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연대성이라는 거대한 필연 앞에 서서

가장 낮은 곳의 영혼이 가장 높은 곳의 비명을 들을때

by La Verna

ㆍ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할 것.

ㆍ생의 호흡을 가늘고 길게 이어갈 것.

ㆍ깊이는 지식이 아니라 흉터에서 온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을 것. ㅡ나는 이 세 가지를 영혼의 지침으로 삼고 살아왔다.

최근 조직의 정점에 선 한 사람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지형도를 새삼 다시 그리게 되었다. 그는 타인을 향해 서슬 퍼런 칼날을 세우고는 했다. 일상의 작은 균열을 찾아 법적 분쟁으로 비화하여, 퇴사한 직원들을 업무방해나 명예훼손으로 연이어 고소하곤 했다. 그 서늘한 기운 아래서 나 또한 잠시 불안을 겪었다.

하지만 폐허가 된 자리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내밀한 호흡에 귀를 기울였을 때, 나는 그 날카로운 공격성 이면에 숨겨진 슬픈 방패를 보았다.

어느날 그가 퇴근하던 중 내게 인사를 건네며 나눈 대화.

조직원이 줄줄이 떠나고 부서가 폐허가 된 뒤에도 그가 또다시 꺼내 든 고소장. 그것은 타인을 해하려는 능동적 악의라기보다, 과거 자신이 입었던 치명적인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처절한 방어였다.

정서적 염증이 온몸을 잠식한 이에게 타인을 향한 너그러움을 기대하는 것은, 얼어붙은 대지에서 꽃이 피길 강요하는 것만큼이나 가혹한 일이다.

그의 대처가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나 극단으로 치달았던 이유는, 그가 직면했던 삶의 비정함이 그만큼 파괴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갑작스러운 병으로 투병의 터널을 지나왔옛 시간을 떠올렸다. 생사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다 가장 사랑했던 수도원을 떠나야 했던 그 기억은, 이제 내게 삶에 대한 절대적 겸손을 체득하게 한 7년간의 영혼의 학교로 남아 있다.

사람의 깊이는 인자한 미소를 짓는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심해에 잠긴 이가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지 못하듯, 그 깊이는 수면 위에서 관찰하는 타자의 시선 끝에서 비로소 해석된다.

사람의 마음은 그릇과 같아서, 안이 좋은 것으로 가득 차야 비로소 밖으로 흐른다. 법적 분쟁의 한복판에서 생존만을 위해 에너지를 소진해야 했던 이에게 관용을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 특별히 할 말이 없었지만, 생의 연대성에 관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던지는 모든 의도는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인간사의 자명한 인과율이다. 이 연대성의 특징은 악의를 던지면 파괴가 돌아오고, 선의를 던지면 돌고 돌아 더 넓은 지평의 보상으로 돌아오게된다는 것이다. 그는 무슨 일인지 내 말에 귀를 기울였고, 비로소 고소의 행보를 멈추었다.

나는 특별한 획을 긋는 직무를 갖고있지 않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인간의 영혼을 경청하는 일에는 직급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 읽는 일에 높고 낮음이 있을까. 누구든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일 수 있고, 그 귀기울이는 시간만큼은 가장 낮은 곳과 가장 높은 곳의 경계가 사라진다. 진정한 깊이란, 타인 곤란 앞에서 얼마나 낮아질 수 있는가에 달린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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