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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Aug 29. 2019

브런치에 글을 쓸 때마다, 두렵고 또 설렌다.

 

비밀 글만 쓰면 글은 늘지 않는다.

-은유 <쓰기의 말들> 중


2016년.


첫 책 <여행은 연애>가 세상에 나왔다. 책을 쓰고 싶다는 오랜 꿈을 이뤘으니, 삶도 삼백육십도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출간 한 달 만에 2쇄를 찍을 때만 해도 대박은 아니어도 꾸준히 나가겠거니 했지, 판매가 꾸준히 제자리걸음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난 ‘재능'이 없는 사람인가 보다. 쉽게 좌절했다.


그다음 해.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회사에서 생에 처음으로 나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직함을 달고, 한참 업무를 배우고 적응하느라 정신없을 때 <여행은 연애>를 출간했던 출판사의 편집장님에게 톡이 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원고를 투고했을 때, 그다음 날 바로 책을 만들자며 연락을 주었던 고마운 그녀였다.


"자기 혹시 다음 브런치나 페북 같은 거 할 시간 없지? 자기도 글 꾸준히 써서.. 일단 꾸준히 이런저런 주제를 다양하게 쓰다 보면 친구들이 생기고 콘텐츠의 방향이 뜻밖의 분야에서 찾아질 수 있거든."


책 판매도 부진한 작가를 잊지 않고 마음 써주는 게 고마워서 "맞아요. 고마워요."라고 했지만, 정작 시작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녀의 말대로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바쁘고 정신없다는 핑계를 스스로에게 내세웠지만, 그건 말 그대로 핑계였다. 두려웠다. 인터넷에 공개된 글을 쓴다는 것이. 페이스북이며 인스타 계정이 장롱면허처럼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SNS 무능력자인 나에게 그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일상의 글을 인터넷이라는 오픈된 장소에 쓴다는 두려움. 편집자와 출판사의 손을 거쳐 거를 내용은 거르고, 다듬을 내용은 다듬어진 후에 나오는 책과는 또 다른 글쓰기 행위였다. 물론 편집자에게 원고를 보낸 후에도, 나는 늘 그녀가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곤 했다. 아주 가까운 지인을 제외하고는, 속 깊은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나였다. 그런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으로만 느껴졌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다.

-리베카 솔닛


그렇게 일 년이 또 지났다. 하루하루는 바빴고, 동시에 공허했다. 삶의 중앙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갑갑하고 미칠 것 같아서 글을 쓰고 싶을 때는 일기장 안으로 숨었다. 나만 보는 공간. 나만 있는 공간. 혼자 노는 게 큰 재미는 없어도 편한 것처럼, 혼자 쓰고 혼자 보는 글도 타인과의 공감이나 위로 같은 짜릿한 경험은 없었지만 편하고 안전했다. 다시 책을 써보자, 라는 결심만 도돌이표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2018년 1월 1일.


새해를 맞이해서, 나를 위해 용기를 냈다. 새해 첫날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브런치 작가에 지원을 했다. 동생의 공연을 위해 잠깐 와있던 마인츠라는 독일의 조용한 소도시에서, 그렇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파리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브런치 첫 글을 썼다.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브런치에 쓰려는 주제가 완전히 정해지지는 않았기에, 쓰고 싶은 주제로 그때그때 썼다. 스스로에게 정한 유일한 규칙은 일주일에 글 한 편 발행하기였다.


그렇게 반년 동안 꾸준히 일주일에 한편씩 글을 올렸다. 주 중은 회사에 영혼이 털렸으니, 아예 토요일 오후를 브런치 글 쓰는 시간으로 잡아 놓고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반나절을 보냈다. 하지만 글을 계속 쓰는데도, 구독자 수는 신기하리만큼 늘지 않았다. 몇 개월을 썼는데도 구독자 수는 열 명을 웃돌았다. 브런치 글을 쓰러 토요일마다 다니던 파리의 한 카페 직원들과도 어느덧 친해졌다. 그들과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까지 나눌 사이가 되었지만, 정작 내 브런치는 일기장에 혼자 글을 쓸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공개된 글을 쓴다는 두려움은 애당초 나의 환상이었다.


거의 아무도 읽는 사람이 없었다. 브런치에서 친절하게 제공해주는 통계 기능 역시 그런 나의 생각을 입증해주었다. 브런치에 쓴 내 글들은 읽히지 않는 날들이 더 많았다. 실망은 했지만 그래도 글은 계속 썼다. 꼬박꼬박 쓰다 보니 정말 쓰는 게 그 자체로 재밌어져서. 아무도 읽지 않지만 언젠가는 누군가 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쓰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날들이 점점 더 많아져서.




발밑이 흔들릴 때 본능적으로 두 팔을 벌려 수평을 유지하듯이 불안의 안습이 몸을 구부려 쓰게 했다.

- 은유 <쓰기의 말들> 중


그렇게 열 명 남짓의 구독자 수에서 맴돌고 있던 중, 브런치로부터 '위클리 매거진 연재를 축하합니다'라는 메일을 받게 되었다. 사하라 도보 여행기를 연재하고 싶어 브런치에 위클리 매거진에 지원한 후 약 두 달 정도 지난 후였다. 연재 검토 기간이 최소 30일부터 50일이라는 공지를 봤었기에 탈락한 게 아닌가 낙담하고 있을 때였다. 위클리 연재 1화가 발행되던 날,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한국과의 시차로 인해 새벽 내내 브런치 알람이 울렸기 때문이다. 지난 칠 개월 동안 거의 받아본 적 없었던 '구독' 혹은 '라이킷' 알람에 가슴이 다시 뛰었다.


