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선생 아줌마

살인의 추억-봉준호

by 김지현

곽선생 아줌마는 엄마가 운영하던 미싱자수학원의 강사였다. 곽선생으로 불리다가 결혼하고 나서 곽선생 아줌마로 호칭이 바뀐 걸 텐데, 지금은 침놓는 일을 하신다. 내가 아줌마한테 치료를 받으러 다닌다고 했더니, J가 물었다.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 애인처럼 동네 사람 침 놔주고 그러는 거? 그거 야매잖아. 왜 그런 델 다녀?” 지금부터 그 얘길 해보려고 한다.

계단에서 미끄러져 무릎을 다쳤는데, 다친 무릎이 세 달 넘게 낫질 않았다.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한의원에서 침도 맞았지만 소용없었다. 같은 시기에 엄마는 어깨 통증을 앓았다. 병원에서는 어깨 근육이 찢어졌다면서 수술을 권했는데, 엄마는 곽선생 아줌마에게 치료를 받고 통증이 완화돼 수술을 받지 않게 됐다. 엄마는 작은 기적을 경험하고 나자 나를 거기 데려가지 못해 안달을 했다.

아줌마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일까. 엄마는 아줌마 얘기를 종종 했는데,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아줌마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런데 아줌마를 보자 마자 어제 본 듯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줌마는 깐깐한 눈매와 군살 없는 몸매, 짧은 파마머리에 옆 가르마를 타 핀을 꽂은 헤어스타일까지 예전 그대로였다. 내가 처음 거기에 간 날은 손님이 많았다. 순서를 기다리는데 침대에 누워 뜸을 뜨는 사람들이 고통으로 손발을 비틀며 신음소리를 참았다. 나는 그걸 지켜보며 매 맞을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겁을 집어먹었다. “이 침은 좀 아파.” 내가 침대에 누웠을 때 아줌마가 경고했다. 침이 피부 표층을 지나 지방층 깊숙이 꾸욱 박혔다. 압정에 찔리는 코르크판의 느낌을 알 것 같았다. 침을 맞고 누워 있은 지 20분이 지나자 아줌마가 침을 뽑고 나서 이번에는 바늘로 무릎을 재봉질하듯 빠르게 여러 번 찌른 뒤 부항으로 피를 뽑았다. 피를 뽑고 나서 부항기를 보여주는데, 그 안에 튜브물감을 쭉 짜 놓은 것 같은 핏덩이가 들어있었다. “많이 아팠나보네, 아유 가엾어라 쯧쯧!” 사람들이 큰 구경거리라도 난 듯 들여다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아줌마는 그 핏덩이를 어혈이라고 했다. 어혈은 연골이 빠져나오며 모세혈관을 막아 피가 고여 뭉친 것인데, 그걸 싹 뽑아내고 나서 뜸을 뜨면 연골이 제자리로 들어가 착 달라붙는다고 했다.

피를 뽑은 다음날 아침 눈을 뜨는데 다리가 너무 가벼웠다. 다리가 안 아팠을 때조차 그렇게 가벼운 느낌이었던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정말 기적이 벌어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희망에 차서 하루도 빠짐없이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그러나 처음의 느낌은 사혈의 일시적인 효과였던 듯 다리는 다시 추를 매단 듯 무거워졌고,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했으며, 희망은 실망과 의혹으로 바뀌었다.

“간판을 안 걸고 이런 걸 하니까 별별 사람들이 다 있어. 어디가 아파서 왔으면 어디가 아픈지를 말을 해야 할 것 아니야. 근데 어떤 여자가 처음 와서는 자기가 어디 아픈지도 말을 안 하고 팔을 내밀면서 ‘보세요.’ 이래. 내가 성질 같아서는 뺨이라도 한 대 올려붙이고 싶지만, 꾹 참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진맥을 봐서 침을 놔주니까, ‘어머 제가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그래. 그래서 내가 어디가 아파서 왔으면 최소한 어디가 아파서 왔다는 말은 해야지 병원에 가서도 그럴 거냐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그랬어. 지금은 단골이야.” 아줌마가 손님들에게 몇 번이고 이야기해주는 일화다. 침 맞고 침 몸살이 나서 남편하고 시동생까지 대동하고 따지러 왔다가 단골이 된 손님 이야기도 아줌마의 주요 레퍼토리다. 아줌마가 그런 얘기를 하는 건 무허가 진료를 하며 겪는 어려움의 토로이기도 했지만, 손님들이 무허가 진료에 대해 품고 있을 말 못할 의혹을 자신이 먼저 말로 꺼내 해명함으로써 손님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아줌마는 손님들의 불안을 미리미리 헤아려 거기에 대해 설명하길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느 날 치료를 받고 나오다가 뜸 뜬 자리가 쓸려서 약국에 들러 밴드를 샀다. 그런데 약사가 피 뽑고 뜸 뜬 자리를 보더니 기겁을 하며 말했다. “아우 무릎에서 그렇게 피 뽑으면 안 되는데. 나이 들어 피 뽑으면 피가 새로 생기지도 않아요. 큰일 나요.” 약사의 말이라 그 말에 권위가 실리면서 겁이 덜컥 났다. 그런데 아줌마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도 알아서 해명했다. “한의원에서는 바늘을 얕게 찔러 피를 뽑다 말면서 피를 많이 뽑으면 빈혈이 온다고 하는데, 어혈은 죽은 피라 많이 뽑아도 빈혈을 일으키지 않아.” 나는 아줌마의 설명을 다 신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설명을 듣고 나면 확신에 찬 의혹이 긴가민가로 바뀌었고,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를 받게 됐다.

