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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 Oct 24. 2021

생닭을 사 왔던 날

<사랑의 표현>





그 기분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적으려고 돌이키는 것만으로 심박이 빨라진다. 사냥에 성공한 어미 사자처럼 큰 보폭으로 지하차도 옆 길을 올랐다. 기대감에 부풀어서인지, 길이 가팔라서인지, 왼 손엔 생닭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오른손으론 뛰는 가슴을 꾹 누른 채 집으로 향했다. 직접 밥을 만들어 줄 작정이었다. 드디어 찾은 나의 쓸모, 30년 만에 처음으로 순간이 초 단위로 와닿았다. 의기양양하게 문을 열고 인간의 말을 알 리 없는 아이들에게 외쳤다. "엄마가 밥 가져왔어!" 스스로를 엄마로 칭한 것 역시 처음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말이 그렇게 튀어나왔다. 알아들은 건 아니겠지만 아이들은 번개처럼 봉지 가까이로 달려 모였다. "어때? 맛있을 것 같아? 잘 사 왔어?" 안에 들은 뭔지 모를 뭔가에 적잖이 충격받은 듯, 심상치 않은 냄새를 놓칠까 분주히 움직이는 다섯 개의 코에 마음이 바빠졌다. 음... 근데 이걸 어쩌지?



'생닭 해체 법'을 유튜브에 영문으로 검색하니 세계 각지 정육 달인들의 모습이 펼쳐졌다. 그들이 시장이나 식당 내부에서 능숙하게 닭을 해체하는 걸 신기하게 지켜보던 누군가가 찍어 올린 영상들이었다. 정보 전달을 위해 공유된 자료가 아니었기에 전체 상황을 이해하기까진 여러 영상의 조각들을 참고해야 했고, 해부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된 마음으로 진지하게 집중했다. 밥 준비 전 과정에서 닭을 사 와 세척한 뒤 조각내는 건 재료 손질 정도의 시작 단계에 불과했지만, 그에 몰두하게 된 심정엔 원인이 있었다. 아이들을 데려온 이래 사료를 내내 급여하며, 그 갈색 알갱이들이 품은 과정의 진실을 너무도 궁금해 해왔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예전에 찐구를 키울 때도 그랬고 동물들이 '진짜' 음식을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건 사람의 음식, 개와 고양이에겐 사료가 음식이라는 생각 외엔 의문이 생길 만큼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마트의 유기농 쌈채소 코너에서 가장 싱싱한 청상추를 고르고 골라 담던 어느 날, 문득 이상하다고 생각이 든 것이었다. 페럿들이랑 고양이들에게도 신선한 뭔가를 사다 주고 싶었는데 뭘 사야 할지 알지 못했다. 줄이 점이는 상추가 조금만 시들해도 먹질 않아 하루 두 번 파릇한 새 상추로 갈아주는데, 왜 다른 애들은 제조된 지 일 년이 넘고 그릇에 꺼내 둔지도 며칠이나 된 사료를 아무런 불평 없이 먹는 걸까? 당시 내가 애들 밥 준비에 하던 수고를 따져본다면 사료값 더하기 그걸 몇 개의 그릇에 나눠 붓는 데 드는 하루 3분 정도의 시간이 전부일 것이다. 그 외엔 하려고 한 적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더 공부하고 수고하기로 한다면 아이들의 생활이 완전히 바뀔 것이란 얘기이기도 했다. 생식과 자연식에 대해 웹 상에서 찾아낼 수 있는 정보를 모두 읽고 관련 서적을 직구해 기다리며 밥시간, 밥그릇, 밥, 간식, 몇 주에 걸쳐 하나하나 바꾸어 나갔다. 아이들의 밥을 생식과 자연식으로 완전히 전환한 시점부터 더 이상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누구도 정확히 알아내지 못할 사료를 구매할 일이 없어졌고 우리 가족 안에서 전에 없던 완전함을 느꼈다. 눈빛, 털, 기력, 교감방식 등 아이들 또한 모든 면에서 한 차원 올라선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당시 우리를 감싸고 있던 공기와 기분을 구체화하려 기억을 더듬고 더듬었다. 아마 그 무엇도 우리를 막을 수도 멈출 수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절대로 완벽하게 최선의 선택만을 통해 최고의 방식으로만 보살피고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질병을 물리치고 세월을 비껴갈 수 있을 거라고.   







'고대 식이와 현대 영양학이 만났다'고 쓰여진 거대한 사료 포대와 잠시 잠깐 기댈 곳이 필요할 뿐인 고양이.


처음 만든 고양이 생식을 망설이지 않고 먹어주어 정말이지 기뻤다.


페럿은 고양이보다도 야생에 가까운 신체조건을 가졌기에 자연식으로의 전환이 중요했다. 특히 잉크는 소화력이 약해 쭉 병원을 다녔었는데, 생식 전환 후 약 급여를 멈출 수 있었다.


이 즈음 커다래진 덩치에 맞게 큰 통으로 이사를 한 줄이 점이


줄이는 너무 맛있으면 집중하다 그만 더듬이에 힘이 쭉 빠졌다.


자연식 리서치에 굉장히 심취해서 정보 공유 블로그를 운영하려 목차까지 싹 정리했었다. 하지만 아이들 밥을 차리고 치우길 반복하면 하루가 끝이 나, 실제로 운영까진 못했다.




오트. 오트는 바라만 봐도 미소가 지어졌다.


에버는 무지 개구지게 자라났다.


언제나 뭔가를 파악하고 있는 듯한 눈을 하고 있는 잉크



기다려 온 간식 시간! 직접 말린 닭모래집 등을 주었다.







<사랑의 표현>

01. 비극일까 희극일까

02. 작은 집 안 더 작은 집

03. 숨의 화음

04. 생닭을 사 왔던 날

05. 막내 이모의 방

06. 네 평 남짓 공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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