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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Sep 14. 2019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떡국이다.

외국에서는 설이고 추석이고 분위기 내기가 싶지 않다. 그래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인지. 예전에는 추석인지 설 인지 모르고 있다가 '아 맞다 한국은 추석이지' 할 때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미리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한국 명절처럼 다 같이 모여 한상 차려놓고 먹지는 못하나, 떡국을 끓여 얼추 기분은 내려고 한다. 원래 한국이라면 곱게 빚은 송편을 먹겠지만, 이번 추석에는 소고기 떡국을 끓이기로 했다.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떡국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남편을 만나 제일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뭐냐는 질문에 "떡국"이라는 말을 듣고 잘 못 들은 게 아닌지 내 귀를 의심했다. 보통 외국인에게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물으면 가장 많이 답하는 것이 비빔밥 혹은 불고기. 조금 한국 음식을 잘 안다 싶으면 잡채 혹은 삼겹살이었기 때문이다. 떡국을 좋아한다는 말은 해외 살며 처음 들은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떡국?"


남편은 어설픈 발음으로 떡국이라고 다시 말했다. 사실이었다. 남편은 정말로 떡국을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떡국을 한 솥 끓이면 몇 그릇이고 그 자리에서 해치울 수 있었다. 나는 그런 남편에게 웃으며 말했다. "한국에서는 떡국 한 그릇에 한 살씩 먹어." 남편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진짜?". "그럼. 어렸을 때는 빨리 나이 들고 싶어서 떡국을 몇 그릇씩 먹고는 했어. 자기도 지금 세 살은 더 먹은 거야."


 떡국을 사랑하는 남편이 유일하게 아직까지 좋아하지 못하는 한국 음식이 있는데, 그건 바로 떡이다.


"떡국도 떡으로 만든 거야."라고 아무리 말해줘도, 떡국떡을 뺀 다른 떡들은 잘 안 먹는다. 파리에 십 년 넘게 살면서도, 여전히 빵보다 떡을 훨씬 더 좋아하는 나는 그런 남편이 안타깝다. 없어서 못 먹지, 나는 떡이라면 아무리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송편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한국 직장을 다닐 때 추석이면 송편을 줬다. 남편과 함께 먹을 생각에 신나서 집에 가져오면 남편은 한두 개 먹다가 말았다.




사실 남편이 떡을 좋아하지 않는 건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다. 외국인들은 대부분 떡 맛을 모르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물컹물컹한 고무 같은 느낌이라며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을 적지 않게 봤다. 프랑스 시댁 식구들도 김치나 전도 맛있게 먹는데, 유독 떡은 어려워한다. 그래서 남편이 떡을 좋아하지 않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내가 신기해하는 건 떡은 안 좋아하면서 어떻게 떡국은 저렇게 좋아할까이다.


"떡국 하려고 하는데.."


"떡국?"


떡국이라는 말만 들어도 눈빛이 빛나며 벌써부터 설레는 남편을 보며. 나는 남편이 아주 어렸을 때 한국에서 떡국을 먹은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세 살 때 프랑스로 입양이 되었다. 거리에서 고아원으로, 고아원에서 영양실조로 죽을 뻔해서 위탁 가정에 맡겨진 후 입양이 되었다. 이제 막 태어난 생명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님 셈이다. 몇 차례나 생존 위기를 넘긴 후에.


다행히 너무나도 훌륭하고 사랑이 가득한 시댁 가정을 만나게 되어, 지금은 아낌없이 사랑을 줄 수 있는 따뜻한 어른으로 성장했지만. 남편이 그 어린 나이에 느꼈을 두려움과 공포를 생각하면 나는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감사한다. 남편이 프랑스에 와서 받았던 넘치는 사랑. 늘 웃으며 행복하게 떠올리곤 하는 수많은 어린 시절의 추억들에 대해서. 하지만 가끔 남편이 한국에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한국 와서 동네 목욕탕에 갔다가 너무 개운한 표정으로 나올 때.


순댓국에 소주를 마시며 행복해할 때.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곰장어 구이를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울 때.


서울 찜질방에서 소금 방과 이글루 방을 오가며 즐거워할 때.


떡국을 몇 그릇이나 비우고도 또 먹을 때.


이것 말고도, 남편에게는 어쩔 수 없이 한국 사람의 피가 흐르기는 하는구나 라고 생각될 때가 무수하게 많다. 지금까지 겪어본 바로는 모든 입양아라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남편은 유독 이 피가 아직까지도 찐하게 흐르는 것 같다. 떡국이 남편도 떠올리지 못할 만큼 아주 오래 전의 어린 시절의 흔적일 것처럼 말이다.


다 완성된 떡국을 보며 남편의 입은 벌써 귀에 걸린다. "오~ 맛있다"를 조금 어설픈 한국어로 반복하며 순식간에 세 그릇을 해치웠다. 한국에 갔을 때 가족과 친구들이 식당에서 종종 "오~ 맛있다"를 연발하는 걸 보고, "저게 무슨 뜻이야?" 물어보더니, 이제는 어설픈 발음으로나마 나보다 더 먼저 외친다. 배가 터질 때까지 먹기를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늘 적당히 먹고 수저를 내려놓는 식탐이 별로 없는 남편이 유일하게 식탐을 부리는 음식.


떡국이 있어 오늘도 우리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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