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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Aug 17. 2019

프랑스 가정에서 아이에게 가장 많이 가르치는 말

프랑스 시댁 시골 별장에 왔다. 매년 여름, 모든 가족이 여기서 일주일 혹은 보름 정도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는 한다. 시골이라 주위에는 끝없는 밭이 펼쳐져 있고, 가까이에는 계곡도 있어 어린 조카들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다.


아이들은 시부모님과 옆 농장에 가서 그곳에서 경작하는 과일이나 채소를 사고, 소를 직접 보고 우유를 사 온다. 별장의 정원에는 오래된 과일나무들이 있어 떨어지는 과일을 주어 모으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시어머니는 이렇게 떨어진 과일로 여러 잼을 만들고, 그 잼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우리는 아직 아이가 없지만,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굉장히 좋은 추억이자 경험이겠다는 생각을 매번 한다. 파리에 사는 도시의 아이들이 하루 종일 자연 안에서 마음껏 뛰놀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니 말이다.


오늘 점심때는 남편의 생일 파티가 열렸다. 남편의 생일은 엄밀히 말하면 다음 주지만 모든 가족이 다 함께 모였을 때 미리 축하를 하는 것이다. 시아버지는 남편이 좋아하는 요리를, 시어머니는 남편을 위한 디저트를 생일 케이크로 만들었다. 머랭그에 산딸기 아이스크림을 넣어 만든 바슈랭이 생일 케이크로 나왔다. 머랭그 특유의 달콤함이 산딸기 아이스크림의 상큼함과 버물려 사르르 녹으며 환상의 조화를 이루었다.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음. 너무 맛있어요."


그때 네 살짜리 조카가 다 먹은 접시를 가리키며 더 달라고 했다. 나는 "맛있지?" 하며 바슈랭 한 조각을 잘라 그의 접시에 놓았다. 아이는 받기 무섭게 먹기 시작한다. 그때 저쪽에서 시누이의 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해야 하지? 그 말이 안 들리네"


"고마워요."


"누구한테 고맙다고 해야지?"


"형원. 고마워요."


시아버지와 옆 농장에 소를 보러 간 조카들




가족이 다 모여있는 자리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대화이다. 프랑스 가정에서는 아이들에게 엄하다. 특히 '고맙다'라는 말에는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 옹알이할 때부터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배우는데, 처음에는 조금 놀랬다. 아직 제대로 발음도 못 하는 어린아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끊임없이 시킨다는 것이. 시부모님이나 시누이 부부나 모두 아이가 무엇을 원하면 그것을 아이에게 주기 전 혹은 주고 나서 아무 말이 없으면 계속 되묻곤 한다.


"이럴 때 뭐라고 해야지?"


아이가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먼저 말한다.


"고마워요. 할아버지"


아이가 따라 하는 시늉이라도 할 때까지 집요할 정도로 반복했다. 그렇다고 다른 프랑스 단어나 혹은 우리처럼 영단어 배우기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맙다는 말에 대해서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형이 케이크를 먹는 것을 보자, 덩달아 두 살 반짜리 막내도 더 달라고 온몸으로 표현한다. 시누이가 "케이크 더 먹고 싶어?" 하며 케이크를 가리키자 아이는 긍정의 표시를 보낸다. 시누이는 아이의 빈 접시를 가져가 바슈랭 한 조각을 올리고는 아이에게 묻는다.


"뭐라고 해야지?"


막내는 접시를 가리키며 달라고 떼를 쓴다. 시누이는 아이의 요동에 넘어가지 않고 차분히 다시 묻는다.


“마법의 단어가 뭐지?”


"Merci(고맙습니다)"


아직 제대로 말을 할 줄 모르는 아기가 어설프게나마 고맙다고 웅얼거리는 걸 보는 것은 신기하고도 경이스러운 일이다. 그제야 시누이는 웃으면서 케이크를 아이에게 건넨다.


꼭 모든 프랑스 가정이 다 이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자식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프랑스 가정에 가면 위와 같은 관경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프랑스 가정에서는 아이들의 예의범절 교육에 있어서 상당히 엄격하다. 타인에게 지켜야 하는 것과 함께 있을 때 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일찍부터 가르친다. 오냐오냐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영어 조기 교육'이나 '영재 교육'은 없지만 '인성 교육'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시작된다.


서로 배려하며 함께 사는 법을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다.


이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커서도 늘 고맙다고 말한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이 한 공간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도 사소한 다툼이나 긴장 없이 화목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비밀이기도 하다. 어른들끼리도 수시로 고맙다고 말했다. 아주 사소한 제스처와 배려도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생일 식사가 끝나고 남편은 고맙다고 했다.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프랑스 식으로 볼에 키스하면서 말이다. 그러자 시부모님이 웃으며 말했다.


"너 덕분에 이토록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 우리가 고맙지."


세 살 버릇은 여든 간다는 말이 있듯, 어릴 때 배운 '고마워하는 습관'은 평생을 갔다.





남편과 연애 초창기 때는 항상 어디서나 '고맙습니다'를 달고 다니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댁의 가정 교육과 본인의 천성이 합쳐진 결과겠지만, 남편은 평균적인 프랑스 사람들보다도 더 많이 고맙다고 말한다. 슈퍼에서도 식당에서도 어디를 가던 늘 고맙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런 남편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고맙다고만 하면 또 모르는데 "고마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고마워요. 힘내세요." 처음 보는 마트 직원이나 식당 종업원 등 일상에서 마주치는 많은 이들에게 늘 고맙다고 웃으며 말했다.


대부분은 남편의 그런 말에 환한 미소로 응답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종종 있었다.


"대답도 없는데 뭘 그렇게까지 해"


푸념하듯 말하는 나에게, 남편은 왜 그런 질문을 하냐는 표정으로 답하곤 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냐가 중요한 거지.”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다음에 같은 곳에 가면 전에는 대답이 없던 사람이 우리를 먼저 알아보고 웃으며 인사를 할 때가 있었다. 꼭 돌아오지는 않지만, 돌아올 때도 있는 것이다. 그게 우리에게든 다른 이에게든.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하루에 남편이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일일이 기록하면 수십 번은 더 될 것이다. 너무 당연한 것까지 고맙다고 해서 가끔 "아니 뭘 이런 걸 고맙다고 해"라고 말하면 "그래도 고마운 거지"라고 대답한다. 부부는 살면서 닮아간다고 했던가. 고맙다는 말은 특별할 때만 하는 줄 알았던 나 역시 지금은 집에서나 밖에서나 하루에도 수없이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살아간다.


신기한 게, 말의 힘이란 위대했다.


고맙다는 말을 하면 정말 고맙다는 마음이 들었다. 분명 말로 하기 전까지는 별거 아닌 거, 사소한 것도 고맙다고 하는 순간 정말 고마운 마음이 생겼다. 내가 고마운 마음이 들면 상대는 그걸 모를까.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그 마음을 알아채고 고맙다고 화답해 주었다. 집에서도 남편에게 하루에도 수십 번 고맙다고 말하니, 실제로도 남편에게 그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들곤 한다. 남편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서로 고맙다고 생각하니 싸울 일도 없었다.


고맙다는 말을 어렸을 때부터 배워야 하는 이유는 예의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이를 가진다면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지 않아도 좋으니, ‘고맙습니다’와 같은 일상의 마법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행복의 언어는 어디서든 통하기 마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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