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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Aug 04. 2019

회사만 떠나면 자유로울 줄 알았다

새벽 세 시, 나도 모르게 눈이 떠진다. 그때부터 한두 시간 다시 잠에 들지 못하고 한참을 뒤척거린다. 결국 일어나서는 거실 소파로 가서 휴대폰을 뒤적거린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에 그렇게 어둠 속에서 휴대폰 작은 액정 화면을 들여본다. 세상은 이토록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데 나만 정지된 느낌이다. 아침에 일어난 남편은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는 나를 보고 걱정되는 눈으로 다정하게 묻는다.


"또 여기서 자고 있어?"


하지만 이것도 운이 좋을 때 이야기이다. 끝끝내 잠에 들지 못하고 환한 새벽이 찾아오면,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제대로 맞이할 기력과 의지를 잃곤 한다. 벌써 몇 년째이다. 하루 걸러 하루 자는 생활이. 그나마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사라지는가 싶더니, 불면증은 최근 들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어젯밤도 아침이 올 때까지 잠에 들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꼽아보았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지 얼마나 지났는지.


육 개월. 벌써 반년이 흘렀다.


일 년 전,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파리의 나름 유명한 의사를 보러 갔다. "왜 이렇게 잠을 못 자죠?" 그는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너무 뻔하다는 듯 말했다.


"스트레스예요. 일 스트레스."


그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일로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큰 행사를 준비하며 그전부터 심해지기 시작한 불면증 뿐 아니라, 한 달 넘게 지속된 눈 떨림과 종종 심장이 조여 오는 통증을 느끼곤 했다. 아무도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 곳에서, 어느새 거의 혼자만의 책임이 돼버린 수많은 일을 부둥켜 앉고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가끔 홀로 눈물을 훔치곤 했지만, 쓸데없이 강한 책임감과 자존심 때문에 못 한다는 소리는 끝끝내 하지 못했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둔 지금, 왜 나는 다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을까.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 몇 달은 황홀한 해방감을 맛보았다.


회사에 뺏기고 있던 내 금쪽같은 시간을 모두 돌려받은 느낌이었다. 아무리 못해도 깨어있는 시간의 3분의 2를 회사에서 그리고 회사 오가는데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시간이 갑자기 생긴 것이었다. 꼭 시간뿐만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일과 사람으로 소모되는 엄청난 에너지를 생각하면, 방대한 양의 에너지 또한 주어진 것이었다. 물론 회사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장점인 '월급'이 없었지만, 소비는 최소한으로 줄일 자신이 있었다.


진심으로 황홀했다. 내 시간과 내 에너지를 내가 원하는 곳에 온전히 쓸 수 있다는 게.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엄마가 와서 엄마와 쿠바 여행도 떠나고 잠시 딸 노릇을 했다. 엄마가 가고 나자 곧 출간될 나의 두 번째 책인 사하라 도보 여행기를 퇴고하고, 그전에 받은 번역을 마무리하느라 몇 달을 바쁘게 지냈다. 중간에는 한국에 들어가서 사하라 여행기를 함께 할 출판사와 미팅을 하고 남편과 한국 여행도 했다. 돌아와서는 사하라 추가 원고를 끝낸 후, 여태껏 벼르고 있던 남편과 몇 년에 걸쳐서 걸은 산티아고 길 원고도 시작하면서 나름 열심히 살았다.


온전히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썼던 반년의 시간이었다.


일상에서의 소비는 정말 최소한으로만 유지했다. 안타깝게도 좋아서 하는 일들이 회사처럼 꼬박꼬박 월급을 보장하지는 않았고, 애당초 경제적 가치로만 따졌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었기에 새로운 수입원이 생길 때까지 소비를 최대한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행복했다. 어떻게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인생은 결국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행복했던 나의 일상이 얼마 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불안이 침투하기 시작하면서였다.


'내가 잘하고 있나'라는 생각은 한 번 시작하자, 점점 더 교묘하고 강렬한 방법으로 나의 마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회사 다닐 때도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주어진 일을 정해진 시간 안에 해야 했기에, 이런 생각이 똬리를 틀 때마다 그 안으로 숨어 들어가면 됐다. 회사 생활이라는 게 결코 녹록지는 않아도, 심리적으로는 편한 부분도 있었다. 조직이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시간은 늘 쏜살같이 흘러갔다.  


