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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ul 12. 2019

10. 쿠바 유기농 농장에 가다

오늘은 바라데로에서 비아줄 버스로 여덟 시간을 걸려 비냘레스에 도착했다. 비냘레스는 쿠바의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쿠바 시가의 주요 생산지이다. 드넓은 시가 밭이 펼쳐져 있으며, 그 외에도 사탕수수 및 커피 플랜테이션 등의 여러 경작지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비냘레스 계곡은 UNESCO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고, 마을 여기저기에는 콜로니얼 형식의 다양한 파스텔 색깔의 방갈로들이 위치해 있다.


비냘레스 마을 ⓒ 주형원


지상 천국을 연상시키는 평화로운 풍경으로, 밤낮으로 들썩거리는 아바나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다. 오 년 전에 왔을 때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서 욕심 많은 시내 민박집주인 때문에 적잖이 마음고생을 했기에, 이번에는 오기 전에 민박집을 미리 알아보았다. 되도록이면 자연에 있는 쿠바 농가의 민박집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찾다가 이미 갔었던 사람이 추천하는 곳이 있어 에어비엔비로 미리 예약을 하였다.


타바코 밭을 끼고 있는 농장에 딸린 작은 통나무집으로 민박집주인들도 농부였다. 비냘레스에 도착해서 비아줄 버스에서 내리니 아니나 다를까 삐끼들이 득달 같이 몰려왔고, 아무리 예약한 민박집이 있다고 해도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고 쫓아왔다. 가장 평온할 줄 알았던 곳이 순간 지옥으로 변했고, 장시간 버스를 타서 피곤한 몸과 정신에 짜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 오랜 시간을 걸려 비냘레스로 다시 오는 게 과연 잘하는 일이었나라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하지만 택시를 타고 끝없는 경작지가 펼쳐지는 시골길로 들어서자 이 곳에 잘 왔다고 생각했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내가 준 주소의 농장 앞에 멈췄다. 종을 누르고 손님이 왔다고 말하니 주인아주머니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한참 기사와 대화가 오갔다.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다. 잠시 후 아주머니가 나와서 상황을 설명했다.


“내가 여기 말고 다른 집이 있는데 먼저 온 손님들이 있어서 헷갈렸지 뭐니. 그 사람들에게 이 숙소를 줘서,  방금 동생에게 전화를 했어. 동생도 나랑 똑같이 농장 안에 통나무집이 있으니까 거기에 머물면 어때?”


나와 엄마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고, 얼마 후 너무도 따뜻하고 선한 인상의 동생이 우리를 찾으러 왔다. 아저씨만 봐도 비냘레스에서의 여행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주머니가 동생에게 우리가 처한 상황을 다시 한번 설명하자 동생은 우리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잘 된 거야. 내가 누이보다 나으니까. “


조카가 차를 가지고 짐을 옮겨 준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 끄는 수레가 와서 우리의 짐을 가지고 갔다. 누이보다 더 시골에 사는 아저씨를 따라 비냘레스 시골 깊숙이 걸어 들어가며 이런저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아저씨와 아저씨 가족들은 근처에 함께 모여 살며 온갖 종류의 작물을 경작했다. 커피, 타바코, 유카, 바나나, 파인애플, 심지어 쌀까지. 이렇게 가족이 재배한 농작물들로 거의 자급자족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안드레스 아저씨 ⓒ 주형원


“다 100퍼센트 유기농이야. 나는 직접 키운 농작물로 요리를 해 먹어. 식당에는 절대 가지 않아. 슈퍼 같은 데서 사는 것도 없고. 내가 키우지 않은 것이 필요하면 옆에 농장에 가서 구해. 나는 이렇게 사는 게 좋아.”


하루 종일 밥을 먹지 않아 잔뜩 허기진 우리가 저녁을 아저씨 집에서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자 아저씨는 말했다.


“지금 시작하면 준비 시간이 두 시간밖에 안 되니 패스트푸드네.”


