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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쓰 Aug 17. 2019

파리에 갑니다.

시앙스포 교환학생 일기 #1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 언제였을까. 파리로 교환을 가는 게 확정이 된 이후에도 정말 가야 할지 이것저것 재고 있던 내 모습을 본 순간이었던 것 같다. 참 오랫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다. 멋모르던 초등학생 때부터 각종 경시대회, 영재교육원, 학교 시험 준비로 바쁘게 살았고 그 이후 국제중학교, 특목고를 거쳐 대학교에 입학하기까지 정말 많은 것을 했다. 어릴 때야 부모님이 공부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해주셨기에 했겠지만 중학교 때부터는 잔소리를 들은 기억도 별로 없다.


그런데 나는 왜 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다람쥐가 쳇바퀴를 굴리듯이 달려왔을까? 이것만이 스스로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야 할까? 어떤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등 다양한 의문이 들었다. 물론 이런 의문이 대학교에 와서야 든 것은 아니었다. 그 이전부터 꾸준히 들었던 생각이지만 늘 이런 생각에 대한 답은 나중으로 미뤘다. 하지만 그 '나중'은 쉽게 오지 않았고 급기야는 더 큰 무언가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성취라는 계단을 밟아가는 게 아니라 성취라는 계단을 밟는 것 자체가 목표이자 행복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 물론 이 또한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생각하며 누구도 '성취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에게 뭐라 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좀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싶었다. 그게 세상을 위해 이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비전이든 특정 분야의 한 획을 긋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비전이든 스스로의 목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비전이 아니더라도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하기 때문에 어떻게 살고 싶다' 정도의 인생의 테마는 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고민들에 대한 대답을 할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이런 질문들은 고민한다고 바로 답이 나오지 않을뿐더러 고민하면 할수록 걱정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걱정 속에서 헤매고 싶지 않았던 나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게 항상 바쁘게 사는 쪽을 택했던 것 같다. 한 번도 스스로와 마주하거나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 없이 닥치는 대로 남들이 다 하는 것, 하면 멋있어 보이는 것, 하면 뭐라도 도움이 되겠지 싶은 것을 하면서 22살의 내가 되기까지 살아왔다. 뒤쳐지면 안 된다는 쫄보 같은 마음에 휴학은 고려조차 못하는 나에게는 교환학생이 최선의 쉬어가는 방법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시앙스포 측에서 교환학생 확정을 위해 일정 기한 내로 답신을 해달라는 메일이 오자 갈등하기 시작했다. 학점을 더 늦게 채우는 것에 대한 걱정, 학회 활동을 더 늦게 이수하게 되는 것에 대한 걱정 등이 거의 한 달간 나를 괴롭혔다. 수많은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십중팔구는 꼭 교환학생을 다녀오라고 했지만 나는 교환학생을 안 가고 복수전공도 하면서 빠르게 졸업 준비를 해야겠다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었다. 그 마음의 결정을 뒤집은 것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나를 알게 된 지 1달도 채 되지 않은 헬스 트레이너 선생님이었다. 헬스 트레이너 선생님이 '대학교 때 더 돌아다닐 걸, 그러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는 말씀을 하신 순간 왜인지 모르게 꼭 파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앙스포 측에 답신을 하려고 메일함에 들어왔으나 학교 측에서 정한 기한을 이미 이틀 넘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크게 와 닿았던 것 같다. 내가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구나 싶었다.


기한을 넘겼음에도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하여 시앙스포 측에 문의 메일을 보냈다. 하루, 이틀, 사흘 답장이 오지 않았다. 파리 행정 시스템이 느리다는 말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1주일 넘게 답장을 안 해줄 줄은 몰랐다. 8일째 되어서는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있었는데 답변 메일이 왔다. 아무렇지 않게 다시 학생 계정을 열었으니 교환학생 확정을 하면 된다는 답변이었다. 안도하며 남들보다 한 달가량 늦게 파리로 교환 갈 준비를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고민 후에 내린 결정인만큼, 교환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오고 싶어 졌다. 바쁠까 봐, 뒤쳐질까 봐,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등 많은 이유로 한국에서는 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 해보고 싶다. 미루던 글도 쓰고 좋아하는 풍경 사진도 실컷 찍고 여행도 질리도록 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이전에는 답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질문들에 나름의 답을 내려보고 싶다. 기대하는 만큼 즐거운 시간이 아닐 수도 있고 내가 원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얻지 못하고 올 수도 있다. 예산이 허락하지 않아서, 혹은 내 실천력이 생각보다 강하지 못해서 많은 여행을 하고 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공부를 하면서 많이 듣고, 보고, 느끼고 싶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글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남겨보고 싶다.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기대되는 밤이다.


2015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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