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자가격리 중입니다

by 주형원

너무 빨리 일어났다. 말도 안 된다고 하는 사이, 말이 안 되는 것들이 현실이 되었다. 지난번 글을 쓸 때만 해도. 회사에서 월요일부터 재택근무를 하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만 해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저 나쁜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왜 가끔 꿈속에서도 꿈을 꾸는지 알 때가 있지 않은가. 괜찮아 곧 깨어날 거야. 그러고는 일어나 이 모든 게 다 꿈이었음에 안심하는.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회사에 필요한 문서들을 찾으러 갈 때만 해도 꿈이었다.


회사에서 누군가 내일부터 이동 금지령이 있을 거라고 했어도. 동료들과 언제 볼지 모르지만 잘 있으라고 작별 인사를 할 때만 해도. 닫힌 음식점과 가게들을 지나서, 슈퍼와 약국 앞에 서있는 엄청난 줄을 봤을 때도.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월요일. 회사에서 재택근무에 필요한 모든 서류들을 챙겨서 돌아오는 길에, 유일하게 줄이 없는 냉동식품 전문점에 들어서서 사태를 파악했다.


모든 재고가 동이 나 있었다. 모든 음식들은 사라졌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 와인과 디저트였다. 와인 몇 병과 티라미슈를 집어 들었다. 앞으로 얼마가 될지 모르는 이 시간들을 버텨내려면 이들이 필요할 거 같았다.




월요일 저녁, 마크롱 대통령의 중대 발표가 있었다. 그는 ‘집에 있어라’를 수없이 반복하며 ‘우리는 전쟁이다’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친구들을 만나거나 가족들을 보러 가는 것도 안 된다고 했다. 그때까지도 생각했다.


이건 현실이기에는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자가격리라고 했다. 앞으로 이주 간이지만, 훨씬 더 길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프랑스의 모든 사람들이 해당되었다. 심지어 경찰과 군인이 거리를 감시하고, 집 앞에도 정부의 공식 문서 없이 나가면 벌금을 물린다니.


살면서 겪어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향긋한 커피를 내리고 나를 깨웠다. 나는 잠에서 깼지만 여전히 꿈이 아닌 이 현실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남편은 평온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새소리가 유독 잘 들리지 않아? 차도 없고 사람도 없어서 새들이 다 나왔나 봐.”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 새소리가 뭔 상관인가 싶었지만, 정말 잘 들렸다. 첫날은 아무리 노력해도 일에 집중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상사이자 친구인 그녀도 전화가 와서 말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집중이 잘 안돼.”


그래도 우리는 웃고 농담을 하고 업무를 의논하고 향후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어쩌면 아무 소용이 없을 수도 있음을.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오후에는 사무실 같은 방을 쓰는 동료와 통화를 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됐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함께 용기를 주고 웃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파리에 사는 한 한국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보름 전부터 몸이 아프다고 했다. 몸이 쑤시고 기침이 나서 계속 집에만 있었다고 했다.


“너도 걸린 거 아니야? 당장 병원 가야지.”


“갔다 왔어. 병원에서 코로나 검사 키트가 부족하다고 해서, 독감 검사만 받고 왔어.”


코로나 검사조차 할 수 없어서 이 시국에 독감 검사만 받고 왔다니. 왜 프랑스 정부가 전 국민 자가격리를 감행했는지 이제야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검사도 치료할 수단도 턱없이 모자란 까닭이었다.


친구는 그래서 현재 주변 한국 유학생들이 모두 귀국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코로나 때문에 귀국한다는 생각은 아직까지 해본 적도 없거니와 프랑스인들은 현재 출국 금지 상태라 남편은 프랑스를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그게 이 우주의 어디가 되었든 남편을 버리고 혼자만 살겠다고 갈 수는 없었다. 만약에 죽는다고 해도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남편 옆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이 황당한 상황에 반쯤 정신이 나간 나와는 달리,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사의 실력을 발휘해서 집에 남아 있는 재료로 삼시 세끼 다 다른 레시피로 맛난 요리를 하고 간식까지 만들었다.


그런 남편이 너무 신기해서 내가 “스트레스 안 받아?” 물어보자 남편은 답했다. “당연히 받지. 근대 이미 벌어진 상황이고, 내가 스트레스 받으면 덩달아 너까지 더 받을 테니까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지.”


그런 남편 덕분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자가격리 생활을 지금까지는 미치지 않고 버티고 있다. 같은 공간에 이십사 시간 갇혀있어도, 늘 모든 것에 농담하고 웃을 수 있어서. 긴 밤을 티브이와 넷플릭스 대신 음악과 와인을 곁들여 이야기하며 보낼 수 있어서.


그 소소하고 당연한 것들이 행복이라는 걸 알았다. 혹시라도 결혼 계획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무인도에 단둘만 남았을 때 이십사시간 같이 있어도 전혀 불편하거나 지루하지 않을 사람과 결혼하라고.




어제는 정부 사이트에 들어가 외출 사유 중 집 근처 식료품 구입 항목을 체크한 다음 증명서를 인쇄하여 사인한 후 신분증과 함께 챙겨 장을 보러 나갔다. 슈퍼에는 휴지를 비롯한 몇몇 생필품 진열대는 텅 비어 있었다.


계산을 하려고 줄을 서 있다가 나는 꽃이 있는 곳으로 가서 꽃 한 다발을 집어 들고 돌아왔다. 봄이 왔지만 봄을 보러 갈 수 없기에, 집에서라도 꽃으로 봄을 느끼고 싶었다.


고 법정 스님의 법문을 인터넷으로 보는데, 법정 스님의 시작 말씀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기 때문에 봄을 이루는 거라는.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침묵의 봄이라는 말씀에 가슴이 아팠다.


바로 지금이 침묵의 봄이었다


저녁 여덟 시. 어디선가 박수와 환호성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멀리서 들려오더니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창문에 서서, 지금 현재 누구보다 고생하는 의료진들에게 보내는 격려와 응원이었다


마찬가지로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격려와 응원이기도 했다. 매일 밤 여덟 시, 이 환호와 박수는 계속되고 있다. 에펠탑도 매일 밤 저녁 여덟 시에는 기존보다 두 배 더 오래 반짝인다고 한다. 그 시간 함께 손뼉 치고 환호하며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아직 희망이 남아 있음을 느낀다.


내 마음대로 집 밖을 못 나가는 상황.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일이지만 그러면서 많은 걸 느끼고 있다. 완벽하게 멈춘 일상 속에서 뭐가 중요한가를 다시 돌아보게 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자문한다.


아마 나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모두 이 봄의 침묵 속에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갖게 된 절대 고립의 시간 속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지 않을까. 꽃이 피기에 봄이 오는 것처럼, 우리가 더 성숙해질 것임을 믿는다.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눈부신 봄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