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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쓰 Sep 25. 2019

포르투갈 여행 (4): 와인과의 특별한 기억들

시앙스포 교환학생 일기 #11

부제: 포르투 와인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

(포트 와인이라고도 한다!)


“와인 좋아하나요?”

“당연하죠, 프랑스 사람인 걸요.”


정확히 누군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와인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프랑스 사람인 걸요’라는 대답을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이 대화를 들으며 느낀 프랑스인의 이유 모를 당당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프랑스에 갔는데 와인 좀 마셔봐야지’라고 말한 친구 때문이었을까. 소주나 맥주, 양주 등이 더 친숙했던 나지만 파리에 있는 동안은 다양한 와인을 맛보고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다짐이었을 뿐, 사실 와인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맛을 구분할 줄도 몰랐고 와인을 마시자는 친구의 제안에는 ‘와인 마시면 다음 날 이상하게 머리가 아프더라’ 하고 퇴짜를 놓곤 했다. 그런 나에게 포르투 와인과 포르투 와인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는 포르투 사람들은 새로웠던 동시에 전환점이 된 것 같다.


파리에서 마셨던 château de rasignani (달았던 모스카토!)

포르투 여행을 가기 전부터 무척 기대했지만 막상 포르투에서는 뭐가 유명한지, 어딜 가야 하는지, 음식은 뭐가 특이한지 등등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비행기에 올랐다. 포르투에 도착한 당일까지도 함께 간 친구나 나는 소위 말하는 ‘즉흥여행’을 좋아했기 때문에 별다른 검색이나 스케줄을 안 짜고 여행을 시작한 터였다. 여행에서 만나는 현지인들이 추천해주는 곳이나 주는 팁들을 직접 듣고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도 있다. 첫날 포르투에서 오래 머무르신 분께 간단하게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들은 내용은 다음의 2가지였다:


1. 포르투에는 강가를 따라 와이너리가 많다. 각 와이너리에서는 투어를 진행하고 테이스팅 기회도 있다.

2. 영국과 프랑스가 사이가 안 좋은 시기에 영국이 와인을 마시고 싶었으나 프랑스로부터 수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어, 포르투로부터 수입을 하게 되었다. 기후 조건이 좋은 포르투에 영국인도 많이 들어와 와인 사업을 시작하고 포르투 사람들도 와인 사업에 많이 종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영국까지 운반을 하는 과정에서 종종 와인이 상했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도수 높은 브랜디를 섞어 포르투 와인은 다른 와인들과는 달리 평균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19.5도~20도 정도이다.


이 두 내용을 들으며 저녁식사에서 친구와 나는 그분께서 사주신 포르투 와인을 한 글라스씩 마셨다. 확실히 강한 알코올 향이 나면서도 달달해서 보통 레드 와인에서 느끼던 텁텁함이 전혀 안 느껴졌다. 높은 도수에도 불구하고 달아서 금세 한 잔을 비웠고, 저녁식사도 끝나가, 웨이터가 와서 빈 그릇을 다 치워주었다. 나갈 준비를 하려는 찰나, 웨이터는 작은 잔에 담긴 테이스팅을 위한 포르투 와인 세 잔을 가져다주었다. 알코올 향이 더 강하게 났지만 이 또한 달달하고 맑았다. 텁텁함이 전혀 안 느껴졌다. 맛있는 와인 두 잔을 마시며 와인에 대한 쉬운 역사 설명을 들어서일까, 와인에 차츰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술을 나보다도 좋아하는 친구 역시 포르투 와인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Lagosta Vinho Verde 특이한 맛의 그린 와인
마지막날 에어비앤비에서 알리오올리오를 만들어 먹으며 함께 마신 Aveleda 그린 와인

