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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ul 27. 2019

파리, 최악의 폭염 이후

아침에 눈을 떠서 아직도 악몽에서 깨어나지 않았나 싶었다. 오늘 새벽부터 분명 기온이 다시 내려간다고 했는데, 방은 여전히 찜질방이었다. 벌써 삼일째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고, 파리 최대의 폭염으로 지칠 대로 지친 몸과 정신은 더 이상은 못 버틴다고 아우성이었다. 특히 어제 파리의 더위는 말 그대로 살인 더위였다. 여태껏 파리 역사상 제일 더운 날이었다고 했다.  


섭씨 42.6도.


작년 여름, 휴가를 내서 한국에 남편과 왔다가 상상을 초월한 폭염에 기겁했었다. 오랜만에 왔으니 아무리 더워도 반가운 얼굴들을 봐야 했다. 도착한 지 다음날 서울에서 친한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가, 오후 내내 서울 시내 카페 투어만 했다. 밖으로 나가려고만 하면 훅 하고 들어오는 숨 막히는 열기에 도망치듯 바로 옆 카페로 대피했던 것이다. 그 더위에 좋아하는 순댓국은 기어이 먹겠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밥을 말아먹고 카페에서 아이스 들어간 종류의 음료들만 시키다 보니, 속이 뒤틀리며 긴급상황이 여러 번 발생했다. 결국 지사제를 사 먹었다.


그때 서울의 최고 기온이 섭씨 39.6도였다.


그때 생각했었다. 이 정도 더위에서 사람이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지만 올여름에는 '사람이 살지 못할 더위'를 파리에서 겪었다. 얼핏 수치로만 보면 비슷한 기온이지만, 서울에서 폭염을 맞는 것과 파리에서 폭염을 맞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서울에서는 일단 대피할 곳이 많았다. 건물이 되었든, 지하철이나 버스가 되었든 일단 들어가면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펑펑 나오고 있었다. 일단 어디든 안으로 들어가면 잠시나마 숨통이 트였다. 종종 에어컨을 너무 심하게 틀어대는 바람에 오히려 추울 정도였다. 저녁에도 영화관, 찜질방 등 더위를 피해 갈 수 있는 곳들이 있었다.


파리에서는 지하철도 버스도 에어컨이 없는 데다, 기차역 같은 공공건물에도 냉방 시설이 전혀 안 돼있다. 카페와 식당도 에어컨이 없는 곳이 많고, 우리 집을 포함한 대부분의 가정집 역시 에어컨이 없다. 물론 에어컨이 해결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파리에는 역사상 최악의 폭염에도 더위를 식히기 위해 대피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티브이에 방영된 실제 에펠탑 앞에서 에펠탑 초콜릿이 얼마 만에 녹는지 실험. 십 분 만에 전부 녹았다. 출처 : Francetvinfo


그래도 지금까지 별 문제가 없었던 건 파리의 여름은 한국에 비하면 그다지 덥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여름을 제외한 파리의 지금까지 평균 여름 기온은 섭씨 20도라고 한다. 오히려 어떤 날은 조금 쌀쌀해서 봄이 끝나고 정리한 재킷을 꺼내 입을 정도였다. 그런 파리에서 폭염을 맞으니 정말 더위로 사람이 죽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지난 폭염이 닥쳤던 2003년에 만 명 넘게 더위로 사망했다. 대부분은 연로하시거나 거동이 어려운 분들이었다.


단단히 더위를 먹어서인지 아니면 에어컨이 그만큼 아쉬웠던지, 몇 달 전 퇴사한 회사까지 처음으로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회사에 가면 나오던 에어컨 바람이 그리웠다.




한 달 만에 두 번째 찾아온 폭염으로 파리에서는 많은 것이 마비되었다.


버스가 출발 전에 고장 나 찜통 버스 속에 뻘뻘 땀을 흘리고 있던 승객들은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일이 빈번했고, 철로도 문제가 생겨 기차가 줄줄이 취소가 되었다. 한참 휴가철이라 휴가를 떠나기 위해 기차역으로 온 이들은 떠날 수 있는지 여부를 기차역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기다려야 했다. 기차역에서 유일하게 에어컨이 나오는 한 약국으로 엄청난 수의 승객들이 몰렸다는 웃지 못할 소식이 메인 뉴스에 방영되고 있었다.