준비 시간이 두 시간이라 패스트푸드 라니. 진짜 패스트푸드로 거의 모든 식사를 때우는 우리는 그럼 뭐란 말인가. 아저씨는 분명 도시의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음식과 시간에 대한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  


비냘레스 농장 가는 길 ⓒ 주형원




우리는 타바코 경작지 한 중앙에 있는 작고 예쁜 통나무집에 도착했다. 집 앞에서는 닭들이 자유롭게 집 안과 밖을 들락날락하고 있었고, 밭에서는 말들이 거닐고 있었다. 우리가 농장 집에 도착하자마자 안드레스 아저씨의 부인인 훌리아 아주머니가 나와서 우리를 환대해 주셨다. 훌리아 아주머니는 보기만 해도 에너지가 넘치는 여장부 스타일이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우리가 묵을 작은 통나무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침대가 두 개 있고 화장실이 있는 집은 단순했지만 깨끗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했다. 엄마는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말했다.


"여기야 여기. 바로 여기"


우리가 머물렀던 통나무집 ⓒ 주형원


가장 진정한 쿠바를 볼 수 있는 곳. 여행 오기 전의 여러 사건들로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제대로 힐링할 수 있는 곳. 쿠바 전역 여행을 끝내고 마지막 여행지로 택한 이곳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꿈꾸던 곳이라는 것에 엄마와 나 모두 동의했다. 해외에서 이런 배낭여행은 해볼 기회가 없던 엄마도, 여행 막바지가 되자 슬슬 전문 배낭여행가의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어느새 친해진 훌리아 아주머니에게 기초 스페인어까지 배우고 있었다.


"그라시아스(고마워요)"

"포르 나다(천만에요)"


엄마와 훌리아 아주머니는 익살스러운 제스처와 더불어 이 두 문장을 반복하며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웃음을 빵빵 터트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하루 종일 굶은 우리가 배고플까 봐 도착하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파인애플 샐러드를 만들어서 가져오셨다. 파인애플 샐러드를 한 입 먹자마자 엄마와 내 입에서는 감탄이 튀어나왔다.


“아 너무 신선해요.”


아저씨는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방금 옆에서 따와서 만든 거야”


훌리아 아주머니는 파인애플을 가져와서 잘린 아랫부분을 보여 주었다.


"여기 밑동이 보이지? 방금 잘라서 가져온 거라 이렇게 신선한 거야”


훌리아 아주머니 ⓒ 주형원


여권 정보를 입력하면서, 훌리아 아주머니는 혹시 스페인 이름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루쎄로요. 한국 이름과 비슷한 뜻이라고 스페인 친구들이 붙여준 이름이에요”

“루쎄로? 금성이라는 뜻이네. 별 중에 가장 큰 별”

“네. 한국 이름의 뜻이 빛의 근원이라는 뜻이거든요”

“너무 예쁘다”

“아주머니는요? 훌리아는 무슨 뜻이 있어요?”

“훌리아? 훌리아는 용감하고 도전적인 여성이라는 뜻이야.”

“딱 아주머닌데요. 그럼 아저씨는요? 안드레스는 무슨 뜻이에요?”

“음... 안드레스.. 안드레스는 부지런히 일하는 남자지”


듣다 보니 왠지 원래 이름의 뜻이 아니라 아주머니의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이자 가족 운영 방침에 더 가까운 거 같아 장난으로 말했다.


“훌리아. 조금 이상해요. 영화에서 나오는 안드레스들은 다들 일 안 하고 편하게 살던데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건 영화니까 그러지.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야”


엄마 이름을 정확히 어떻게 발음하냐고 물어봐서 선희라고 하자 스페인어로도 비슷한 이름이 있다고 했다.


“소니아”


졸지에 엄마 역시 스페인어로 된 쿠바 이름이 생긴 것이다. 엄마는 이름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의 스페인어 이름을 만족스러운 얼굴로 반복했다. 비냘레스에서만은 엄마도 육십 년 동안 살아온 '선희'에서 잠시 벗어나서 쿠바 여인 '소니아'가 되어보는 것이다. 저녁 여섯 시쯤 되니 안드레스 아저씨가 한 상 가득 차려놓고 불렀다.


안드레스 아저씨의 '패스트푸드' ⓒ 주형원


“오늘은 시간이 없어 두 시간밖에 요리를 못 해서 많이 차리지는 못했어. 내일은 더 맛있을 거야. 난 시간을 오래오래 들여서 요리하는 걸 좋아하거든.”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이 큰 테이블에는 단지 우리 두 명이 먹는다고는 믿기 힘든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두 시간 내내 아저씨와 아주머니 및 다른 가족들이 들락거리며 요리를 했는데 이걸 ‘패스트푸드’라고 하니. 식탁에는 샐러드며, 수프며, 볶음밥에 튀김 및 오리 요리까지 며칠을 먹어도 남을 것 같은 요리들이 있었다.


