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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Sep 10. 2019

인생도 항상 꽃피울 수만은 없기에

어쩌면 지금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살아가는


이번에 한국 갔을 때 알게 된 덕경 스님으로부터 아름다운 연꽃 사진과 함께 연락이 왔다.


가을이 깊어가는 가운데 여름내 우리를 기쁘게 해 주었던 연꽃들이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다시 스러지고 있습니다. 이제 시즌이 끝나서 마당 앞 연꽃들을 곧 치우겠지요. 인생도 항상 꽃피울 수만은 없기에 어쩌면 지금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서른다섯 그리고 가을.

왠지 내가 저 스러지는 연꽃 같다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물론 나보다 훨씬 더 연세가 많으신 분들에게는 이것도 귀여운 투정(?)으로 들리겠지만. 예전에 오십을 바라보는 어떤 분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 앞에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져 있고, 인생이 변할 수 있겠다고 믿었는데. 딱 서른다섯부터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

나 역시 서른다섯이 되면서 인생의 드라마틱한 반전을 꿈꾸지 않기 시작했다. 대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드라마틱 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원하는 드라마를 고를 수 없어서 그렇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씁쓸한 건 왜일까? 정작 아름답게 피어났던 이십 대에는, 나 또한 꽃일 수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도 없으면서. 그때는 왜 다들 그 푸르름과 싱그러움을 부러워하는 줄 몰랐다. 그저 옆에 피어있는 다른 화사한 꽃들만 부러웠다.

몇 차례 닥친 폭염으로 유달리 고생했던 파리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찾아왔다. 너무 갑작스럽게 바뀐 날씨에 무슨 옷을 꺼내 입어야 할지 외출할 때마다 우왕좌왕한다.

가을 특유의 서늘함이 반가운 게 아니라, 가시처럼 쿡쿡 마음을 찌르는 것 같았다. 가을이 올 때마다 그렇듯, 어김없이 올해도 뭘 했나 싶어서 혼자 자책하고 울적해한다.

완연한 가을 기운이 느껴지는 조금 쌀쌀한 아침. 원두를 갈아 천천히 내린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을 보다가 남편에게 슬며시 그런 마음을 비췄다. 가을이 찾아오니 벌써 뭔가 끝난 거 같아 쓸쓸하다고. 남편은 내 말을 듣더니 놀라며 말했다.

“언제 과일이 제일 맛있는 줄 알아? 가을이야. 여름 내내 햇볕을 받아 가장 향기롭고 과즙이 풍성해. 가을은 성숙의 계절이야.”

맞다. 꽃이 지고 열매가 나는 계절. 그게 바로 가을이었다. ‘인생도 항상 꽃 피울 수만은 없기에 어쩌면 지금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살아가는.’ 스님의 말처럼, 지금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살아가면서 모르고 사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 커버 사진 : Photo by 덕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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