문을 닫는 학교도 생겨났고, 응급실의 환자도 평소보다 30퍼센트 더 증가했다. 위기 상황에 맞서서 프랑스 정부는 물을 자주 마시고, 겉창을 닫고, 몸을 자주 적시는 등의 해야 할 행동과 피해야 할 행동들에 대해 끊임없이 발표했다. 프랑스 한 장관은 최대한 집에서 나가는 걸 피하고, 일도 가능하면 회사에 가지 않고 집에서 대신하는 쪽으로 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했다. 나는 그 인터뷰를 들으며 그녀의 집에는 에어컨이 있음을 확신했다.


공식적인 수치로 에어컨이 설치된 프랑스 가정집은 전체 5퍼센트도 안 된다. 이런 더위 속에서 겉창을 닫고 어둠 속에서 선풍기를 아무리 틀어도 오히려 더운 바람만 나올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집에 있느니 에어컨이 나오는 회사에 가는 게 훨씬 나았다. 몇 달 전에 퇴사를 한 나 역시 생존을 위해 매일 파리의 국립 도서관으로 향했다. 파리에서 에어컨이 나오고 일반인이 갈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공공건물 중 한 곳이었다.


도서관은 나처럼 폭염을 피해 생존을 위해 온 이들로 북적였다. 한참 방학이자 휴가철이라 원래는 한산해야 할 도서관에는 복도의 바닥까지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도서관이 아니라 재난 대피소를 보는 것 같았다. 노트북을 챙겨가서 도서관 문 닫을 때까지 있었다. 저녁 일곱 시 사십오 분, 곧 문을 닫을 예정이니 나갈 준비를 해달라는 도서관 안내 방송에는 가슴이 철렁했다.


저녁 여덟 시, 여전히 39도였다. 게다가 하루 종일 거리와 공기 중에 축적된 더위는 마치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샤워기에 찬물을 틀었다. 찬물이 아니라 미지근한 물이 나왔다. 파리에 와서 여태껏 뜨거운 물이 안 나온 적은 있었어도, 차가운 물이 안 나온 적은 처음이었다. 조금 기다리니 다행히 찬물이 나오기 시작했고, 평소에는 찬물 샤워를 싫어하는 나는 몇 번이고 샤워기를 정수리 위로 가져가며 남편에게 외쳤다.


"천국이야. 천국."


샤워를 마치면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는 수행 아닌 수행을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땀이 비 오듯 흘렀기에, 최대한 가만히 있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땀은 아랑곳하지 않고 줄줄이 흘렀다. 잠은 진작에 포기했다.


출처 : OUEST FRANCE

 



분명 오늘은 기온이 떨어진다고 했는데, 일어나서 갸우뚱 거리며 며칠 동안 닫혀있던 겉창을 올리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며칠 동안 집에 쌓였던 더위가 어느 정도 빠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집의 온갖 창문이란 창문은 다 활짝 열고 있으니 어디선가 빗소리가 들렸다. 밖을 내다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시원한 소낙비보다는 가락 비에 더 가까웠고 그마저 곧 멈췄지만, 살면서 이토록 비가 반가운 적은 처음이었다.


'살았다.'


며칠 전에 동네 프랑스 할머니들이 버스를 기다리면서 나누고 있던 대화가 떠올랐다.


"지금 연못에 물이 다 말랐대."

"이렇게 가면 2050년에는 물이 없을 거라고 하네."

"뭐 그때면 나야 더 이상 이 세상에 없겠지만, 우리 아이들이랑 손주들을 생각해야지."

"세상에 없다니 무슨 말이야."

"맞잖아. 내 나이가 벌써 칠십을 바라보고 있는데."


자신이 그때는 세상에 없다는 것을 저토록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할머니의 말에, 나 역시 2050년이면 몇 살이 될까 계산해 보았다. 얼추 지금 저 할머니랑 비슷한 나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때까지 살아 있다는 가정 아래 말이다. 삶은 모르는 일이니까. 그때가 되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떨지 잠시 상상해 보았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구온난화로 폭염은 곧 새로운 일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간도 더 오래, 더 강렬하게 지속될 거라고 예견하고 있다. 서로 물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폭염은 일상처럼 지속되고, 거기다 황사와 미세먼지로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 보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더 끔찍한 것은 이게 상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언젠가 아니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현실이 될 수 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가 되면 지금이 어땠는지, 나는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다음 세대에게 말해주고 있지 않을까. 그들은 마치 동화 속 이야기처럼 믿지 않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중 누군가는 나에게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그럼 왜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럼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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