수프를 한 수저 떠먹자 엄마와 나의 입에서는 동시에 감탄이 나왔다. 모든 재료의 신선한 맛이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도 전체적인 조화가 너무 훌륭했다. 미온이라고는 일도 느껴지지 않고, 재료의 맛을 최대한 그대로 살려 너무도 정성껏 준비한 유기농 식탁이었다. 몸도 마음도 모두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단연코, 우리가 쿠바에서 먹은 최고의 식사였다. 안드레스 아저씨한테 말하자 아저씨는 별거 아니라는 듯 내일은 더 맛있을 거라고 했다.


“아저씨, 이것보다 더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는 거예요.”


“내일 한 번 봐.”



ⓒ 주형원


저녁을 먹은 후, 안드레스 아저씨와 늦게까지 쿠바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오 년 만에 돌아온 쿠바는 많은 것이 변했어요.”


“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변하지 않았어.”


“변하지 않은 게 뭔데요.?”


“혁명의 가치지.”


"혁명의 가치요?"


“쿠바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했어. 스페인과 미국에 맞서 혁명을 일으켜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된 거야.”


“하지만 그 대가로 가난해진 게 아닌가요.?”


그러자 아저씨는 나를 지긋이 쳐다보면서 말했다.


“잘 들어. 쿠바는 물론 가난하지. 가난해. 하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가난한 거야.”


자신의 방식대로 가난하다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쿠바는 미국에 저항한 대가로 경제 봉쇄를 당하면서 가난해진 거야. 미국에 맞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 거지.”


“하지만 쿠바에서는 교육도 의료도 무상이고, 일이 있거나 없거나 모두에게 배급이 있으며, 아이가 세 명 이상 있으면 국가에서 집도 무료로 주지. 만약 경작을 하겠다고 하면 농장도 정부에서 무료로 지원해 줘. 가난해도 부족한 것은 없어. 그래서 여기에는 스트레스가 없어.”


실제로 쿠바에서는 현재 사회에서 가장 흔한 단어이자 만병의 원인인 '스트레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흥분하는 일도 거의 없다. 아무리 줄을 오래 서도, 버스에 사람이 많아도 화를 내지 않는다. 아니 에어컨도 안 나오는 그 만원 버스에서 불평하기는커녕 음악을 틀어대고 노래를 부른다. 아마도 쿠바의 유기농 농산물과 더불어 스트레스가 없는 사회 분위기가 쿠바가 장수 국가 중 하나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맞아요. 쿠바 사람들은 화를 내지도 않고 스트레스도 없어 보여요. 그렇게 줄을 서면서도 화 한 번 안 내고, 짜증도 안 내요.”


“쿠바인들은 화를 내지 않아. 기다리더라도 말이야. 쿠바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 아무도 재촉하지 않거든.”


“저희는 시간이 돈이라고 하는데 신기하네요.”


“쿠바에는 폭력도 없어.”


“아저씨 폭력이 없는 곳이 어딨어요? 모든 곳에는 폭력이 있어요. 직장이든 사회든 학교든."


아저씨는 오히려 그런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하며 웃으며 말했다.


“여기는 없어. 학교에서는 학생을 때리면 선생님이 학교에서 쫓겨나고, 남편이 아내를 때리면 그 남편은 감옥에서 삼 년을 살아. 쿠바에서 여성들은 매우 존중받고 있어. 남성들과 모든 분야에서 똑같은 권리를 지니고 있지.”


“폭력이 없다면 어떻게 혁명은 한 거예요?”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 혁명을 한 거지”


“폭력을 없애기 위해 혁명을 했다고요?”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며 말했다.


“그럼. 스페인과 미국이 쿠바를 점령하면서 쿠바에 이전에 없던 폭력이 들어섰지. 이 폭력을 물아내려고 쿠바인들은 혁명을 일으킨 거야.”


폭력을 물리치기 위한 혁명이라. 이토록 평화로운 민족이 매번 침략자에 맞서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근거가 폭력을 물리치기 위함이라니. 그것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갖기 위해서 말이다. 자신의 방식대로 가난한 나라. 가난해도 부족한 것 없는 나라.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스트레스가 없는 나라.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전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에서는 돈이 없으면 기본적인 의료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지만 갚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는다. 먹거리는 풍부하고 음식물 쓰레기는 넘치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은 비만에 시달린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스트레스도 더불어 범람한다.


무엇이 행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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