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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해지면, 진다

by La Verna

모든 일을 '놀이'처럼 다루려 한다.


뭐든지 너무 열심히 하려는 순간, 이상하게 나는 진다.

일에 지고, 나 자신에게 지고, 세상에게도 약간 지는 느낌이다.

처음엔 열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눈에 불을 켜고 "이번엔 꼭 해낸다!"며 이를 악물고 달려들면

그때부터 어딘가 어긋난다.

근육은 뭉치고, 마음은 말라간다.

열정은 결의로 바뀌고, 어깨는 여유를 잃는다.

너무 열심히 산 나머지, 몸도 마음도 찌뿌둥해진다.

그래서 요즘은 모든 일을 '놀이'처럼 다루려 한다.


"내 인생은 한 방이야!" 같은 텐션은 아니지만,

삶을 공놀이처럼, 쿵 하고 던지면 퉁 하고 돌아오고

그걸 가볍게 다루는 기술을 배우는 중이다.


-몰입과 집착은 두 걸음 차이다.

사람은 쉽게 몰입한다. 스마트폰을 보다가도 거북목이 될 정도다.

몰입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집착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단 두 걸음이면 족하다.

집착은 목표에 끌려가게 만들고, 나를 잃게 만든다.

"잘해야 해", "성과를 내야 해"라는 강박은

가끔 '나'를 저당 잡는다.

기대는 무거워지고, 자유는 작아지고,

삶에 꼭 필요한 센스인 창의력이나 응용력은 숨어버린다.

무엇이든 '이뤄야 할 것'으로 보기 시작할 때

사람은 이상해진다.

그 일은 더 이상 일이 아닌, 인질극이 된다.


삶은 놀이처럼 다루려한다.


나는 깨달았다.

열정은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한다.

업무도, 관계도, 삶도 일종의 '게임'같은 것이다.

한때, 업무를 내게 주어진 사명처럼 여겼다.

그러다 몸이 틀어지고, 마음이 망가졌다.

그제야 알았다. 정말 중요한 건

삶을 놀이처럼 캐주얼하게 다루는것이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유쾌하게 물러나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왕년에 다큐처럼 진지하게 살았던 사람이라면,

늙어갈수록 장난기 있게, 약간은 나사 빠지듯

즐겁게 미쳐갈 줄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삶은 움켜쥔다고 붙잡히지도 않으니.

힘을 뺄수록,

더 오래 붙들 수 있다.


진심이 깃든 장난의 힘이 생각보다 크다.

모든 게 너무 중요해지면, 내가 사라진다.

‘진지하면 진다’는 말은 우스꽝스러운 듯 보이지만

실은 가장 강력한 생존 기술이다.

'이건 놀이다. 진지해지면, 진다.'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주문이다.

한 판 지면 또 하면 되지, 뭐!


딱히 재능은 없지만, 꽤 오랫동안

취미로 현대무용을 해왔다.

바닥을 구르고, 몸을 꼬고, 벽에 붙었다가,

갑자기 일어선다. “이게 도대체 무슨 자세야?” 싶었지만

'예술'이라 칭했고, 모두가 웃고 놀고, 자신을 표현했다.

몸이 이해하면, 머리는 따라온다.

삶도 그런 것 같다.


삶이라는 놀이터에서

열정은 근엄하지 않다.

오히려 장난기 어린 눈빛에서 시작된다.

"이거 생각보다 재밌는데?"는 무의식적 흐름.

샤워하다 떠오르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메모하게 만드는 그것.

그것이 진짜 열정이다.

그런 명분을, 그 ‘놀이 장치’

미리 삶의 곳곳에 설치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는 것 같다.


삶은 춤처럼-

어떤 날은 체력이 바닥나 게임도 그만두고 싶다. 그러나

삶을 놀이처럼 다루는 마음의 감각을 잃고 싶지 않다.

예민하되, 장난스럽게.

삶의 정수는 ‘어떻게 유쾌하게 감당할 것인가’에 있다.

그리고 그 감당엔 최소한의 품격이 있어야 한다.

신기하게도,

이런 마인드로 살 때 오히려 좋은결과가 따라왔다.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가 생기고,

별생각 없이 한 말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


삶은 쥐면 미끄러지고,

툭 놓으면 따라온다.


삶은 숨바꼭질이다.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를

기쁨과 다행,

그 뜻밖의 환희를 찾아가는 일이다.


살면서 진심으로 신났던 순간들에는

늘 ‘놀이’의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그냥 내가 좋아서ㅡ재밌어서 정신없이 파고들었던 순간.

그때 나는 살아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무엇을 하든 '놀이 장치'부터 설치할 것이다.

지고도 웃을 수 있다면, 그건 잘 산 것이다.

이긴다면,

더없이 즐거운 일이다.

그러니, 이 말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진지해지지 말자.

진지해지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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