더불어 삶도 빨리 흘러갔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라며 시원한 맥주 한 잔과 함께 수고한 나를 위로했고, 다음 날이면 다시 시작될 전쟁을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려고 노력했다. 열심히 돈 버는 나한테 이 정도도 못 해주겠어라며 가끔 맛있는 식당에 가서 밥도 먹고, 와인도 한잔하고, 주말을 이용해 여행도 떠났다. 회사에서도 '일 잘하는 사람',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었고, 회사 일로 관계하는 많은 업체들에게도 종종 '덕분에..', '고맙다', '수고했다'라는 말을 듣곤 했었다. 망할 일 없는(?) 회사의 정직원이었고, 원한다면 평생을 다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자유롭고 싶었다.


보이는 목표 수치를 쫓느라 이미 초기 목적을 상실한 지 오래된 이 집단의 부품으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또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하는 척만 해'라며 선심 쓰듯 조언하는 동료들처럼 되고 싶지도 않았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도 내 소중한 인생이었다. 내 인생이 그것보다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퇴사를 결심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다시 불면증을 앓기 시작했고, 더 이상 자유롭다고 느끼지 않았다. 아니 자유롭기는커녕, 종종 엄청난 두려움과 불안이 나를 조여왔다. 급기야는 내가 회사를 그만둔 게 정말 잘한 일인가에 대해 자문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지난해 사하라 사막에서 보낸 첫 밤이 떠올랐다


지난해, 지하철 출근길에 생택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를 읽다가 참지 못하고 휴가를 내서 일주일 동안 사하라 사막을 걸으러 갔었다. 여행 가기 전 가장 기대했던 것은 사막의 수많은 별을 보며 잠들 사막의 첫 비박이었다. 하지만 막상 밤이 돼서 침낭에 들어가 사막의 하늘을 촘촘히 수놓은 반짝이는 별들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


벽과 천장이 없는, 말 그대로 광활한 자연 아래 놓였다는 것을 자각하자 아찔했던 것이다. 감탄이 아닌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다. 수많은 사막의 별들 아래서 행복하고 편하게 잠들기까지는 며칠의 시간이 걸렸다. 


깨어있는 삶의 절반 이상의 시간 동안 나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요구하고 주문했던 회사는 벽이나 천장과도 같았다. 나를 보호함과 동시에 나를 가두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감옥은 회사가 아니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일이 끝나면 편하게 쉬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어느새 일과 휴식의 경계가 무너져 버렸다. 하루의 모든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건 나였지만, 나는 그 어떤 회사의 무서운 상사보다 나 자신을 가혹하게 대했다.


늘 뭔가 하고 있어야 했다. 작업을 하던 운동을 하던 하다못해 집안 청소라도 하고 있어야 했다. 안 그러면 나태해져서 아무것도 안 할까 봐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사실 그 기반에는 끊임없는 자기 비난과 불안이 깔려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남이 나를 인정해주고 수고했다고 했지만, 이제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회사를 그만둔 후로, 단 한 번도 나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가끔은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상의 아주 소소한 소비도 '돈도 못 버는데 왜 해'라며 참았고, 꼭 돈이 들지 않아도 가끔 기분전환을 위해 할 수 있는 여러 활동들도 '이미 노는데 왜 또 놀아'라고 뒤로 미루기 십상이었다. 사실 정말 노는 것도 아니었고, 수입이 그전보다 적긴 하지만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퇴사 이후로 나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었고, 내 방식대로 미래를 준비해 나아가고 있었다. 한 번쯤 그런 자신에게 '잘하고 있어'라고 용기 나는 말을 해 줄 수도 있었지만, 나는 주야장천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집요할 정도로 무섭게 말이다.


내 진짜 감옥은 나 자신이었다.


이제 나 자신에게 향하는 수많은 비난을 잠시 멈춰보려고 한다. 사막에서 그랬던 것처럼, 삶이라는 사막에서도 벽과 천장이 없어도 두려움에 휩싸이지 않는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쉽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나 자신의 감옥에서 나오다 보면 언젠가는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는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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