그다음 우리가 매력을 느낀 포르투의 특이한 와인은 바로 그린 와인. 이 또한 현지에서 오래 사신 분께 추천을 받은 와인이었는데, 포르투갈어로는 vinho verde였다. 맑은 초록빛이 나는 9도 정도의 와인이었다. 다양한 그린 와인이 마트에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팔고 있었고, 술기운이 남아 있던 우리는 가장 예뻐 보이는 병에 담근 그린 와인 두 병을 안아 들었다. 힐 가든에서 아름다운 야경을 배경으로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와인 오프너 없이 열 수 있는 병부터 열어 맛을 보았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맛이었지만 적당히 달달하면서, 약간의 잔디 향도 나는 듯한 와인을 친구와 한 모금씩 나누어 마셨다. 시원해서도 맛있었고, 마신 곳이 너무 아름다워서도 맛있었고, 함께 마신 사람이 좋아서도 맛있었다. 사실 와인이 그냥 특이하고 맛있었다. 포르투갈에 와서 시도한 와인은 모두 성공적이었다.


현재 판매하는 calem와인 중 가장 비싼 (오래된) 1986년산

1일 2 와인을 하고 있던 우리에게 와이너리 투어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수 있다. 포르투갈에 착륙하는 순간까지도 와이너리 투어에 갈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포르투에서의 둘째 날 밤 자기 전에 이런저런 검색을 통해 여러 와이너리에 대해 알게 되었다. 테일러 와이너리가 한국어 가이드가 있어서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된다는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와인에 대해 배워보고 싶었고 와인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과 함께 테이스팅도 해보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과 비슷했는지 친구는 ‘테일러는 뭔가 안 끌린다’고 말해줬고 결국 우리는 칼렘(Calem) 와이너리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음날 칼렘 와이너리에 도착했다. 동루이스 다리를 건너면 바로 위치해 있었고 와이너리들은 크게 대문자로 건물 위에 글자 간판이 있었기에 찾기 쉬웠다. 박물관 관람 + 영어 가이드 30분 + 2가지 맛 테이스팅은 13유로, 3가지 맛은 16유로였다. 지금 와서는 3가지 맛으로 할걸, 후회하지만 그 이후 곧바로 만날 사람이 있었던 우리는 두 잔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투어. 박물관 관람을 통해서는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인 와인을 만드는 정확한 프로세스와 포르투에서 와인 산업이 발달하게 된 이유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었다. 후자는 사실 어제 들은 내용 이상으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30분 간 영어로 설명해주는 가이드와 함께 한 와이너리 투어는 설레고 즐거웠다. 포르투 와인의 종류와 그들 간의 차이점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보관 방식, 다른 와인들과 포르투 와인이 다른 점 등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기회였다. 모두 함께 직접 와이너리 안으로 걸어 들어가서 어둡고 시원한 곳에서 보관되는 와인 창고를 보고 와인 향을 맡으며 돌아다니니 향만 맡아도 취하는 듯했다.


색에 따라서 포르투 와인은 4가지로 나뉜다. White, Rose, Ruby, 그리고 Tawny. 화이트는 들어가는 설탕의 양에 따라서 ligrima, fine white, dry white로 또 나뉜다. Ligrima는 포르투갈어로 눈물을 뜻하는데, 와인잔을 흔들었을 때 생기는 자국이 눈물이 흐르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화이트 와인 중에서는 가장 단 맛이 강하다. 그 중간이 fine white, 그나마 가장 dry 한 맛이 나는 화이트 와인이 dry white. Rose는 예쁜 핑크빛 와인이다. 이 핑크빛이 나는 방법이 특이한데, 한 번에 색을 내는 게 아니라 한 번 적포도를 말리는 과정에서 껍질만 걷어내고 다시 말리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정확한 프로세스는 기억이 안 난다...) Ruby는 흔히 아는 적포도주. 큰 오크통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작은 오크통에서 숙성되는 Tawny보다는 색도 조금 옅고 오크향이나 각종 complex 한 맛이 덜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오크통과 맞닿는 면적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약 2-3년 정도 숙성된 채로 만들어지는 달짝지근한 적포도주가 Ruby. 그리고 Tawny의 경우는 special reserve라고 10년, 20년, 30년, 40년 등 숙성된 기간을 붙여 와인 이름을 짓기도 한다. 포도가 특히 맛있게 농사된 해에 가장 맛있는 포도로 만들어서 오랜 기간 숙성시킨 와인을 vintage porto라고 부른다. Late Bottled Vintage는 큰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뒤에 병으로 옮겨져서 숙성되는 정말 ‘늦게 병으로 옮겨지는’ 빈티지 와인이다. Vintage 라인은 확실히 희소성이 있다.


