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의 격리를 마치며

by 주형원

3월에 프랑스 정부가 이 주간 국가 봉쇄를 발표할 때만 해도 상상도 못 했다. 이주가 삼주가 되고 삼주가 한 달이 되고, 그 한 달이 결국 두 달이 되리라고는. 거의 한 계절을 이렇게 나리라고는. 처음에는 이주가 지나가기를 손꼽아 기다리다가, 그 이주가 불확실하게 연장되기를 반복하면서. 어느 순간 시간 개념을 잃어버렸다.


버티는 수밖에 없다는 주변 이들의 조언처럼 이 시간을 버텼다. 다행히 나도 남편도 아픈데 없이 보냈다. 늘 삶이 흔들릴 때면 그랬듯 글쓰기가 이 시간을 버티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런저런 일로 바쁘다며 올해 초 브런치를 소홀히 했었는데, 은유 작가님 말처럼 불안감이 삶을 엄습해오자 본능적으로 다시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 또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서 잠시 벗어나. 온전히 지금 이 순간, 쓰는 행위 그 자체에 몰입할 수 있었다. 몇 년 만에 본 드라마에서 오 년 전 비슷한 상황에서 썼던 글이 나오는 기적도 경험했고. 또 그 경험을 적은 글을 브런치 팀에서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내 정말 많은 분들이 읽고 반응해 주시는 또 다른 기적도 경험했다.


모두 글을 썼기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힘내라는, 함께 이겨내자는 격려와 본인들의 경험을 담은 소중한 댓글들을 읽으면서 여러 번 눈물 흘렸다. 남편 외에 아무도 만나지 못한 지난 두 달의 시간 동안 외롭지 않았던 건 브런치를 통해 소통할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다른 작가님들의 글도 열심히 찾아서 읽었다.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흩어진 브런치 작가님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사는 곳도, 삶의 모습도 다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영영 끝나니 않을 것 같던 국가 봉쇄가 드디어 내일이면 끝난다. 한국의 지인들이 물었다.


“어때? 설레지 않아?”

“좋겠네?”


봉쇄 초반에 내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를 잘 알기에 하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봉쇄 해지를 앞둔 지난 한 주 동안 나는 전혀 기쁘거나 설레지 않았다. 그토록 손꼽아 기다렸던 시간이 찾아왔는데.


충격이었다.


내가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싶어, 프랑스 다른 친구 그리고 동료와 말을 해보니 다들 나와 비슷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남편은 아침에 읽은 기사라며 말했다.


“위험하니 집에서 나가지 말라는 말만 두 달 가까이 듣다 보니, 다시 집 밖으로 나가는데 무의식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거래.”


기사에서는 국가 봉쇄 해지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로 여전히 하루에도 몇 백 명의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사회에서 불안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프랑스보다 먼저 국가 봉쇄를 해지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봉쇄가 완화되자마자 확진자 수가 치솟아서, 몇몇 지역에서는 이틀 만에 다시 봉쇄를 도입했다고 했다. 초반에 국가 봉쇄를 발표하면서 마크롱 대통령은 '지금 우리는 전쟁이다'를 거듭 강조하며 반복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전쟁은 아직 안 끝났는데, 이제는 그 전쟁터로 나가라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전혀 겪어보지 못한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두 달 동안 모든 게 완벽하게 정지되었다. 한 번도 멈춘 적 없던 사회가 두 달을 멈췄는데, 과연 같을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었다. 코로나가 완전히 혹은 거의 종식된 상황이라면 또 몰라도, 조금 둔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이 사회에서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봉쇄 직전처럼 서로가 서로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볼까.




두 달 전만 해도 굳게 믿었다. 봉쇄가 풀리고 여느 때처럼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출근할 때면 이 모든 상황이 끝났겠지. 봉쇄 기간이 이렇게 길어질지도 몰랐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잘 버텼다고 서로에게 미소 지으며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을 거라고. 이 멈췄던 시간만 끝나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정말 버텨야 하는 시간은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현지 전문가들은 봉쇄가 끝나고 앞으로 한 두 달은 엄청난 혼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지난 두 달 동안 삶이 얼마나 불확실한지 경험했지만, 이제 그보다 더 불확실한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많은 이들의 삶의 경로가 코로나로 벌써 변경되고 있고, 내 삶도 이로 인해 바뀌지 않으라는 보장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옷 정리를 했다. 계절은 봄을 훌쩍 지나고 있는데, 옷걸이의 옷들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봄과 여름 옷들을 꺼내면서, 몇 해 전 산 원피스도 옷걸이에 걸었다. 치장하는 게 늘어색해서 서른 하고도 중반이 넘어가는 지금까지 화장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고, 몇 해 전 수십 번을 망설이다 산 원피스는 한 번 입어보지 못한 채 고이 모셔져 있었다. 원피스를 옷걸이에 걸으면서 결심했다.


올해 남은 시간 동안 아낌없이 예쁘기로.


코로나가 앞으로도 얼마다 더 오래갈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봉쇄 해지 이후에 일어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울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기로.


그나저나 두 달 동안 살이 너무 쪄서 원피스는커녕 맞을 옷이 있을지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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