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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Sep 08. 2019

라이온 킹의 마법의 주문

 하쿠나 마타타!

내 얼굴이 어둡다 못해 비 내리기 직전 회색 구름으로 뒤덮이고 한숨만 무한 반복으로 나올 때면, 남편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팔을 하늘 높게 올리고 리듬에 맞춰 외친다.

 

“하쿠나 마타타!”


조그마한 것도 남의 눈을 늘 의식하는(겉으로는 쿨한 척하면서) 나는 홍당무가 돼서는 얼른 주위를 둘러본다. 하지만 그런 나와는 반대인 남편은 나의 창피함은 아랑곳하지 않고 작정하고 춤까지 춰가며 다시 외친다.


“하쿠나 마타타!!!”


불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쉽지도 않은 저 단어를 언제 외웠는지. 남편은 얼마 전에 개봉한 <라이온 킹> 영화를 본 후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신나게 외쳐대기 시작했다. 마치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양.




영화 라이온 킹 2019 중


영화 라이온 킹에서 어린 심바는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가족을 떠나 홀로 떠돌아다니다 객지에서 죽을 뻔한다. 그런 그를 구해준 미어캣 티몬과 멧돼지 품바가 그에게 따라 하라고 한다. "하쿠나 마타타." "하쿠나 마타타?" "그래. 이건 우리의 좌우명이야." "좌우명이 뭐야?" 그들은 역시 쿨하게 대답한다.


"아무것도 아니지!"


Hakuna Matata! What a wonderful phrase!
하쿠나 마타타! 얼마나 멋진 말이야
Hakuna Matata! It ain't no passing craze!
하쿠나 마타타! 지나가버리는 유행 같은 게 아니야!
It means no worries for the rest of your days!
이건 너의 남은 날들에 걱정이 없다는 의미야.
It's our problem-free philosophy
이건 걱정에서 자유로운 우리의 철학이야.
Hakuna Matata!
하쿠나 마타타!
-라이온 킹 2019 Hakuna Matata ost 가사-


지금까지 사자왕의 후계자로 태어나 운명의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라온 심바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한다. "나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는데." 티몬은 단호하게 말한다. "그렇다면 너에게는 새로운 교훈이 필요하겠군." "따라 해 봐. 하쿠나 마타타". 심바 역시 티몬과 품바와 함께 이 노래를 부르며 순간순간을 즐기며 살아간다.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 1994 중


사실 '하쿠나 마타타'는 영화 라이온 킹의 메인 메시지는 아니다. 어른이 된 심바는 어릴 때 친구가 날라가 찾아오자, 결국 왕의 후계자로서의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 삼촌을 맞선 후 자신의 아버지처럼 사자들의 왕이 된다. 규칙이 없는 삶. 책임이 없는 삶. 그리고 무엇보다도 걱정이 없는 삶. 이런 삶은 영웅에 걸맞은 운명이 아니다. 심바는 사자의 왕뿐만 아니라 정글의 왕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남편이 틈만 나면 외치기에 웃으며 놀리듯 말했다. "아니 영화를 보고 영화의 교훈이 아니라 이상한 표현만 배웠어." 그랬는데 도서관에 갔다가 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필통에 새겨져 있는 단어를 보고 깜짝 놀랐다. 라이온 킹의 캐릭터와 함께 하쿠나 마타타가 적혀 있는 필통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얼마 전에 파리에서 버스를 탔는데, 한 프랑스 남자의 팔에 새겨져 있던 문신을 읽던 나는 화들짝 놀랐다.


'HAKUNA MATATA'


설마 라이온 킹을 보고 저 대문짝만 한 문신을 새겼을까 싶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불렀다. "저기요." 웬 모르는 동양 여자가 자기를 부를까 하고 얼굴을 찌푸리며 쳐다본다. 조금은 인상이 험악한 남자라 순간 두려웠지만, 호기심은 두려움을 이겼다. "이거 문신이요. 하쿠나 마타타. 이거 라이온 킹 보고 하신 거예요?" 그러자 그는 방금까지 구겨져있던 얼굴을 활짝 펴고 웃으며 말했다. "이거요? 아니에요. 옛날부터 한 거예요."


이 정도가 되니 도대체 저 말의 원래 뜻이 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스와힐리어로 ‘문제없다’라는 뜻이며, '걱정 근심 떨쳐버려라'는 뜻으로 아프리카에서 널리 사용되는 표현이라고 한다. 원래 표기는 Matatizo Hakuna로 1982년 잠보 브와나라는 노래와 1994년 라이온 킹의 세계적인 흥행 덕분에 널리 퍼지게 된다. 심지어 2014년 방탄소년단의 <상남자>라는 노래에도 잠깐 등장한다. '가나다라마바사아 하쿠나마타타'


방탄소년단 BTS -상남자[2014.02.21 뮤직뱅크] 화면




'문제가 없다.' 어떻게 보면 그럴싸한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래서 한 번 바꿔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이 말을 처음 심바에게 가르쳐 준 티몬과 품바의 일생에 대해서. 품바는 하쿠나 마타타 노래 중간에서도 말하듯, 새끼 멧돼지였을 때 모두가 냄새가 난다고 자신을 피한 트라우마가 있다. 둔감해 보여도 마음이 여리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가, 자라면서 얼마나 상처를 입었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 부분이다.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 1994 중


티몬도 마찬가지다. 라이온 킹을 티몬과 품바의 관점으로 바라본 <하쿠나 마타타>라는 부제의 라이온 킹 후속 영화에서 티몬은 말한다. "우리는 먹이 사슬의 밑바닥이라 땅속에 살아." 티몬과 품바, 둘 다 동물의 세계에서 주연이 아닌 소외된 이들이다. 문제가 없었던 이들이 아닌 문제가 많았던 이들인 것이다. 먹이 사슬의 상위에 사자로 태어나, 왕의 후계자로 보호받고 존중받은 심바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라이온 킹 3(1과 1/2) : 하쿠나 마타타>의 한 장면


심바는 어떻게 보면 보호받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생의 크나큰 첫 시련을 겪지만, 티몬과 품바의 인생은 태어난 순간부터 시련의 연속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이들이 주문처럼 외치는 '하쿠나 마타타'는 단순한 현실 회피가 아닌 팍팍한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내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쓰러져 있는 심바를 구해서 자신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것도, 그런 심바가 다시 돌아간다고 했을 때 목숨을 걸고 그를 도운 것도 결국 티몬과 품바였다. 죽을 뻔한 심바를 구해준 자신들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를 심바에게 일절 요구하지 않고 말이다.


어렸을 때 극장에서 라이온 킹을 봤을 때는 심바와 그의 가족들만 보였었다. 심바가 어린 나이에 겪어야 했던 비극에 가슴 아파했고, 그가 영웅의 운명을 달성하기를 응원하며 조마조마하게 지켜보았다. 세월이 지나 이번에 새로 나온 라이온 킹을 보자 똑같은 스토리인데도 느낌이 전혀 달랐다. 심바보다도 티몬과 품바에 훨씬 더 마음이 갔다. 


‘하쿠나 마타타'를 외치지만, 정작 남의 불행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외치는 '하쿠나 마타타'가 결코 가볍거나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이다. 인생이 풀리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고민 혹은 문제가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매달려서 나올 때. 하쿠나 마타타를 외쳐보면 어떨까? 남편처럼 엉덩이를 씰룩이며 춤을 춰도, 리듬을 넣어 노래로 불러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이 두 단어를 외친다고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을 테지만, 적어도 문제에 파묻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걸 잊지는 않을 테니.


'하쿠나 마타타!'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 1994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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