special reserve 10년산 (왼) fine white (오)

와이너리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물론 테이스팅이었다! 우리가 맛보게 된 와인은 special reserve와 fine white. Special reserve는 10년 이상 보관되어있던 와인이라 풍미가 훨씬 짙기 때문에 fine white를 마신 뒤에 마셔야 한다고 했다. 맛이 더 complex 하다는 표현을 썼는데, 정확히 그 의미가 와 닿지 않아 질문을 했다. 단순히 포도향과 풍미가 더 강하다는 의미인지, 더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인지 질문을 했고 친절한 가이드는 후자라고 답해줬다. 와인을 보관하는 oak 통과 접촉하는 면이 더 많고 더 오랜 시간 접촉하기 때문에 다크 초콜릿, spice, 견과류 등의 향이 더 다양하게 느껴진다는 뜻이었다. 정말 신기한 건 실제로 맛을 음미하면 다양한 향이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Fine white는 적당히 단 맛이 나는 맑은 과실주 느낌, Special reserve는 그보단 진하고 다크 초콜릿 향도, 나무향도 은근히 느껴지는 적포도주 느낌!


첫 날 갔던 식당에서 먹은 1리터짜리 샹그리아 (가격은 12유로쯤?)
포르투갈 전통 체리주, 진자 (Ginja)

위에까지는 포르투 와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리스본에서 마신 술에 대한 이야기는 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에서의 첫 날을 리스본에서 보냈기에 포르투갈에 대한 첫인상은 리스본에서 생겼다고 할 수 있다. 리스본에서 첫날 마신 술 두 종류도 너무 맛있었기 때문에 이 두 술에 대한 얘기도 간단히 쓰고 글을 마무리 짓고 싶다. 첫날 마신 술은 1) 샹그리아 1L 2) 포르투갈 전통주 진자 (체리브랜디) 테이스팅. 1리터짜리 샹그리아는 음료수 마시듯 다 마셔버렸다. 지금까지 마신 샹그리아는 샹그리아가 아니었다. 큼직하게 들어 있는 과일 조각들은 엄청난 과일향을 품고 있었다. 그렇게 이미 기분 좋게 취한 상태로 친구와 정말 아무 말... 속마음까지 다 털어놓고 있었는데 웨이터 할아버지께서 포르투갈 전통주를 한 잔씩 테이스팅용으로 가져다주셨다. 이 술은... 정말... 최고였다. 포르투갈 술에 대한 애정도가 급상승한 술이었다. 무슨 술인지를 몰라서 나오기 직전에 웨이터 할아버지가 들고 있던 병을 빠르게 사진 찍고 나올 정도로 또 마시고 싶은 맛이었다. 높은 도수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독한 술이었는데 강한 체리향이 그렇게 강할 수가 없었다. 보통 15-20도라고 하는 걸 보면 포르투 와인보다 약한가 싶기도 하다. 리스본에 다녀온 선배가 추천해줬던 체리브랜디 테이스팅이 알고 보니 이 술이었고, 놓치지 않고 마실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포르투갈에 살면 애주가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맥주나 소주를 무작정 마시는 게 아니라 한 끼 식사에 적당히 기분 좋을 정도로 한두 잔 정도를 곁들인다면 한 층 더 풍요로운 식사가 될 것 같다. 잊지 못할 와인과 샹그리아, 체리 전통주의 기억을 안고 포르투갈 여행 일기 와인 특별 편을 마친다! 꼭 모두가 포르투에 가서 포르투 와인을 마셨으면 좋겠다. 나중에 와인셀러에 오래도록 좋은 와인을 보관하고 기쁜 날 좋은 사람들과 나누어 마셔야겠다는 작은 꿈도 생겼다. 조금은 유럽 사람들의 와인 문화에 가까워진 기분.

오래도록 찬장에 10년 이상 보관하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마실 종류별 미니와인
위에꺼 보단 먼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실 와인, 좋아하는 사람 한 명에게 이미 선물해 한 개가 비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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