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 내 글이 나왔다

by 주형원

프랑스 전 국민 의무 자가격리 사주째. 처음 이 주간은 자택 근무로 진행되는 회사 일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일이 있어서 미치지 않았다는 게 더 맞는 말이다. 코로나의 위협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나치게 태평했던 사회가 단 하루 만에 전 국민 자가격리를 결정하고 전국에 이동 금지령을 내렸다.


사주 전 마지막으로 회사에 가서 자택 근무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 돌아오면서, 서로를 두려운 눈빛으로 피하는 사람들을 보며 오 년 전 파리에서 일어났던 테러를 떠올렸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하룻밤 사이에 죽었던 그날 저녁, 테러 장소와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내가 벌벌 떨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보았던 사람들 표정도 지금과 같았다.


범인이 잡히지 않았기에 누군지 알지 못하니 서로를 의심하며 두려워하던 그 눈빛. 금요일 저녁, 사람들이 한 주의 긴장을 풀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시간. 그런 시간에 콘서트장과 바, 레스토랑의 테라스를 공격한 목적은 단 하나였다. 일상에 두려움이 침투하는 것.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지구 끝으로 가는 길보다 더 길게 느껴졌던 그날 저녁, 나는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마주친 이들의 표정에서 그 두려움을 선명히 읽을 수 있었다. 의무 자가격리가 시작되기 전날 거리에서 그리고 지하철에서 마주친 이들은 거짓말처럼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자가격리가 시작되었지만 프랑스 그리고 주변 다른 국가들의 코로나 사망자 숫자는 급격히 치솟았다. 집에 갇혀 그런 뉴스들을 보면 두려웠다. 코로나도 두려웠지만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두려운 건 코로나 후였다. 완벽하게 모든 게 정지된 지금, 코로나가 끝나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남편을 부둥켜 앉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두렵다고. 그런 내게 매일 통화를 하며 안부를 묻고 함께 일을 하는 회사 상사는 말했다.


"생각하지 마. 생각하면 미쳐."




하지만 아무리 일을 한다고는 해도 집 밖을 못 나가는데 생각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첫 이주는 이러다가 코로나가 아니라 미쳐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행히 내 최고의 친구인 남편이 함께 있어서 미치지는 않았지만. 예정 이주가 끝날 때쯤 정부는 자가격리 기간을 이주 더 연장했다. 이주 더 연장하면 사월 중순에 끝나야 하지만 지금 많은 이들은 이번 달 말까지 혹은 다음 달까지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자가격리 삼주 째에 들어가자, 어느 정도 체념이 들며 이제는 버티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드라마라도 봐."


자가격리가 시작되고 집 밖을 나갈 수 없게 되자 내 주변은 모두 드라마 광이 되었다. 심지어 내 프랑스 상사도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 킹덤을 매일 저녁마다 보면서 몇 번이나 나한테도 보라고 권했다. "보면 어느 정도 스트레스가 풀려." 나는 원래 드라마를 잘 안 보기도 하지만 솔직히 처음에는 '지금 드라마 보고 있을 땐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웃기는 소리다. 내가 이 상항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그게 아니면 의료진처럼 도움이 되는 사람도 아닌 주제에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버티는 일이었다.


결국 의무 자가격리 삼 주째가 되어가자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내가 작년부터 보고 싶었던 유일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이상하게 이 드라마는 사이트에서 기사나 내용을 읽고 늘 보고 싶었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하면서도 늘 미뤘다. 그렇게 바쁜 일도 없으면서 나중에 한가할 때 봐야지 하면서. 지난 주말에 시작해서 난 <동백꽃 필 무렵>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몇 번씩 울었다 웃었다 하며 정주행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제 몇 날 며칠 저녁을 넋 놓고 보며 거의 막바라지에 다한 드라마를 늦은 새벽까지 몽롱한 정신으로 보고 있던 나는 남자 주인공 용식이가 까불이를 처음 잡고 경찰서를 나오면서 하는 말에 너무 놀라서 순간 숨을 멈췄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파리 시민들은 이 테러가 나도 고다음 날 카페 테라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고요. 니들이 우리에게 뺐어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거를 커피를 딱 마시면서 보여주는 거거든요."


이건 내가 오 년 전 파리 테러 직후 한 매체에 기고해서, 그날 네이버 메인에 하루 종일 올라가 있었던 글의 내용이었다. 기사의 제목도 <파리, 오늘도 우리는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신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2/0002011177 였다. 네이버 메인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기는 하는지 하루 만에 내 주변 사람들도 다 보고, 심지어 우리 엄마는 기사 맨 초반에 내 이름이 나와 있음에도 딸 글인지도 모르고 읽었다.




그 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글을 오 년 만에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그것도 이런 상황에서. 나는 우연이라고 치기에는 너무도 절묘한 타이밍에 묘한 기분이 들면서 뭔가 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는 걸 느꼈다. 오 년 전에는 아직 책도 내지 않았고 브런치도 하지 않았을 때였다. sns에 글 한 번 올려본 적이 없었을 때였다. 그런데 테러 다음 날 미친 듯 저 글을 쓰고는 혼자서만 가지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학교 신문에도 한번 기고를 해본 적이 없던 내가 덜컥 한 언론사에 원고를 보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언론사의 기자에게 연락이 와 있었고, 기자는 내 글을 다른 데서 먼저 내지는 않았는지를 물었다. 아니라고 하니 알았다고 하고 그 이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 오후에 한국에서 친구가 연락이 와서 네이버 메인을 캡처한 사진을 보내며 "이 거 너 글 아니야? 네 이름 있는데"라고 물었다. 그렇게 네이버에 들어가 보니 정말 메인에 내 글이 떠 있었다.


테러 현장 가까이에서 느꼈던 공포감 그리고 두려움. 그 후 보았던 희망. 그런 것들을 글로 풀어놓고 공유하고자 했던 것은 내가 느낀 것을 내가 모르는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었고 또 나눠야 한다는 강한 충동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받았던 충격과 두려움으로부터 자가 치유하고 있었던 거 같다. 누군가 그랬다. 이야기 되어지는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고.


그 글을 또 다른 두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오랜만에 본 드라마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동백꽃 필 무렵의 시나리오 작가가 내 그때 글을 읽었었는지 아니면 주변 사람에게 내용을 들었었는지는 전혀 모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나를 지난 며칠 동안 울고 웃게 해 준 이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 용식의 저 대사를 들으며 진심으로 고마웠다. 누군가 이 새벽에 말해주는 거 같았다.


오 년 전 그때처럼 삶과 희망은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니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너무 두려워하지도 걱정하지도 말라고.


드라마 보기를 잘한 거 같다.





















이전 02화우리가 기억하는 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