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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 Oct 24. 2021

막내 이모의 방

<사랑의 표현>






엄마의 막내 여동생, 어린 내 눈에 유일하게 고유의 인격체를 가진 듯 보였던 여자. 이모는 하고 싶은 건 하는 사람이었다.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았다. 자주 했던 말은 "내 마음이야." 그만하라고 울며 애원할 때까지 간지럼을 태운다든지 소보로빵 심부름을 시킨 뒤 윗부분 싹 떼어먹고 푸석하게 남은 부분만 남겨 준다든지 좀 고약한 면이 있어 어린 조카로선 서러울 때가 있었지만 가족 중 누구도 하지 않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이모를 난 좋아했다. 특히 할머니네 2층에 있던 이모의 방엔 내가 갖고 싶은 모든 것들이 있었다. 새빨간 립스틱, CD, 영화 포스터, 어른의 옷과 냄새가 가득한 그 방의 화장대 앞에서, 소보로 부분만으로 이루어진 빵이 있다면 이모 립스틱 중 하나랑 물물교환 할 수 있을까 상상하기도 했다.



가족들은 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이모를 '이상한 애'로 평가하곤 했는데 사실 이모의 행동들엔 매사 이유가 있었다. 난 이모가 좋으면서도 어렵기도 해서 이모에 대해 궁금한 점이 생길 때마다 비교적 편한 삼촌에게 먼저 묻곤 했는데, 삼촌의 대답이 항상 "누가 알아, 왜 저러는지" 였던 것에 반해 막상 용기 내어 직접 물으면 이모만의 구체적인 로직을 들을 수 있었다. 이모가 20대 초, 내가 어린이였던 시절의 말들이지만 어떤 것들은 지금까지도 가끔 떠오른다.




나랑 동생들을 왜 그렇게 간지럽히는지: "어릴 때 싸우면 너네 엄마가 '나중에 꼭 너 같은 애 낳아'라고 악담했으니까"


왜 소보로빵 맛있는 데는 혼자 다 먹고 맛없는 것만 남겨 주는지: "이러려고 오랜 시간을 기다렸거든 그냥 마음대로 해보는 거야"


(직전에 이모로부터 그 얘기를 듣고) 투팍이 비기를 왜 죽였어?: "둘 다 자기만 옳다고 믿었던 거 같아"


화장품 몰래 발랐다고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써봐도 되는지 물어봤어야지 너랑 나는 다른 사람인데"


변기 위엔 왜 호러물만 있는지: "누가 공포에 시달리고 고통받고 그런 걸 읽고 있으면 똥이 잘 나온다?"


콘트라베이스 왜 전공했어?: "뭘 할지 모르겠을 땐 남들이 뭘 하는지 잘 본 다음에 다른 걸 하면 돼"


왜 할머니는 이모 남자 친구를 싫어하는지: "뭔 상관이야 난 그 사람 좋아"




2021년이 되도록 이모의 대답들이 유효성과 일리를 지닌 건 아마 진짜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의견이 있었기에, 동의만 하진 않았기에, 부드럽지 못했기에, 소속감을 목표로 하지 않았기에, 아니 더 명료하게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냈기에 이모는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졌다. 명절에도 못 보는 경우가 생기다 결국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건 한국에 잠깐 들어왔던 여름방학 때였다. 그 사이 결혼했다가 이혼을 앞두고 있었던 이모는 소송에 필요한 진술서를 도저히 써 내려갈 수가 없다며 도와 달라고 했다.



도와 달라니. 이모가 누구에게든 도움을 요청하는 건 적어도 나 아는 선에선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기에 일정을 취소하고 달려갔다. 어린 시절 동경의 장소였던 그 방에 이모는 쌍둥이 아이 둘과 함께 돌아와 있었다. 엉엉 울기도 깔깔 웃기도 하며 두서없이 쏟아내는 이모의 말들을 전부 받아 적고 앞 뒤를 연결시키니 새벽 해가 떴다. 나 주려고 편의점에서 사뒀다는 과자와 컵라면을 먹는 사이 이모는 부엌에서 쌍둥이들 먹일 걸 준비해 왔고 갓 지은 흰쌀밥에 얇게 썰은 골든키위를 올리고 너비아니로 곱게 감싸 아기 새들 같은 두 입에 번갈아가며 넣어주었다. "나는 그거 안 줘?" 하니 "넌 너네 집에 가서 해달라고 해"라며 이모 특유의 짓궂고 커다란 웃음을 지었다.



오래된 방으로 돌아온 이모의 모습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언어로 정리되지 않는 감상을 품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이모와 연결해보려 했지만 도무지 되질 않았다. 그날 내가  이모는 슬픈 여자도, 실패한 딸도, 불쌍한 동생도, 남겨진 아내도 아닌 그저 부지런히 자기 가족을 지키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모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라로 떠났다. 이유를 묻기도 전에 이해할  없다 판단하거나, 태곳적 충고를 새겨듣지 않았음을 탓하는 이들이 없는 곳으로.





아이들이 많아지니 집이 좁게 느껴져 이사 갈만한 곳을 찾아보던 중 이모의 방 생각이 났다. 그 방뿐 아니라, 할머니 댁엔 수십 년 된 나무들이 울창한 작은 마당과 명절에 이모 삼촌들 모두 모여 2층 베란다 창 활짝 열고 달구경하던 추억이 있기도 했다. 할머니 댁엔 때마다 들르면서도 이모의 방엔 이모 떠난 후 들어가지 않았기에 생각해보니 진술서 받아쓰던 밤 이후 처음이었다.



기억 속 모습은 온 데 간데없고 이모와 쌍둥이가 보낸 시간들이 발걸음 하는 이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방, 시선이 너무 생생해 빈 방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이의 삶을 이어받지도, 어물쩡 섞이지 말고 난 내 가족만의 공간을 찾아야겠지. 잊지 않고 싶어 사진을 한 장 찍고 누가 깨기라도 할까 조심하듯 조용히 문을 닫았다.






이모.

누가 뭐라고 하든 있잖아 난 어쩐지 알 것 같아

가슴 깊이 지치고 슬픈 날도 있겠지만

이모가 돌아볼 필요 없이 행복하기도 할 거란 거








빈 방엔 이모도 쌍둥이들도 없지만 그 가족의 시간이 남아 있다.



이삿날 냉장고 밑에서 고양이들이 신나게 가지고 놀던 여러가지가 나왔다. 삶이 지나간 자리는 이렇게나 귀엽기도,



무척 쓸쓸하기도



더 없이 아름답기도 하지.






<사랑의 표현>

01. 비극일까 희극일까

02. 작은 집 안 더 작은 집

03. 숨의 화음

04. 생닭을 사 왔던 날

05. 막내 이모의 방

06. 네 평 남짓 공간에서

07. (번외)페럿은 어떤 동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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