉아 부처님을 바라보았다. 부처님이 가부좌를 튼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 계셨다. 부처님은 늘 한결같은 모습이다. 어릴 적엔 부처님이 눈을 감고 앉아 뭘 하는 건지 궁금하게 여겼다.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존다고 하는 애도 있고, 생각하는 거라는 애도 있고, 기도하는 거라는 애도 있었다. 우리끼리는 답이 안 나와서 선생님께 여쭤보니 부처님의 모습은 깨달음을 표현하고 있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 설명을 들은 이후로 부처님의 모습을 단지 깨달음의 상징으로만 여겨, 더는 부처님이 무엇을 하는 건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됐다. 그런데 인제 보니 부처님은 명상하고 계신 거였다. 그러고 보면 부처님이야말로 명상의 선배요, 스승이 아닌가.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명상센터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명상초년생으로서 대선배 앞에 서자 저절로 존경의 마음이 우러나왔다. 스승을 만난 김에 한 수 배우고자 눈을 감았다.
파고다는 명상을 위한 최고의 장소다. 고요하고 시원했으며 같이 명상하는 동료가 무려 부처님이었다. 한 가지 문제라면 조교가 없다는 것. 감시하는 조교가 없다 보니 안경을 벗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자꾸만 눈을 뜨고 부처님을 바라보게 됐다. 부처님이 경험하고 계실 깨달음의 세계가 궁금했다. 어릴 때와는 달리 깨달음에 대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게 없진 않다. 그러나 귀머거리에게 음악을 말로 설명하는 게 부질없는 것처럼 부처님의 깨달음도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귀머거리가 음악을 듣는 사람의 얼굴과 신체에 번지는 표정으로부터 음악의 세계를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부처님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로부터 깨달음의 세계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예전엔 불상을 높은 데 세워 우러르는 데 대해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높이고 존경할 수 있는 존재가 있는 걸 감사하게 됐다.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자란 소년이 큰 바위 얼굴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자신이 바라보던 그 얼굴이 된다. 그래서 무엇을 바라보는지가 중요하다. 미얀마인들은 인물만 좋은 게 아니라 표정이 차분하고 자태에 기품이 있는데, 불상을 보고 있으니 그들이 부처님을 빼닮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큰 바위 얼굴의 소년처럼 그들도 자신이 바라보던 그 얼굴이 된 것이다. 나도 부처님을 닮고 싶어서 오래오래 부처님을 올려다보았다.
마지막 코스는 선셋 전망대. 넓고 넓은 평야에 20여 미터 높이의 낮은 언덕이 있었는데, 거기가 선셋 전망대였다. 일몰이 시작되는 언덕은 관광객으로 빼곡했다. 내 다리는 이미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든 지경이라 언덕을 오르내릴 자신이 없는 데다 그 많은 인파에 끼기도 싫었지만, 거기까지 데려다준 운전사의 성의를 봐서 못 올라간다고 할 수가 없었다. 엉금엉금 언덕을 올라가 사람들 다리 틈에 자리를 잡고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없으니 바닥에 앉을 때 엉덩이로 쿵 주저앉게 됐다.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다. 살면서 일몰을 수도 없이 봤지만 거실에 틀어놓은 티브이를 보듯 왔다 갔다 하면서 잠깐씩 보는 식이었지, 작정하고 앉아 극장에서 영화를 보듯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일몰의 전 과정은 상당히 길었다. 해가 지기 한참 전부터 하늘색이 붉게 변하기 시작해 해가 지고 나서도 완전히 깜깜해지기 직전까지 색채의 향연이 계속됐다.
하늘은 단 한 순간도 같은 모습인 적이 없이 빠른 속도로 변해갔다. 탄성이 나도록 멋진 모습이 펼쳐졌다가는 순식간에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렸고, 그것 역시 다음 순간이면 사라지고 없었다. 가루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흩어버리고 그림을 그리고 또 흩어버리는 화가의 작업을 보는 것 같았다. 매 작품이 다 다르면서 완벽하다는 것이 경이로웠고, 그 완벽한 작품을 한 치의 주저 없이 흩어버리는 태도는 더더욱 경이로웠다.
나 역시 화가와 한 호흡이 되어 일몰을 영화를 보듯 변화의 과정으로 보고 있었다. 변화를 즐기자 매 순간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이 사라지는 게 괴롭지 않았다. 그러나 일몰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일 수 있을까? 좋거나 나쁘다는 분별없이 좋은 것을 붙잡거나 나쁜 것을 피하려는 욕심 없이 그것들을 그저 변화의 과정으로 볼일 수 있을까? 해마다 다리를 접질리고, 출근하듯 병원에 다니고, 해발 20m 언덕을 태산을 오르듯 힘겹게 오르내리고, 바닥에 앉을 때마다 엉덩방아를 찧는 그 일들을?
색채의 향연이 끝나자 어둠이 시작됐다. 어둠은 어둠대로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