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도

미얀마 태국 여행 2018-2019 11화 방콕

by 김지현

‘잘 지내?’ 친구가 보낸 카톡에 ‘다리가 아픈 것만 빼고 다 괜찮아.’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괜찮은 그 모든 것들은 다리가 아프다는 조건 위에서 비로소 생겨난 것이다.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면 그것들도 없었을 것이다.

피나가 쉬는 날 아침, 피나의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국수집엘 갔다. 쉬는 날이면 피나가 국수를 먹으러 가는 곳이라고 하는데, 탄이 내게 추천했던 곳이기도 했다. 동네에서 소문난 국수집인 것이다. 피나가 시키는 걸 따라 시켰다. 나온 것을 보니 국수라기보다 내장탕. 피나는 남김없이 먹고, 나는 많이 남겼다.

식당을 나와 피나의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절 순례를 시작했다. 피나는 처음엔 시내에 있는 큰 절에 가자고 했는데, 내가 다리가 아파 못 간다고 하니까 가까운 곳을 자전거로 다니기로 한 것이다.

“너 쉬는 날 친구 만나면 절에 가?”

내가 자전거 뒷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아니, 카페에서 수다 떨어.”

피나가 대답했다.

“우리도 그냥 카페 가자.”

자전거 뒷자리에 타기가 미안했다. 내 몸무게가 피나보다 적어도 10킬로는 더 나갈 것이다.

“절에 가기 싫어?”

“나 구경시켜주러 가는 거잖아.”

“아니야, 나도 가고 싶어. 1월 1일 날 절에 간다 그러고 잠만 잤거든. 그거 오늘 가는 거야.”

태국에서는 정초에 9개의 절을 돌며 소원을 빈다고 한다.

“나 다리 아파서 아홉 군데는 못 가.”

내가 말했다.

“나도 너 태우고 아홉 군데는 못 다녀.”

피나가 웃으며 대답했다.


첫 번째 절은 국숫집 가까이에 있었다. 걱정했던 대로 법당이 까마득하게 높은 계단 위에 있었다. 엉금엉금 계단을 기어올라 화려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다시 엉금엉금 계단을 기어 내려와 기름을 사 등잔에 붓고, 또 금종이를 사 법당 바닥에 들어간다는 큰 공에 붙였다.

첫 번째 절을 나와 두 번째 절로 향했다. 피나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동시에 부지런히 동네 가이드를 했다. “저 콘도에 걔가 살아. 걔, 관광 가이드.” “카페 좋지? 백만장자 사업가가 하는 카페. 그린티라테를 잘 해.” “저 일식집도 우리 손님이잖아. 그 옆에 피자집, 그때 우리 피자 시켜 먹었던.” “봤어? 노이씨. 손 흔들었잖아. 그때 우리 공원에서 옥수수 주스 사줬던. 알지?” 피나는 보도 사정이 안 좋아 차도로 내려갔다가 차를 피해 다시 인도로 올라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피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할 때마다 넘어질까 봐 겁을 집어먹었다.

자전거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서울의 골목이 산등성이를 타고 이어진다면 방콕의 골목은 수로를 따라 이어졌다. 좁은 수로 옆으로 수로만큼이나 좁은 골목은 좁아서 정취 있었다.

두 번째 절에 도착했다. 법당에 들어가 향과 초에 불을 붙여놓고 피나가 하는 기도문을 중얼중얼 따라 했다. 짧은 기도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이번 절에는 마당에 따로 할 거리가 없었다. 서운했다.

정초에 아홉 군데 절을 돈다는 얘길 들었을 때는 하루에 아홉 군데나 되는 절을 어떻게 도나 했었다. 그러나 다녀보니 얼마든지 다니겠다 싶었다. 집구경만 한 구경이 없는데, 인근에서 제일 멋지고 화려한 집을 골라 다니며 하는 구경이 아닌가. 한국 절은 분위기가 무겁고 가라앉아 있어서 방문하는 사람까지 덩달아 가라앉는데, 태국 절은 색과 디자인이 밝고 가벼워서 방문자의 마음까지 덩달아 경쾌해졌다. 적당히 할 일도 있었다. 초에 불을 붙이고 절을 하고 암송을 하는 게 재밌는 일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꽃을 사고 금종이를 붙이고 기름을 붓는 일도 자잘한 즐거움을 줬다. 절들을 돌아다니는 게 재밌고, 피나의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달리는 게 좋아서 세 번째, 네 번째 절에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더는 무리였다.

절 바로 옆에는 선착장이 있었다. 작은 배가 강을 오가며 승객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배를 타고 건너만 갔다가 도로 건너오자고 피나를 졸랐다. 자전거를 묶어놓고 강을 건넜다. 건너편 선착장에서는 물고기들 밥으로 식빵 가장자리를 모아 팔고 있었다. 한 봉지를 사서 한 주먹씩 던지니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달려들어 식빵을 한입에 넙죽넙죽 삼켰다. 식빵 한 봉지를 강물에 다 털어 넣고, 다시 배에 올랐다.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골목을 되돌아 나오면서 내년 정초에도 피나와 절을 돌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려고 했다. 그러나 몇 개의 절을 돌고 싶다고 해야 할까? 9개를 꽉 채우자니 욕심 사나운 거 같고 2-3개로 하자니 아쉬웠다. 일 년 후니까 4-5개 정도는 걸어서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절 앞까지 택시를 타고 가면 5-6개도 다닐 수 있지 않을까? 골목을 다 빠져나오도록 나는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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