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복은 없지만 남편복은 크대요'
나는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복도 내가 일구는 것이라 굳게 믿으며 살아왔다. 사주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어떤 말이 마음 한켠에 계속 남았다.
'남자복은 없고, 남편복은 크대.'
전에 친구 녀석이 뜬금없이 내 생년월일과 출생시간을 묻기에, 나는 "왜?"라고 묻지도 않고 엄마에게까지 확인해서 정확히 알려줬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사주라는 이름의 도발이었다. 무심히 듣고 있는데 친구가 툭 던진 한마디.
"너는 남자복은 없대. 근데 남편복은 어마어마하대."
웃겼다. 사주를 믿지 않는다고 선언했던 나였지만, 그 말에 한동안 걸려버렸다.
살짝 기분 나쁘면서도, 감동적인 이 말이 계속 되뇌어졌고, 그 이후로 나는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그런 말이 어딨어? 남자복이 없는데 어떻게 남편복이 있어?"
당시에는 그 말이 정말 재수 없고 기분이 안좋아서 그냥 연애를 안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점점 남편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미 '남편'을 사람이 아니라는 전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혹시 내가 남자는 만나지 않아도, '남편'이라는 개념화된 어떤 것과 결혼한 것처럼 살 운명인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진지하게 떠오른 것들은 자동이체, 실물자산, 연금. IRP, 투자, 복리효과같은 것들이었다. 설마? 나는 남자복이 없으니 연애를 하지 않고, ‘남편 역할’을 하는 어떤 시스템과 함께 살며, 배우자적인 안정감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남자는 복이 없지만, 정기 이체와 안정성이 내게 남편과 같은 복이라는 거시적 해석.
그렇게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이었다. 로맨스보다는 이자율에, 밀당보다는 만기일에 심장이 더 뛰는 .. 그말 이후로 뭔지 모르게 남자는 만나지 않고, 연애도 하지 않으며, '남편이라는 역할을 수행 중인 의인화된 무언가'에 기대어 사는 삶을 향하고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금융상품에 감정이입을 하며, 통장을 들여다보며 "오늘 얼마나 불었지?" 하고 흡족하게 묻고, 적금 만기일을 달력에 하트로 표시하며 기뻐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너무나 감동적이라 갑자기 울컥했지만, 곧바로 현타가 밀려왔다.
…진짜 남자 안 만나고, 남편복 있다는 말 듣고 연금이랑 결혼할 기세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니.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남자복없다라는 말이 살짝 무섭다. 그리고 돌아보니, 나는 안정성을 사랑하고, 꾸준함과 복리효과에 심장이 뛰는 사람이었다. 사주가 나를 저격한 게 아니라, 내가 너무나 기꺼이 그 말에 꽂힌 거였다. 사람보다 시스템을 더 믿어왔다. 감정의 기복보다는 매월 일정한 금액이들어오는 통장 알림의 꾸준함에 더 끌리고, 누군가의 말보다는 숫자로 증명되는 것들을 더 좋아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드라마틱한 사랑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행복이었나보다.
깨달음-내 인생을 운영하라
만약 지금 당장, 신랑 대신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이 "여보" 하고 날 부른다면… 진심으로 눈물 날 자신 있다. 그리고 난 "사랑해"라고 대답할 자신도 있다. 이건 가장 진실한 고백이 아닐까.
문득, 나도 '아내'라는 옷을 입거나 '엄마'로 살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게 나에게 어울리는 삶일까. 잘 모르겠다. 난 좋은 아내, 좋은엄마가 될 자신은 없다.
요즘 들어 서서히 느끼고 있다. 사주를 잘 모르지만, 그때의 사주가 말한 '남편복'은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건 사랑도 아니고, 인연도 아니고, 설렘도 아니었다. 남자복은 없지만, 남편복은 있다던 그 사주.
지금 보니, 나한테 '네 인생 직접 운영하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고맙다.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게 잘 살아간다고 하던데 거대한 힌트였나보다. 언젠가 실물자산이 남편으로 내게 와 준다면, 나는 말할 준비가 되어있다. "드디어 왔구나! 지금까지 기다려줘서 고마워. 이젠 너 하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