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억하는 순간들

by 주형원

프랑스 전 국민 자가 격리 십 일째.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시간은 남편과 저녁에 와인 혹은 맥주를 곁들여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웃는 시간이다. 동네에서 장 보는 것 외에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기에 매일 꿈꾼다. 이 어두운 시기가 끝나면 어디를 가고 싶은지. 그리고 다짐한다. 앞으로는 결코 미루지 않겠다고. 코로나 바이러스와 의무 자가 격리 기간이 끝나면 가장 가고 싶은 곳은 파리 외각의 숲이다.


남편과 종종 가서 하루 종일 걷고 피크닉을 하고 나무 그늘에서 낮잠까지 잔 후 넉넉하고 깨끗해진 마음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그곳. 매번 계절이 변하고 있음을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그곳. 아무리 상처 받고 가도 비 온 후 밟는 숲처럼 푹신해진 마음에 다시 푸르른 새싹이 피어남을 느끼는 그곳. 우리의 아지트이자, 나의 영혼의 아지트인 그곳에 가고 싶다. 이른 새벽 깨어나는 빛이 숲을 통과하는 그 신비를 보고 싶다.


얼마 전부터 주말에 가려고 했지만, 매번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곤 했었다. 오늘은 비가 와서, 오늘은 피곤해서. 전 국민 자가 격리가 단 하루 만에 결정이 나고, 공식 이동 허가서 없이는 집 앞 슈퍼에 장도 보러 갈 수 없는 상황이 돼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갈 수 있을 때 가지 않았을까. 매번 미뤘을까. 그보다 훨씬 덜 중요한 것들은 매번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면서. 왜 약속이나 일이 없는 주말에 가면 되지라고 생각했을까.


그래도 우리에게는 다행히 집 밖을 나가지 않고도 함께 언제고 여행할 수 있는 수많은 추억들이 있다.


"사막의 일출이 떠올라. 우리 호주 사막 한가운데 있는 리조트에서 일했을 때 있잖아. 새벽에 출근하면서 봤던 사막. 세상에 완벽한 평화가 있다면 이거라고 생각했어."


"그래? 난 퇴근할 때 사막의 밤을 걸어서 들어오던 기억이 나는데. 마법 같은 순간이었어."


십 년도 훨씬 지난 기억들이 마치 어제처럼 생생했다. 우리는 이런저런 추억을 여행하다 십삼 년 전 시드니에서, 그 한 해의 마지막 날에 함께 거리에서 물건을 팔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온 우리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연말이라고 특별히 뭘 할 수 있는 돈은 없었다. 우연히 거리에서 그 해의 마지막 날 밤, 길에서 물건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모집하는 광고를 보고 지원을 했다.


새해 폭죽놀이가 터지는 그곳에서 날을 꼬박 새우며 불이 켜졌다 들어왔다 하며 반짝거리는 액세서리들을 길에서 파는 일이었다. 그 해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고 쏟아져 나온 인파를 상대로 거리 판매를 하는 일이라 시급이 괜찮았다. 남편과 나는 그렇게 그 해 마지막 밤을 수많은 사람들이 폭죽놀이를 즐기러 나온 그곳에서 함께 길거리 판매를 하며 보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정신도 없고 두렵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행복했다.


많은 이들은 우리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외쳤고 심지어 다가와 포옹을 하며 해피 뉴 이어를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도 그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하며 수많은 인파와 수도 없이 서로 축하를 했다. 그렇게 꼬박 길에서 밤을 새우고 녹초가 돼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몰랐다. 그 길고 긴 밤을 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는.


"그런데 그때 레스토랑은 정말 별로였어."


"무슨 레스토랑?"


"기억 안 나. 우리 그때 벌었던 돈으로 나름 근사한 저녁 보내려고 시드니 시내에 있는 파노라믹 레스토랑 뷔페에 갔었잖아."


남편이 말하자 그제야 기억이 날 듯 말 듯했다. 그리고 신기했다. 밤을 꼬박 새우며 거리에서 물건을 팔며 보냈던 기억은. 우리에게 고생한다며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했던 이들과 멀리서 들려오던 폭죽 소리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왜 그렇게 벌었던 돈으로 호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었던 나름 근사한 레스토랑은 전혀 기억조차 나지 않을까. 그때는 분명히 거기 가겠다고 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을 텐데.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은 늘 멋지고 근사한 것들이 아니다.

나를 만들고, 우리를 만든.

아무것도 없었고 또 그래도 괜찮았던.


오직 사랑만 있는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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