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는 길

by 주형원

지난 주말에는 드디어 두 달 동안 그토록 꿈꾸던 숲에 갈 수 있었다.


남편과 내가 주말이면 피크닉을 준비해서 종종 가곤 하는 파리 외각의 숲이다. 봉쇄가 시작되자마자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자, 봉쇄 내내 그토록 꿈꿨던 숲이었다.


집에 갇혀 있게 되자 여행이 그리웠다. 처음에는 먼 곳, 가지 못한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다가 봉쇄 기간이 길어질수록 가깝고 잘 아는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남편과 숲으로 피크닉을 가는 것. 한국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보는 것. 갈 수 있는 곳이 없고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들자. 오히려 정말 가고 싶은 곳과 하고 싶은 것들이 선명해졌다.


집 안에서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걸 보면서, 이 봄을 숲에서 맞지 못하는 게 더없이 아쉬웠었다.


소풍은 역시 김밥이기에 그 전날 미리 김밥 재료를 손질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미리 준비된 재료로 김밥을 말아 숲으로 갈 계획이었다. 봉쇄가 해지되었다고는 하지만 카페와 식당 및 문화 시설은 여전히 문을 닫았고, 집으로부터 100킬로미터 이상은 벗어나면 안 되기에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숲은 다행히 100킬로미터 이내에 있었는데, 그래서 파리 시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숲으로 몰려들었다. 우리는 인파가 몰리기 전에 숲에 도착해 우리만 아는 인적이 드문 숲길로 빠질 계획이었다.


단지 숲을 가는 것 뿐인데, 오랜 꿈을 이루기 직전처럼 기쁨과 설렘에 사로잡혔다.




비교적 이른 시간에 도착했음에도 숲의 초입 부는 적지 않은 이들로 붐볐다. 두 달 동안 집에 갇혀 있었는데, 다들 얼마나 확 트인 초록의 자연을 꿈꿨을까. 남편과 나는 들어가자마자 인적이 드문 숲길로 빠졌다.


몇 년 동안 고전적으로 지도와 나침반을 들고 숲을 찾아오다 보니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 말고도 다른 여러 길들을 알고 있었다. 물론 길치인 내가 아는 건 아니고, 길 담당 남편이 숲의 지리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대부분은 숲에 어쩌다 한 번 오거나 아니면 이번 기회에 처음 오는 이들이라 휴대폰으로 길을 찾으며 모두 같은 길로 가고 있었다.


북적거리는 인파에서 벗어나 고요한 숲길로 들어들자 이제야 정말 숲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행복이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이 순간에만 존재할 수 있는 거라면. 다른 무엇도 필요하지 않고, 누군가가 될 필요도 없으며, 지금 여기서 온전할 수 있는 거라면. 숲에 있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이었다.


좋아하는 브런치 구독자님이 예전에 ‘몸을 묶어두는 것은 정신의 폐쇄이기도 하지요'라는 댓글을 남겨주신 적이 있었다. 숲에 들어서자 묶여있던 몸은 물론이요, 폐쇄되었던 정신까지 이제야 환기되는 것 같았다.


숲에서는 늘 다시 태어났다.




전날 비가 와서 흙은 내딛는 발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비 온 다음 날이면 더욱 진해지는 숲 속의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고, 햇볕은 조명처럼 숲을 고루고루 돌아가며 비추고 있었다. 숲에서는 조연도 주연도 없었다. 숲의 공기와 바람은 어렸을 때 먹은 알사탕처럼 달콤했다. 숲에 가는 꿈. 지난 두 달 내내 변함없이 꾼 꿈은 이거 딱 하나였다. 세기의 팬데믹 동안 두 달 가까이 집에 갇혀 꾼 꿈이라고 치기에는 너무 단순할지 모르나.


그때는 이 꿈도 엄청나게 커 보였다. 나는 꿈이 이뤄진 순간들을 기억한다. 대부분의 꿈은 꿈이 이뤄지는 순간보다, 꿈을 꿀 때가 더 행복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난 두 달 동안 꿈꿨던 순간보다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행복했다. 대부분 꿈들은 늘 이루고 나면 다음 단계가 있었다. 욕심은 끝이 없었고, 꿈도 변해갔다. 발전이라고 했지만 변질이었다.


숲에 가는 꿈에는 다음 단계가 없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우리는 피크닉 장소를 정했다. 숲에서는 걷는 것만큼이나 멈추는 시간도 중요했다. 김밥이랑 삶은 달걀을 꺼내 먹었다. 꿀맛이었다. 맛있게 먹고 편하게 누웠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바람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감탄하며 말했다. "햇살로 반짝이는 이파리들을 봐봐." 아무리 고급 매트리스라고 할지라도 숲 속 땅 위에 누운 것만큼 내 몸에 착 달라붙지는 않았다.


그렇게 어느새 스르르 낮잠이 들었다 깨어서 다시 걸었다. 숲을 떠날 때는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를 떠나듯 아쉽고 슬펐다. 집에 가면서 남편에게 고맙다고 했다. 덕분에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고. 남편이 숲길을 잘 알아서 북적거리는 숲이 아닌 고요한 숲 속에서 평화롭게 보냈다고. 그러자 남편은 예상치 못한 답변을 했다. "오래전에 이 근처에서 몇 달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한 번도 숲속에 들어가 본 적이 없어."


"왜?"

"길을 잃을까 두려웠거든."

"이렇게 잘 찾는데 무슨 말이야."

"너 덕분에 길을 잃는 법을 배운 거야."


남편의 말을 들으며 사랑이란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길을 잃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또 기꺼이 길을 잃는 것


잃고 또 잃어야 프로스트의 시처럼 가지 않는 길, 우리만의 길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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