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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Aug 12. 2019

모두가 예술가일 필요는 없다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리사’는 유치원 교사이다. 사랑하는 남편과 다 큰 대학생 자녀들이 있는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수영장 달린 큰 집에 산다. 얼핏 보기엔 아무것도 부족할 게 없어 보이는 중산층의 삶이다. 그런 그녀의 내면에는 누구보다 강렬한 예술에 대한 욕망이 숨어있다. 그 대상은 바로 ‘시’이다. 퇴근 후 일주일에 한 번 평생교육원에서 시 수업을 듣기 시작한다. 예술가가 되기 위한 첫걸음을 조금 늦은 나이지만 용기 내어 시작한 것이다.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중


그녀의 욕망은 순수하다. 시인이 되어 이름을 날리거나 돈을 벌기를 꿈꾸지 않는다. 다만 훌륭한 시를 쓸 수 있기를 꿈꿀 뿐이다. 그녀의 순수한 예술 욕망에는 곧 커다란 장애가 나타난다. 그건 바로 그녀의 재능 부족이다. 수업에서 내주는 시 쓰기 과제를 누구보다 열심히 해가지만, 안타깝게도 ‘어디서 들어본 거 같다’, ‘별로다’ 등의 비판만 듣는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게 예술이라고 했던가. 그녀는 자신의 한계에 낙담한다.


그런 그녀 앞에 천재 꼬마 ‘시인’이 나타난다. 자신의 유치원 학생인 다섯 살짜리 ‘지미’이다. 보모를 기다리던 중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앞뒤로 걸으며 시를 읊는다. 시상이 떠오른 그가 즉석에서 창작한 시이다.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중


시를 사랑하는 그녀는 단번에 그의 재능을 알아본다. 그녀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안 나오는 시상과 영감이 그에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온다. 그녀는 그의 시를 자신의 창작 수업에 들고 가서 자신의 시인 것처럼 발표한다. 처음으로 호평을 듣는다. 그때부터 그녀는 그의 시를 모두 받아 적고, 창작 수업에 가져가서 발표한다.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중




여기까지만 보면 그녀가 지미를 이용하고 그의 재능을 훔치는 것처럼만 보이지만, 이 이야기는 그렇게 뻔하지 않다. 그녀는 지미의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얼마나 지미가 타고난 예술적 재능이 있는지. 그런 그의 재능을 키우고 알려야 하는지. 하지만 지미의 부모는 이혼했고, 지미는 무관심한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돈이 최고라고 여기는 지미의 아빠는 아들의 재능에 관심이 없다. 그는 말한다. 지미가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수입은 현실과 직결되니까요."


그 순간 리사는 깨닫는다. 아무도 그의 재능을 돕지 않을 거라는 걸. 오직 그녀밖에 없다는 걸. 그녀는 지미를 수시로 따로 불러 세상을 보는 법, 느끼는 법을 가르쳐 준다. 예술 작품을 보러 데려가고, 얼마 후 열릴 시 발표회를 위해 따로 연습도 시킨다. 남다른 감수성과 재능을 지닌 지미는 그녀가 보여주고 가르쳐 준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그의 시도 한층 더 발전한다.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중


리사는 지미에게 속삭인다.

항상 마음을 열어두고 호기심을 가진다면 뜻대로 세상을 볼 수 있어


그녀에게는 은밀한 계획이 있다. 자신의 시 수업 강사가 그녀에게 제안한 시 발표회를 통해 지미의 재능을 알리는 것이다. 시 발표회에서 그가 자신의 시를 낭독하자 모두 꼬마 시인의 재능에 놀라고 감탄한다. 자신의 수업에서 발표한 시가 그녀의 창작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시 수업 강사는 분노하며 그녀에게 말한다.


“당신은 예술가가 아니에요!”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중


꼭 모든 사람이 예술가일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의 지적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그녀는 지미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이자, 그가 진정한 시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애쓰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없다면 그의 예술적 재능은 영영 빛을 발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녀 같은 사람이 없다면 예술가 역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의 도시라고 불리는 파리에 십 년 넘게 살면서, 예술가를 꿈꾸고 온 많은 이들을 만났다. 화가, 음악가, 영화감독 등. 모두 분야는 다양했지만,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딱 한 가지. 진정한 예술가가 되는 것이었다.


이십 대에 알았던 이 친구들은 지금은 아이도 낳고 직장도 다니면서 여느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예술의 불씨가 꺼지진 않았겠지만, 하루하루 먹고 사느라 바빠서 늘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나중을 기약한다. 이들은 이제 알고 있다.


예술가로 밥 먹고 사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언젠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가수가 웃으며 ‘아티스트 병에 걸렸었다’라고 고백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가 자신이 했던 행동들을 열거하자 다른 패널들도 폭소를 터트리며 동의했다. 그걸 보면서 갸우뚱했다.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게 병인가. 예술가인 척 무게 잡았다는 것을 ‘아티스트 병’이라고 재밌게 말한 것이겠지만, 우리가 사회적으로 말하는 예술가는 재능이 있어야만 될 수 있다. 그것도 모두가 인정할만한 천부적인 재능 말이다.


물론 재능만 갖고도 힘든 게 현실이지만, 이 재능 역시 평생 지속되지는 않는다.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중


아들이 시 발표회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알고 지미의 아버지는 유치원을 옮긴다. 낙담한 리사는 지미를 데리고 몰래 여행을 떠난다. 함께 강에서 수영을 하며 행복한 하루를 보낸다. 그녀가 샤워를 하러 들어간 사이, 지미는 경찰에 전화해서 자신이 납치당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절규하며 외친다.


"세상에 널 받아줄 곳은 없단다. 너도 나 같은 그림자가 될 거야.”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중


그녀 역시 어렸을 때는 남다른 예술적 재능이 있었지만 자라면서 잃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그녀의 재능을 알아봐 주고 키워주지 않았기에. 리사를 잃은 지미도 이제 평범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예술가가 아닐까?


우리는 이미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의 삶의 예술가이다. 재능과 명성에 의해서만 예술가의 여부가 결정되면 너무 슬픈 일이니까. 결코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나가는 자체가 어차피 예술이니까. 영화감독을 꿈꿨지만 지금은 애 낳고 나이 많은 신입 사원으로 고생하고 있는 친구도. 그림을 그리면서도 생계를 위해 수많은 다른 알바를 하고 있는 친구도. 재능이 없어도 계속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예술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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