아줌마네를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침술원이라고 하자니 가정집이기도 한 그곳은 영등포의 한 시장 골목에 있다. 줄줄이 반찬가게를 지나 파란 철대문집의 철제 계단을 올라가면 2층이 아줌마네다. 현관에 검정색과 보라색 쓰레빠 두 개만 나란히 놓여있는 날은 손님이 아무도 없는 거다. 그런 날은 침을 맞고 누워 있는 동안 아줌마가 하는 얘길 들었다. 보라색 쓰레빠의 임자인 아줌마의 큰 딸이 간난아이 적의 일이다. 아줌마가 낮잠을 자다가 벼락 치듯 큰 소리에 놀라 깼다. 인부들이 양철지붕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면서 난 소리였는데, 그 소리에 놀란 아이가 눈이 뒤집힌 채 경기를 했다. 그날부터 아이는 몸을 가누지도 음식을 삼키지도 못했다. 아줌마가 침을 배운 건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아버지가 침을 놨는데 그 옆에서 시중 들면서 침을 배웠다. 그러다 아버지가 풍으로 누우면서 아버지를 찾아오던 손님들이 아줌마를 찾게 됐다. 이론 공부가 필요할 것 같아 침구학원에도 다녔는데 나라에서 학원은 허가를 내줘서 운영을 하게 하면서 졸업생에게 자격증을 안 줬다. 한때는 침구자격증 제도가 국회에서 거의 통과될 것 같았던 적도 있었지만, 한의사들의 반대로 무산된 뒤로는 논의마저 끊겼다. 아줌마는 침을 한지 47년이 됐는데, 요즘은 점점 일하기가 싫어서 80까지만 하고 그만 두려고 한다. 이제 1년 반 남았다.

이야기는 침을 뽑으면서 끝이 난다. 그 다음은 뜸을 뜰 차례다. 침, 사혈바늘, 뜸에는 제 각각의 색깔의 고통이 있지만, 고통의 강도로 치면 뜸이 으뜸이다. 나는 그 고통들이 차례로 지나가길 기다리며 고문 받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리는데, 옆자리에 누운 손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고통을 떠올린다고 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끝이 있고, 고통도 예외가 아니다. 차가운 소독 솜이 뜸 뜬 자리를 지나가면 치료가 끝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오며 또 한쪽 다리를 끌었나 보다. “또 다리를 끄네. 아파?” 아줌마가 물었다. “아니요. 이제 거의 나았어요.” “근데 왜 그렇게 걸어?” “습관이 돼서.” 아줌마는 자신이 직접 걷는 시범을 보이며, 나에게 다시 걸어보라고 했다. 나는 아줌마 앞에서 마루를 한 바퀴 걸어 보이고 나서 신발을 신었다.

J에게 이 글을 보여주었다. “진짜 야매네. 침도 아버지한테 배우고, 가게도 없이 집에서. 거기 계속 갈 거야?” J는 그 모두를 낙후함으로 받아들였다. J가 아줌마와 비교했던 살인의 추억의 전미선이 떠올랐다. 나 역시 영화를 볼 때 전미선의 의료행위를 시골형사들의 주먹구구식 수사와 동급의 낙후함으로 받아들였다.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 마을은 제대로 된 의료기관 하나 없고 과학수사 같은 건 풍문으로나 들을 수밖에 없는 촌구석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송강호만큼이나 미치도록 범인이 잡고 싶어지면서 시골형사들의 수사방식을 반드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엇으로 여기게 된다. 그러나 송강호는 연쇄살인사건을 맡아 곤경에 빠졌을 뿐 모든 수사에 유전자 감식이니 프로파일러 같은 최첨단 수사방식이 필요한 건 아니고, 최첨단 수사라고 해서 모든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미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작은 왕진가방은 그녀가 베풀 수 있는 의료의 한계지만, 특장점이기도 하다. 그녀는 왕진가방을 들고 환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니는데, 그것은 교통편이 적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많은 시골에 꼭 알맞은 진료방식이다. 그녀의 왕진가방이 보여주는 건 낙후성이 아니라 기동성인 것이다. 그녀는 데이트할 때도 왕진가방을 챙겨 정사 후 여관방에서, 햇볕 따스한 강가에서 피로에 지친 애인에게 침을 놔준다. 그토록 다정하고 도움이 되는 데이트라니. 내게 필요한 게 뭔지 이제야 알겠다. 왕진가방을 든 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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