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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없는 방귀 앞에서, 나는 이별을 상상한다

사랑의 생리현상, ㅡ 그 끄윽과 푸슉 사이

by La Verna

나는 언젠가 사랑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진다면, 난 필연적으로 한 남자의 방귀와 마주치게 될 것이다.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상상해 본다.

늦은 토요일 오후, 부드러운 햇살 아래 함께 영화를 보며 소파에 늘어진 두 사람. 사랑은 익어가고, 공기 중엔 준비한 맛있는 과자와 간식거리들의 향기가 은은히 퍼지고 있다.

그러나… 갑자기 푸슉.

그는 느닷없이 방귀를 뀌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과자를 한 조각 집어 입에 넣는다.

뭔가 이상하다.. 이건 사랑을 확인하는 생리학을 이용한 사랑의 시험인가. 내얼굴 앞 70cm 지점에서 탄생한 그 괴기한 기체 괴물은 대체 무슨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나는 방귀를 미워한다.

정확히는, 무심하게 툭! 한 방 던지는 그 무심한 자신감에 괘씸함을 느끼며,

'아... 나 아직 철 안 들었구나.

방귀 하나에 배신감을 느끼는 타입이라니..' 하며


내 예민함에 자책하게 만드는 그 시츄에이션이 싫다.


“왜 그렇게 예민해?”라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나는 그 예민함을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무심하게 툭 던진 방귀와 트림 앞에 '조심해주지않음'과 '인간적 모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생리현상에 대해 방귀를 뀌더라도,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특수요원처럼— 쑥스러운 눈빛을 한 채, 살짝 몸을 틀고, 최대한 무음으로..

방출 직후엔 자신도 놀란 척 살짝 눈을 동그랗게 뜨며

'헐...?... 미안.. 나도.. 몰랐어..’

한 마디 툭. 표정은 약간 굳고, 끝나자마자 조용히

죄의식 70%, 귀여운 당황 20%, 배려심 10%쯤 섞여서, 그건 방귀가 아니라,

사고로 떨어뜨린 유리컵이었다 같은 태도로 그렇게 쿵쾅거리는 나의 감정선을 애교 있게 진정시켜줬으면 한다.

최소한 ‘지금 방금 뭐 지나갔나?’ 싶은 정도의 미스터리를 유지해줬으면 하는거다.

특히 대화 중이거나, 식사 중이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내가 원하는 건...

무균실이 아니다.


조심해주는 매너, 그것인 것 같다.

사실 그래서 고민이다. 나 너무 까다롭나..


우리 부모님은 결혼 40년 차인데, 단 한 번도 서로 앞에서 방귀를 무심하게 뀐 적이 없다.

아니, 방귀라는 개념 자체가 가정 내에서 조용히 해결하고 오는 분위기였으며, 어딘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현실적으로 삐져나오면 분명하게 사과했다. 그 정도로 고귀한 분들이다.

생리현상을 '자연'이라 부르기보다,

예의를 갖춘 '비공개적 신체적 독백'같은 느낌이었던거 같다. 은근 시적이고 조용한 문화였다.


그런데 미래의 내 남편이 내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끄억~~! 트림을 하며 “오늘 고기 괜찮았지?” 이러면?

죄송한데, 지금 이 자리에서 결혼 반납,.. 심히 상상해요...

나는 '이 트림은 진심이었어' 같은 식의 사과를 들을 자신이 없다.


사랑을 하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하고 방귀와 트림마저도 사랑스럽게 봐줘야 하는데, 나는 정말 아직 멀었다... 아무리 봐도 트림과 방귀를 무심하게 끄윽,끄억!~...퓨슉,뿍북 뀌는건 아름다운 사랑이 아닌 존중의 영역같다.


가끔 회식이나 가족들과 외식을 가면,

식당에서조차 그렇게 끄억 끄윽하고, 방귀를 아무렇지않게 북북 뀌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그리고는 충격을 받는다.

사실 오늘봤다....


내 미래의 남편이 그렇게한다면 예술과도 같던 사랑이, 갑자기 주방 가스 점검표처럼 바뀌는 느낌일 거 같다.


내가 생리현상을 극혐하는건 아니다. 나도 때로는 인간이다. 나도 몰래 방귀를 뀐 적이 있다. 다만, 나는 그것을 쥐도 새도 모르게 알아서 처리한다. 한 편의 오페라처럼 정중하게 감출 줄 안다. 아마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가족 간이면 더 조심했으면 좋겠다는 것.

과장해서 음소거상태로, 향기없는 무취의 명품방귀를 선보이며, 내면의 품격을 지켰으면 한다.

이런게 교양인의 생리현상 아닐까....? ㅋㅋ


어쩌면.. 아주 조심스레... 그 사람의 무방비한 푸슉이, 진짜 ‘편안함’의 상징일 수도 있을 텐데...

내가 너무 자비롭지 못한 것 같다.

그건 우리가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사이라는 증거일텐데..

그가 방귀를 뀔 때, 나는 말할 수 없을거같다.

“어머, 이 향은… 나를 믿는 향기^^!”

못하겠다.


물론 그 향이 실제로 쾌적하다는 건 아니다. 인간은 사랑 속에서도 후각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한다.

내가 꿈꾸는 사랑은 향기없는 로맨스인가, 아니면 방귀마저 포용하는 도량인가?

아직 답은 없다.

다만 하나 분명한 것은 — 만약 그가 얼굴 앞에서 무방비하게 방귀를 뀌고 지나가면, 나는 그를 사랑하면서도 이별을 상상할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리 사랑해도 콧속의 공기는 타협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슬쩍 기도한다.

내가 조금 더 자비로운 사람이 되기를...

부디, 미래의 내 남자친구여.

트림은 마음속에서만 해주길.

그리고 방귀는... 적어도 내 앞에서만은,

조심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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