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표현>
엄마의 막내 여동생, 어린 내 눈에 유일하게 고유의 인격체를 가진 듯 보였던 여자. 이모는 하고 싶은 건 하는 사람이었다.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았다. 자주 했던 말은 "내 마음이야." 그만하라고 울며 애원할 때까지 간지럼을 태운다든지 소보로빵 심부름을 시킨 뒤 윗부분 싹 떼어먹고 푸석하게 남은 부분만 남겨 준다든지 좀 고약한 면이 있어 어린 조카로선 서러울 때가 있었지만 가족 중 누구도 하지 않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이모를 난 좋아했다. 특히 할머니네 2층에 있던 이모의 방엔 내가 갖고 싶은 모든 것들이 있었다. 새빨간 립스틱, CD, 영화 포스터, 어른의 옷과 냄새가 가득한 그 방의 화장대 앞에서, 소보로 부분만으로 이루어진 빵이 있다면 이모 립스틱 중 하나랑 물물교환 할 수 있을까 상상하기도 했다.
가족들은 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이모를 '이상한 애'로 평가하곤 했는데 사실 이모의 행동들엔 매사 이유가 있었다. 난 이모가 좋으면서도 어렵기도 해서 이모에 대해 궁금한 점이 생길 때마다 비교적 편한 삼촌에게 먼저 묻곤 했는데, 삼촌의 대답이 항상 "누가 알아, 왜 저러는지" 였던 것에 반해 막상 용기 내어 직접 물으면 이모만의 구체적인 로직을 들을 수 있었다. 이모가 20대 초, 내가 어린이였던 시절의 말들이지만 어떤 것들은 지금까지도 가끔 떠오른다.
나랑 동생들을 왜 그렇게 간지럽히는지: "어릴 때 싸우면 너네 엄마가 '나중에 꼭 너 같은 애 낳아'라고 악담했으니까"
왜 소보로빵 맛있는 데는 혼자 다 먹고 맛없는 것만 남겨 주는지: "이러려고 오랜 시간을 기다렸거든 그냥 마음대로 해보는 거야"
(직전에 이모로부터 그 얘기를 듣고) 투팍이 비기를 왜 죽였어?: "둘 다 자기만 옳다고 믿었던 거 같아"
화장품 몰래 발랐다고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써봐도 되는지 물어봤어야지 너랑 나는 다른 사람인데"
변기 위엔 왜 호러물만 있는지: "누가 공포에 시달리고 고통받고 그런 걸 읽고 있으면 똥이 잘 나온다?"
콘트라베이스 왜 전공했어?: "뭘 할지 모르겠을 땐 남들이 뭘 하는지 잘 본 다음에 다른 걸 하면 돼"
왜 할머니는 이모 남자 친구를 싫어하는지: "뭔 상관이야 난 그 사람 좋아"
2021년이 되도록 이모의 대답들이 유효성과 일리를 지닌 건 아마 진짜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의견이 있었기에, 동의만 하진 않았기에, 부드럽지 못했기에, 소속감을 목표로 하지 않았기에, 아니 더 명료하게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냈기에 이모는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졌다. 명절에도 못 보는 경우가 생기다 결국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건 한국에 잠깐 들어왔던 여름방학 때였다. 그 사이 결혼했다가 이혼을 앞두고 있었던 이모는 소송에 필요한 진술서를 도저히 써 내려갈 수가 없다며 도와 달라고 했다.
도와 달라니. 이모가 누구에게든 도움을 요청하는 건 적어도 나 아는 선에선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기에 일정을 취소하고 달려갔다. 어린 시절 동경의 장소였던 그 방에 이모는 쌍둥이 아이 둘과 함께 돌아와 있었다. 엉엉 울기도 깔깔 웃기도 하며 두서없이 쏟아내는 이모의 말들을 전부 받아 적고 앞 뒤를 연결시키니 새벽 해가 떴다. 나 주려고 편의점에서 사뒀다는 과자와 컵라면을 먹는 사이 이모는 부엌에서 쌍둥이들 먹일 걸 준비해 왔고 갓 지은 흰쌀밥에 얇게 썰은 골든키위를 올리고 너비아니로 곱게 감싸 아기 새들 같은 두 입에 번갈아가며 넣어주었다. "나는 그거 안 줘?" 하니 "넌 너네 집에 가서 해달라고 해"라며 이모 특유의 짓궂고 커다란 웃음을 지었다.
오래된 방으로 돌아온 이모의 모습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언어로 정리되지 않는 감상을 품은 채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이모와 연결해보려 했지만 도무지 되질 않았다. 그날 내가 본 이모는 슬픈 여자도, 실패한 딸도, 불쌍한 동생도, 남겨진 아내도 아닌 그저 부지런히 자기 가족을 지키는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모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먼 나라로 떠났다. 이유를 묻기도 전에 이해할 수 없다 판단하거나, 태곳적 충고를 새겨듣지 않았음을 탓하는 이들이 없는 곳으로.
아이들이 많아지니 집이 좁게 느껴져 이사 갈만한 곳을 찾아보던 중 이모의 방 생각이 났다. 그 방뿐 아니라, 할머니 댁엔 수십 년 된 나무들이 울창한 작은 마당과 명절에 이모 삼촌들 모두 모여 2층 베란다 창 활짝 열고 달구경하던 추억이 있기도 했다. 할머니 댁엔 때마다 들르면서도 이모의 방엔 이모 떠난 후 들어가지 않았기에 생각해보니 진술서 받아쓰던 밤 이후 처음이었다.
기억 속 모습은 온 데 간데없고 이모와 쌍둥이가 보낸 시간들이 발걸음 하는 이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방, 시선이 너무 생생해 빈 방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이의 삶을 이어받지도, 어물쩡 섞이지 말고 난 내 가족만의 공간을 찾아야겠지. 잊지 않고 싶어 사진을 한 장 찍고 누가 깨기라도 할까 조심하듯 조용히 문을 닫았다.
이모.
누가 뭐라고 하든 있잖아 난 어쩐지 알 것 같아
가슴 깊이 지치고 슬픈 날도 있겠지만
이모가 돌아볼 필요 없이 행복하기도 할 거란 거
<사랑의 표현>
01. 비극일까 희극일까
02. 작은 집 안 더 작은 집
03. 숨의 화음
04. 생닭을 사 왔던 날
05. 막내 이모의 방
06. 네 평 남짓 공간에서
07. (번외)페럿은 어떤 동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