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킬로미터

by 주형원

전국 봉쇄가 한 달 하고도 반이 지났다. 동네 마트나 약국을 제외하고, 산책이나 조깅 목적으로 집을 벗어날 수 있는 허용 거리는 집으로부터 1킬로미터. 그것도 외출 허가서와 함께 하루 한 시간 이내로만 가능하다. 1킬로미터. 성인 걸음으로 평균 십오 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결국 갈 수 있는 곳은 아무 곳도 없는 셈이다. 산책을 나가도 엎어지면 코 닿을 곳 이상은 못 간다는 사실은 안 그래도 우울한 상황을 더욱 우울하게 했다.


처음 한 달은 장만 보러 집을 나갔다. 회사 동료들이 집 근처 1킬로미터 미만으로 조깅을 한다고 할 때도. 그렇게라도 운동을 하는 게 낫다고 할 때도. 나가서 집 근처를 빙빙 돌 거면 차라리 안 나가고 말지 생각했다. 하지만 자택 격리 기간이 한 달이 넘어가자, 잠깐이라도 바람을 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특히 재택근무로 스트레스가 많은 날은 더욱 그랬다. 결국 남편과 함께 마실을 나가기 시작했다.


집으로부터 1킬로미터. 기껏해야 지하철을 타러 다니던 길 정도겠지라고 우습게 여겼지만, 그건 나의 무지였다. 요즘 남편과 산책을 하면서 집 근처 1킬로미터를 새롭게 발견 중이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 온 지 이년 가까이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1킬로미터 미만의 거리에 모르는 골목들과 전경이 이토록 많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오늘은 걷다가 작은 공원도 발견했다. 남편도 놀라서 말했다.


“이런 거리가 바로 집 뒤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단지 평소 다니던 길 말고 그 옆 골목이나 집 뒤의 길로 가는 것뿐인데도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나타난다. 어느새 탐험가로 변한 남편은 1킬로미터 탐방에 단단히 맛을 들였는지 신나서 다음날 계획까지 세운다


“내일은 오늘 왔던 반대 길로 가보자.”




그런 우리가 재밌어 남편과 함께 웃다가 문득 깨달았다. 남편과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몇 번이나 걸었으며, 주말에도 틈만 나면 걸으러 가는 나름 베테랑 도보 여행자들이다. 그런데 800킬로미터 거리의 그 먼 미지의 길은 걸으면서. 심지어 사하라 사막까지 걸으러 가면서. 정작 집 근처 1킬로미터는 궁금해한 적도 없었던 것이다.


집 밖 1킬로미터에도 다양한 전경이 있었다. 봄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같은 동네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다른 주거지들이 공존하고 있다. 대문부터 꽃으로 뒤덮인 예쁜 집도 보였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을 상상해 본다. 동네의 길들이 모두 작가 아니면 음악가의 이름을 따고 있어서, 골목 이름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조금 생소한 작곡가의 경우 찾아서 들어보기도 한다. 음악을 듣고 다시 그 골목을 지나면 왠지 반갑다.


왜 여태 알지 못했을까. 주옥같은 이야깃거리가 집 근처 1킬로미터에 이렇게 많이 깔려 있다는 걸.


몰랐던 게 당연하다. 여태까지는 지하철을 타러 가거나 아니면 장을 보러 가는 등의 철저한 필요에 의해서만 동네를 걸었기 때문이다. 주 중에는 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보통 늦은 시간이고, 주말에는 열심히 동네를 벗어날 궁리만 했으니. 우리 집 근처에 뭐가 있는지 알리가 없었다. 카페나 바가 없는 한적한 주택가 동네라 그저 조용하고 심심한 곳이라고만 생각했다. 얼른 이사를 가야지라는 생각으로 이 년째 살고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 또래 친구들처럼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에는 흥미가 전혀 없었다. 대신 걸어서 새로운 곳을 가는 것을 좋아했었다. 아직 길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치유할 수 없는 길치라 지금도 상황은 많이 나아지지 않았지만) 어린아이가 걸어서 얼마나 많이 갈 수 있었을까 싶지만, 한 번도 안 가본 길을 발견하면 그렇게 뿌듯했다.


동네라도 처음 가본 골목, 처음 본 개울가. 이 모든 것들이 신비한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져서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뛰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걷다가 집에 돌아올 때면 대단한 모험을 한 것 마냥 즐거워하고는 했었다. 그 아이는 어릴 때 꿈처럼 수만 마일을 날아 아프리카로 중동으로 남미로 유럽 등으로 세계를 다녔지만, 정작 어릴 때처럼 내가 사는 동네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보려는 호기심은 상실한 지 오래였다.


오히려 너무 많은 곳을 가고 너무 많은 것을 봐서. 웬만한 장소에서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길도 다니는 길만 다니고, 새로운 길을 걷고 싶을 때는 멀리 떠난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우리 집 주위 1킬로미터도 이곳을 떠날 때까지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모험은 바로 집 앞에서 시작한다는 표현이 있는데, 1킬로미터 이상을 나갈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이 되자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체감하고 있다.


어쩌면 한 번도 어렸을 때의 그 거리 이상을 벗어나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1킬로미터 미만에도 한참 왔다는 생각이 드는 거리가 있고. 반대로 엄청난 거리를 갔다고 믿었는데, 출발점으로부터 단 1킬로미터도 멀어진 적 없는 거 같은 거리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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