잠 따위는 자지 않아도 괜찮았다.


우울증과 불면증. 정말 힘든 시기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 시기에 <별을 따라 걷다 보면> 위클리 매거진 연재는 나에게 사막과도 같은 일상을 빛내주는 별빛이었다. 연재하는 목요일이 일주일 중 제일 행복했다. 선물 포장지를 뜯기 전의 아이처럼 하루 종일 두근거렸다. 책은 독자의 반응을 보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지만, 브런치에 연재하는 글은 반응이 즉각적이었다. 마치 두 개의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느낌이었다. 회사원인 나와 글 쓰는 나.


이중간첩이 된 것처럼 은밀하고도 매력적이었다.


연재가 끝나고 얼마 후 몇몇 출판사들에게 제안을 받았다. 연재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내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브런치 시작 후 일 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그중 한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하게 되었고, 올 가을에 드디어 두 번째 책이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브런치 작가를 지원할 때 떴던 문장. 나를 너무도 가슴 설레게 했던 그 문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이 문장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책을 내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그냥 글을 꾸준히 쓰다 보니, 거짓말처럼 두 번째 책을 낼 기회가 찾아왔다.




'말하고 싶지 않음'과 '말하지 않을 수 없음'의 길항에서 좋은 글이 나온다.

- 은유 <쓰기의 말들> 중


하지만 내가 브런치를 통해 받았던 가장 큰 선물은 책 출간의 기회가 아니었다(물론 이것도 엄청난 선물이다). 차츰 구독자 수도 증가하고, 브런치 메인이나 다음 메인에 여러 번 글이 노출되면서 나는 '공개된 글'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설렘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물론, 브런치 인기 작가님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하루 조회 수가 다음 메인 노출 덕분에 폭발하여 십만에 가까운 어느 날이었다. 누군가 친절하게 남겨준 맞춤법 틀렸다는 댓글에, 이 오류를 여태껏 이 많은 사람들이 봤을 거라는 생각으로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엄격한 자기 검열이 시작되었다. 불필요한 문자이나 단어는 없는지, 잘못된 맞춤법이나 표기는 없는지. 나는 내 글의 작가이자 편집자였다. 어떤 글은 발행했다가도 이건 아니다 싶어 하루 만에 취소한 적도 있었다.


'발행'과 '저장함' 사이에서 한참을 망설인 후 발행을 누르고 예기치 못한 위로를 받기도 했다. 너무 마음이 힘든 어느 날. 이대로는 숨도 못 쉴 거 같은 그런 날. 글 밖에 쓸 수 없는 그런 날. 브런치에 긴 글을 남겼다.


이렇게 어둡고 우울한 내용의 글을 남겨도 될까. 한참 고민하다가 숨을 들이마시고 '발행'을 누르고는, 청소기를 돌렸다. 발가벗은 내 글을 보고 뭐라고 할까. 문제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청소기를 돌리고 휴대폰을 보니 댓글 알람이 떠있었다. 눈을 꼭 감았다. 잠시 후 두려운 마음으로 댓글을 읽고는, 그 자리에서 와락 울어버렸다.


감정이 글자 하나하나에 느껴집니다. 지금은 아이만 키우는 엄마지만 한때 불안했었던 시절의 모습이 생각나고 공감하고 가요. 마음 편히 가지세요. 어떤 시간이든 의미가 있는 거니까요. 잘 읽고 가요. ^^


누군가 내 마음을 공감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위로였다. 다음 댓글 역시 예상치 못한 내용이었다.


저하고 똑같은 분 아니 더 심한 작가님을 만나니 위로가 됩니다. 화이팅 입니다.


힘내라는 댓글들이 그 아래 몇 개 더 달렸다. 이런 글을 공개해도 될까 두려웠지만, 이 글 덕분에 나도 깊은 위로를 받고 누군가에게는 또 위로가 되었다.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왜 글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공개해야' 하는지.

 



공개는 공유의 또 다른 표현이었고, 공유가 있기에 공감도 가능했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공개하는 것은,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누군가와 공유하는 행위였다. 물론 그래서 두렵다. 주변 사람도 다 알지 못하는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마음을 알고 나니 다른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도 더욱 열심히 찾아서 읽게 되었다. 라이킷도 누르고, 조금 쑥스럽지만 응원 댓글도 열심히 달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두들 나와 같이 두렵고 설레는 마음으로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되니, 그 어떤 글도 소중하지 않은 글이 없었다. 그러면서 글을 쓰는 기쁨만 아니라 글로 소통하는 기쁨을 천천히 알아가는 중이다.


글감을 보는 시선 또한 달라졌다. 정기적으로 글을 쓰다 보니 시선이 가까운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선을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끌어당기다 보니, 일상의 많은 것들이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말과 행위가 다시 들리고 보이기 시작했다. 삶에서 의미가 없는 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은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내가 볼 수 있다면. 들을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는 나에게 커다란 축복이다.


내 마음이 이 글을 읽는 상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발행' 버튼을 누르기 전에는, 아니 누르고 나서도 늘 두렵다. 두려우면서도 설레고. 무서우면서도 두근두근 떨린다. 내 글을 읽고 있을 당신과의 만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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