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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공x리라영 Feb 21. 2024

당신이 영어를 못 하는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다.

공부할 때 운이 좋아야 하는 이유 

 "선생님 수업 방식이 마음에 들어요." 어제 학부모님께 받은 카톡 메시지다. 읽는 순간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고, '내가 꾸준히 공부하지 못했던 것은 내 탓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내내 공부할 때, 항상 기복이 좀 있었었다. 특히 수능을 위해 공부할 때에는 내가 하는 방식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수학을 포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다. 누구 하나 시원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공부를 좋아했지만, 스스로 루틴에 맞춰서 공부하는 것도 잘했지만,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 게 맞나'라는 의문은 불안을 낳았고, 불안은 나에게 감정기복을 가져다주었다. 


 똑똑한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게 아니다. 똑똑한 애들이 공부한 것에 비해 시험을 잘 본다고 해도 본인 실력에 비해 실수를 한다. 공부를 잘하고, 수업 태도가 좋고, 시험에도 실수를 안 하고, 높은 성적을 받는 아이들은 감정 기복 없이 꾸준히 공부하는 아이들이다. 물론 꾸준히 공부하는 애들 중에서도 머리가 똑똑하며, 시험에서 실수 하나 없이 항상 만점 받는 아이들도 있다. 

네이버 사전 steady 뜻 

 '꾸준한', '변함없는', '한결같은', '진정되다', '안정되다'라는 뜻을 가진 steady를 이때 사용할 수 있다. 예문은 "She is such a steady student. 그녀는 정말 꾸준한 학생이야."이다. 부럽고 놀라웠다. 숙제도 실수 없이 전부 해오고, 시험도 실수 하나 안 해서 매번 만점을 받는 학생들이 특징이 'steady'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자신이 본래 이런 사람이라서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담임인 나 때문에 수업시간에 정신 차리고 수업을 들어야 하고, 숙제를 제대로 해와야 하고, 수업을 제대로 듣고 숙제를 꼼꼼히 하다 보니 영어 실력이 향상되고, 실력이 향상되니 다 재밌는 거다. 발표하고 말할 때마다 칭찬을 엄청 받으니 말이다. 나 덕분에 영어가 재밌고 열심히 공부한다는 것은 스승의 날 카드에 쓰여있는 내용이었다. 참고로 내가 숙제를 확인할 때에는 한글 또는 영어에서 철자 하나라도 틀렸는지, 알파벳 'b'와 'd'를 순서대로 맞게 썼는지, 문장의 첫 글자는 대문자로 적어야 하고, 영어 단어만 적었을 때는 전부 소문자로 적었는지, 'English'의 첫 글자는 대문자인지, 'I'는 대문자인지 까지 확인한다. 내 눈은 한글과 알파벳 철자를 확인하는 데에 극도로 발달해 있으며 내 머릿속은 이것들을 확인하고 피드백을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아이들을 칭찬해 줄 때는 꼭 이름을 먼저 부르고, 칭찬해 준다. 거의 로봇 수준으로 칭찬한다. 칭찬을 받는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칭찬하는 나도 재밌다. 아이들이 하나씩 배우고 알아가는 게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구가 어제 보내준 보스턴 공공 도서관 사진. 보스턴에 명문대가 많아서 그런지 학업 분위기가 남다르다고 한다 

 어제 수업방식이 마음에 든다고 톡을 주신 분은 아이들이 'steady'하게 변하는 것에 감동받으셔서 그렇게 연락 주셨다. 다른 선생님과 1년 동안 수업을 한 남매였는데 나랑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것은 기본이고 교재 빈칸도 꼼꼼히 채우고 숙제도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영어 숙제를 했다고 엄마한테 자랑을 하니, 감동을 받으셨던 것이다. 원래 숙제를 하라고 하면 책을 이미 버려서 못하겠다고 시치미 때는 아이들이었다. 작은 아이는 수업 2주(4번)하고 완전히 바뀌었다. 큰 애는 첫 번째 수업에서 이미 결정 났다. 큰 애는 첫 수업 시간 때 나의 한계를 보려고 나를 열심히 테스트했고, 나는 가능한 범위와 불가능한 범위를 뚜렷하게 알려주었다. 한 마디로 기강을 잡은 것이다. 그렇게 기강 잡힌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집중을 했고, 그래서 대답을 잘했고, 나는 칭찬을 듬뿍해줬다. 이 남매의 수업은 줌으로 이루어졌으며 어머니께서 화면 밖에서 항상 듣고 계신다. 


 아이들은 미꾸라지 같다. 미꾸라지를 작은 공간에서 키우면 작은 크기로 자라지만 넓은 곳에서 키우면 그만큼 크게 자란다고 한다. 어떤 선생님이 어떤 환경을 조성해 주냐에 따라 10cm로 자라는 미꾸라지가 될 수도 있고 30cm 이상이 되는 미꾸라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걸 아이들 스스로도 느낀다. 예전에 일할 때, 1년 만에 내가 다시 담임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이들이 한 말이 있다. "쌤과 공부할 때가 우리 전성기였어요." 아이들도 내가 관리하고 숙제와 아이들에게 신경 쓸 때 본인 실력이 부쩍 향상되는 것을 알고 , 그 과정에서 본인 스스로 재미를 느낀다. 그리고 많이 성장한다. 

친구가 보내준 하버드 건물 사진. 공부 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이고 전철에서 다들 독서를 한다고 했다.

 여태 공부할 때 불안하고, 감정기복이 있는 것을 내 탓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리고 난 'steady'한 애들처럼 되려면 엄청난 노력을 하거나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수업을 듣고 바로 변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공부할 때 불안한 게 내 탓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과 환경이 중요하구나. 뭐를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지도해 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나도 좀 더 자신감을 갖고, 또 나 자신을 믿고 공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솔직히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동시에 희망도 생겼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려주는 선생님이나 멘토를 만나면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함을 이기고 나도 크게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 그런 선생님이나 멘토가 없어도 나 자신 또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면 그게 바로 내 멘토가 될 수 있다는 희망, 무엇보다도 감정기복 있는 게 오롯이 내 탓은 아니며 나도 steady 해 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나처럼 공부할 때 감정기복이 심하거나, 맞는 길인지 몰라서 불안할 때, 이것들이 본인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공부할 때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사실 본인이 머리가 나쁘거나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내가 '맞게 공부하는지' 몰라서 힘든 거였고, 환경에 변화를 줘서 불안을 좀 다스릴 수 있게 되면 실력이 크게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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