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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ul 21. 2019

남편의 예쁘다는 말

어젯밤 침대에 누워 잠에 드려고 하는데 남편이 말한다.


"아까 너무 예뻐 보였어."

"아까? 언제?"

"지하철 탔을 때"

"왜?"

"몰라. 굉장히 예쁘더라고."


남편은 평소에도 '아름답다', '예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집에 있다가도 가만히 나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너는 너무 아름다워", "네가 제일 예뻐"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감탄사로 한다. 집에서 단둘만 있을 때 하면 다행인데, 바깥에서 다른 사람들하고 있다가도 그런 말들을 불쑥불쑥 꺼내서 내 얼굴을 창피함으로 빨갛게 물들 게 한 적이 여러 번이다. 내가 정말 그 정도로 예쁘면 또 모르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남들이 들으면 속으로 욕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어떤 여자가 예쁘다는 말을 싫어할까만은, 가끔은 남편에게 그만하라며 뭐라고 한다. 처음 만나서 거의 십오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나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보는 남편의 시선이 가끔은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그때는 이십 대 초반의 풋풋함이라도 있었는데, 나이만 들어가는 지금 뭐가 아직도 예쁠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식물도 좋은 말을 들으면 더 잘 자란다고 하듯, 나도 예쁘다는 말을 집에서 귀에 박히도록 들어서 그런지 결혼하고 더 예뻐졌다는 말도 종종 듣는다. 하지만 아까 너무 예뻐 보였다는 말에는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아까 지하철이면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는데. 뭐가 그렇게 예뻤다는 거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 내가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보다."

"맞아. 그랬나 봐."


지난 며칠 동안 이런 저린 고민들과 자괴감으로 감정과 기분이 바닥을 치던 끝에 어렵게 빠져나온 후 오래간만에 기분 좋은 하루였다. 게다가 좋아하는 친구도 만나러 가고 있었으니 아마 신난 표정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늘 내가 나다운 얼굴, 행복한 얼굴을 놀랠만큼이나 잘 캐취 했다.


그것 때문에 늘 사진을 고를 때도 남편과 의견이 갈렸다. 나는 내가 조금이라도 얼굴이 가늘어 보이고 몸도 전체적으로 슬림 해 보이는 사진을 좋아했지만, 남편은 내가 가장 자연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으며 행복해 보이고 즐거워 보이는 사진을 고르고는 했다. 내가 "이게 뭐가 예뻐"라며 입이 나오면, 그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게 너잖아"


남편 덕분에 나는 내가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에 어떤 표정을 하는지 알 게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이런 질문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가 더 예뻐? 지금이 더 예뻐?"

"지금이"

"왜?"

"지금이 더 행복해 보이거든."




물론 오래전에 다른 남자 친구를 만나 연애할 때도 예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연애 중인 남자가 여자한테 예쁘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때는 기준이 조금 달랐다. 데이트할 때 가끔 신경 써서 예쁘게 하고 나가면 감탄하듯 말했다. "오늘 예쁘네." 혹은 "오늘 예쁘게 하고 나왔네."


함께 찍은 사진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이 보기에도 예뻐 보일 만한 사진을 골라서 자신의 프로필 사진에 올리곤 했다. 내가 봐도 나 같아 보이지 않은 나의 사진을 보고 그의 주변 사람들이 "여자 친구 예쁘네"라고 추켜 세우면 은근히 기분 좋아하곤 했다. 그에게 사랑은 소유였기에, 내 소유물이 남의 눈에도 좋아 보인다는 사실은 기분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가끔 내가 거울을 보며 남편에게 넌지시 "다른 사람들도 나를 예쁘다고 생각할까?"라고 물어보면, 남편은 늘 한결같이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상관이야. 내가 보기엔 네가 제일 아름다운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예쁜 아내를 원하는 남편이 아닌 아내가 행복할 때 제일 예뻐 보인다는 남편을 만날 수 있어서. 나이가 들고 살이 찌고 뱃살이 터질 듯이 나와도, 변함없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말하는 남편과 살고 있어서.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말해주는 남편 덕분에 가끔은 정말 그런가 하는 행복한 착각 속에 살 수 있어서.


며칠 동안 '내가 과연 이 나이 먹도록 한 게 뭐가 있나'라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지고 우울했지만, 이런 남편을 만나서 행복하게 사랑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인생에 큰 성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도 오래된 친한 친구에게 푸념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파리에 살면서 나름 이것저것 한다고 했지만 뭐 제대로 한 게 없는 거 같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것 외에는." 그러자 친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게 엄청 큰 거야. 그것만 해도 이미 너는 큰일을 한 거라고."


그래서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여태껏 사랑밖에 이룬 게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사랑이라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루하루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고.


나의 행복과 나의 아름다움을 동일시 여겨줄 줄 아는 사랑하는 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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