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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T처럼 말하지 않겠다

by La Verna

오랜만에 사랑하는 세사람.

조카와 올케, 언니..그리고 나— 넷이서 드라이브를 갔다.

외곽으로 한 바퀴 돌고, 저녁도 먹고 차도 마시고..

우리도 네명이 웃음에 실려 참 좋은 시간을 향유하고있었다.

조카의 얼굴을 보니 현생의 피로가 날라가버리는듯했다.

그런데.

올케가, 그 평온의 중간에

아무렇지 않게, 조곤조곤,

한 마디를 탁 꺼냈다.

요즘 언니, 저 GPT랑 대화하는 거 진짜 좋아요~

상담받는 것 같고, 마음이 너무 편해지고요.

진짜 언니들이랑 말투가 똑같아요.

딱 언니들 GPT말투 닮았어요.

……

…………

응?

나는 순간, 마시던 차가 식도에서 정지되는 느낌을 받았다.

언니와 나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봤다.

눈빛은 멈췄다.

"……헐."

표정도 없이, 말도 없이,

정말 무표정하게 “헐”.

그게 우리 감정의 최대치였던 것 같기도 하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어떤 식으로 말하는데?"


우리가 묻자,

올케가 신이나서 시연을 시작했다.

“어렵다고 느끼는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접근해볼지 함께 이야기해볼까?”

“그건 전혀 이상한 감정이 아니야. 정말 자연스러운 반응이야~.”

“우리가 함께 해결방안을 고민해볼까?"

……

그건,

우리가 평소 하루에 3회이상은 사용하는 문장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GPT랑 말투가 똑같다고한다.

그날 밤, 언니와 나는 약간 심각했다.

그 말이 진심으로 충격이긴했다.


언니랑 나는 집에 돌아온 뒤,

자정이 넘도록 서로의 말투를 분석했다.

->“우리가 그렇게 말했었어?”

“그런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근데… 진짜 우리가 그런 말 하긴 해.”

“그건 근데 진짜 감정이니, 부정당해선 안되잖아.”

“힘든 상황엔 함께 고민해보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야.”

……정말 그랬다.

우리는 서로 대화하면서도 감정을 나누는 게 아니라,

감정을 정리해주는 말들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누군가 힘들다고 말하면,

“어우, 그건 진짜 열받겠다”

“헐, 그건 좀 심하지”

이런 인간다운 말 대신

감정을 평면에 눕히고, 포장하고, 이해라는 스티커를 붙이는 일을 해왔다.

언제부턴가.

너무 오래 감정을 배제하는 말투로 살았나보다.

으ㅡ

혹여나 누가 감정적으로 무너질 때,

그걸 같이 무너지며 맞받아주는 대신,

우리는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네 감정은 소중해."

“너는 잘못한 게 없어.”와같은 말을 아주 정중하게,

숨도 쉬지 않고 하면서

도리어 공감을 못하고 있진 않았을까 싶다.

그걸 다정함이라고 믿었는데,

어쩌면 언니와 내가

가장 먼저 인간미와 체온을 손절했던 지점이었는지도.

그래서 잠시 연습했다.

이제 그만 GPT처럼 말하기위해.

앞으로는 이렇게 말하기로했다.

“그럴 수 있지” → X

“듣기만 해도 빡친다” → ○

“충분히 공감돼” → X

“와 나였으면 벌써 울었어” → ○

“함께 고민해보자” → X

“일단 커피마시고 욕부터 하자” → ○

좋은 의미였겠지만,

사람이다보니 GPT처럼 말한다는게 심각하게느껴졌다.

이젠 보다 감정적이고 서툰 문장들로

실시간 뜨거운 반응을 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겠다.

그게 비논리적이거나, 조금은 과해도,

기계같다는 느낌은 없이

진짜 사람냄새나는 말이니.

“언니랑 GPT 말투 똑같아요~^^”

라고 말하지 않게 하려면,

이제 나도 좀 욕도 해야 하려나 싶기도하고.

울컥도 해야 하고, 좀 미안한 말도 해야 한다.

말이 꼬여야 한다.

그게 감정이라는 걸,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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