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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을 보내며 생각했다

La Verna(라베르나)

by La Verna

아주 먼 옛날, 어느 나라에

세상 누구보다 총명하고 잘나가던 청년이 있었다.

부유했으며, 집안이 좋고 금수저라는 말로는 모자랐다.


청년은 가진 게 많았다.

돈과 인기, 명예까지.

멋진 옷을 입고 거리를 거닐면,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청년도 그게 싫지 않았다.

허영심도 있었고, 스스로도 자신이 꽤 멋지다고 여겼다.


가끔은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어했다.

부와 성공을 이룬 그는 세상을 내려다보며,


"나 참 잘 나간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루하루가 쌓일수록, 사람들이 그를 찾을수록

마음 한구석이 답답했다. 텅 비어갔다.

남들이 부러워할수록, 청년은 점점 더 외로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은 길가에서 아주 희미한 작은 등잔불 하나를 발견했다.

반딧불처럼 희미하고, 깜빡거리는 작은 불빛.

빛은 바랬고, 초라했다.

금칠도 없고, 비단 장식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 등잔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저게 뭐야,

초라하기 짝이 없잖아."


청년도 한때 그런 눈으로 그것을 봤다.

하지만 그날, 청년은 발걸음을 멈췄다.

희미한 등잔불이,

어쩐지 가슴 한켠을 파고들어

따뜻함을 느끼고 있었다.

청년은 그 등잔불에 마음을 빼앗겨 매일 그 빛을 찾아갔고,

곧이어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이 뭐라든,

청년은 그 등잔불을 '부인'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는 선언했다.
"나는 이 부인을 위해 모든 걸 버리겠다."

청년은 조심스럽게 그 등잔불을 품에 안았고,

그가 번 돈과 집안의 재산까지 팔아

그 부인을 위해 썼다.


주변은 술렁였다.

부모는 기절할 듯 호통치며 소리쳤다.

"우리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 모든 재산을 팔고, 이 짓거리를 하는 거야?

너는 미쳤다, 지금. "


아무리 말리고, 협박하고, 애원해도

청년은 돌아서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가 청년의 뺨을 후려쳤음에도

청년은 부인에게 깊이 빠져있었다.

결국 부모는 아들을 법정에 세웠다.


"우리가 준 걸 돌려놔라! 네가 자식이냐!

이 배은망덕한 놈아!"

법정은 소란스러웠다.

청년은 조용히, 자신의 비단옷을 벗기 시작했다.

금박이 박힌 벨트를 풀고, 값비싼 신발을 벗었다.

입고 있던 모든 옷을 말끔히 벗어가지런히 개어,

부모님 앞에 차곡차곡 내려놓았다.


"여기요...

당신들이 주신 것, 모두 빠짐없이 돌려드립니다.

저는 이제 부인을 따라갑니다."


청년은 그렇게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맨발로 법정을 걸어 나섰다.

사람들은 경악했고, 부모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그러나 그는

세상 누구보다 가볍고 자유로웠다.


그때부터 청년은 누더기를 걸치고

맨발로 살기 시작했다.

춥고, 외로웠다.

밤은 깊었고, 눈보라는 거칠었다.

비바람은 뺨을 때리고, 발은 얼어붙었다.

그래도 청년은 등잔불을 안고 멈추지않았다.

작고 약한 등잔불은 청년의 온 마음을 비추었다.

그가 '부인'이라 부르던 그 등잔불은

점점 더 또렷한 빛을 밝혀갔다.

청년은 부인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떤 고생도 견딜 수 있었다.


밤이 깊어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청년은 등잔불을 품에 꼭 안고 걸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린 시절 절친했던 친구들을 시작으로,

그의 삶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람들은 하나둘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명뿐이었지만,

곧 수백 명, 수천 명이 그의 곁에 모였다.


그를 '정신나간 놈'이라 부르던 이들이

그를 찾아와 함께 그 등잔불을 위해 살고 싶다고 했다.


그들은

청년의 삶을 부러워했다.

그의 가난과 자유를 사랑했다.


청년은 긴 여정의 끝에

한 산에 이르렀다.

그곳의 이름은 La Verna(라베르나)였다.


산은 거칠고, 깊었다.

절벽은 아찔했고, 숲은 어두웠다.

하지만 그곳은 청년을 품어주었다.


La Verna, 고통과 기적이 뒤엉킨 신비의 산이었다.

상처와 빛이 공존하며 기적이 흐르는 곳이었다.

그곳엔 부인이 있었다.

더 이상 작은 등잔불이 아닌,

거대한 불길이 되어, 절벽을 비추고 숲을 감싸고 있었다.

청년은 그동안 가슴속에 품어왔던 초라한 빛이,

커다란 불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불은 그를 반겼다.

청년은 그곳에서 부인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깊은 상처와,

가장 눈부신 기적을 함께 받았다.


La Verna는 그렇게 신비의 산이 되었다.

버림과 얻음, 눈물과 기쁨이 함께 흐르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청년을 따르던 큰 별 하나가 졌다.

4월 21일, 오전 7시경

그를 따르던 또 하나의 큰 별이, 조용히 저편으로 넘어갔다.


내가 가장 행복할 때, 그 별은 높이 떠 있었다.

세상의 옷을 벗고 맨몸으로 들어설 때,

큰 별은 희망이 되어주었다.

내가 몸져누워 의식을 잃은채,

한없이 깊은 잠에 빠져 숨이 희미해졌을때에도,

별은 고요히 온정의 미소를 건넸다.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가벼웠던 그때,

육신의 고통에 이끌려

떨리는 손끝으로 다시 세상의 무거운 옷을 걸쳤을때도

별은 여전히 내안에서 타올라주었다.

눈물로 젖은 세상이라도

별은 말없이 기쁨을 알려주었다.



나는 별을 보내며

생각했다.


"그 발목이라도 잡고 함께 갔더라면,

나도 좋은 곳에 닿았을 텐데..."


새벽 종과 정원,

조용한 발소리

별빛보다 먼저깨어

부인을 향해 손을 모았던 시간들은

이제 먼 기억이 되었다.


하지만 그 발자취를 따라

나는 여전히

La Verna로 남아있다.

고통과 기적이 맞물린 길을 걷는다.


나는 이마와 가슴에
작게 타오르는 별.

부인의 흔적을 새겼다.

그 흔적은 차갑고, 눈물처럼 뜨거웠지만

꺼질 듯 아픈 불꽃은,

오히려 나를 살아있게 했다.

그리고 내가 쓰러질 때마다,

부인은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웠다.



두 청년이 그토록 사랑했던,

그 부인의 이름을

이제야 말할 수 있다.


부인의 이름은, 가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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