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00년 걸릴 일

by La Verna

어떤 조직 안에서 구조나 시스템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지금 이 순간, 그 변화가 가능할 것 같지 않다면—

나는 그것이 300년정도 걸릴 일이라고 가정한다.

그리고 이미 300년이 걸릴 일이라는 사실을 감안한 채 임한다.

조급함은 덜고, 단호함은 더하고,

무엇보다 200년은 묵묵히 기다릴 각오를 먼저 다진다.

더 나은 대안이 보이는 것 같고, 그것이 거의 정답처럼 확신감이 느껴지더라도,

섣불리 들이밀지 않는 편이다.

지금의 구조는, 그만큼의 오랜 시간과 맥락 속에서 축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걸 단숨에 뒤엎으려는 시도는—

오히려 시간의 문법과 무게를 이해하지 못한 자의 성급함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일을 하든, 늘 그렇게 임한다.

‘이건 300년이 걸릴 일이다’—라는 전제를 두고.

눈에 띄는 진전이 없어도,

속도가 더뎌도 괜찮다고 믿는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물결이 바위를 깎듯—

변화는 그렇게 온다.

비가 아니라, 시간이라는 액체가 삶위에 내리는 중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반쯤 체념한 나와,
무념과 무상의 끝자락을 지나며,
열정과 성실, 그리고 근성의 체온으로

아직은 다 꺼지지 않은 불씨처럼
살아 있는 내가 있다.


그렇게 시간을 견디고 나면,

어느 날 우연히 깨닫게 된다.

그때 그토록 확신했던 ‘정답’이

최선이거나 완전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구나—라는 사실을.

그 아찔한 자각이 찾아올 때,

이상하게도 가슴이 놓인다.


시간은 언제나 정직하고,

무엇보다 나보다 총명하다.

모든 팩트를, 누구보다 잘 정리해 놓는다.


그리고 아주 오랜 침묵 끝에—

어디선가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

그 틈 사이로 새로운 바람이 들어올 때,

기어코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단단한 구조나 시스템에

새로운 숨결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때 느껴지는 희열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오래 인내한 시간만큼이나, 변화는 더 깊고, 더 확실하다.

절반은 체념이었지만,

그 끝에 도달하게 된 희망은

빛이 아니라, 생존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생존이 이끌어온 변화는

내가 살아오며 경험하는 가장 고맙고도

근사한 승리일지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리뷰나 후기를 자주 쓰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