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생명의 가치

by 주형원

세계가 멈췄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어떤 전염병과도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이 전례 없는 상황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전염병은 늘 존재해 왔다. 이렇게 거의 동시에 전 세계를 강타한 바이러스는 없었을지라도, 대부분의 전염병은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으로 수 년에 걸쳐 옮겨갔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14세기 중세 시대에 퍼진 흑사병의 경우 유럽 전체 인구의 삼분의 일을 전멸시켰다. 20세기 초반에도 당시 유행하던 스페인 독감으로 5천만 명이 죽었는데, 이는 세계 1차 대전의 사망자 수보다 높았다. 당시 한국에서만 14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60년도에 확산되었던 홍콩 독감 또한 세계적으로 백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하지만 이토록 많은 국가가 실질적으로 거의 모든 활동을 중단한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코로나로 멈췄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생명을 위해 멈추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국가와 지도자들은 국가봉쇄가 자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선택했다. 경제가 아닌 생명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당연시 여기고 있는 이 결정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코로나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전염병이 돌 때도 그로 인해 세계가 멈춘 적은 없었다.


그만큼 우리는 개인의 생명이 무엇보다도 우선시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생명이 아니었다면 그 어떤 논리로도 멈출 수 없을 뿐 아니라 멈춰본 적도 없는 세상이었다. 만약 국가들이 다른 이유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전 세계 수억의 인구를 집에만 있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생명의 논리에는 그 아무도 반박할 수 없었다. 모두 멈춰야 살 수 있다는데,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봉쇄가 두 달 가까이 지속되고, 확진자들과 사망자들에 대한 통계 분석 결과가 발표되면서 예상치 못한 말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의 대부분이 평균 자연사 연령대의 노인분들이라는 수치가 나오면서부터이다. 봉쇄 해지 일주일 후, 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들은 젊은 프랑스인들의 대화는 충격적이었다.


"거의 다 사신 분들인데, 왜 굳이 모든 걸 정지시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그분들이 몇 달 더 살 수 있도록, 나라 전체를 두 달 가까이 정지시킬 필요가 있었냐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다수가 아닌 지극히 소수이겠지만. 이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슬프고 또 씁쓸했다. 그 몇 달이 자신의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혹은 부모의 몇 달이라고 생각했어도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생명을 말할 땐 ‘나’ 혹은 ‘우리’였는데, 죽음은 나와 상관없는 이들에게만 일어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잠시 내가 여든 가까운 할머니라고 상상해 보았다. 삶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할 때. 과연 그 몇 달 혹은 몇 년이 큰 차이가 없을까. 오히려 충분히 남았을 거라 과신하고, 쉬이 흘려보내는 나의 지금보다 훨씬 값지고 소중하지 않을까.


생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었지만, 모든 생명이 다 동등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지는 않았다. 연로한 분들에게 코로나가 치명적인 건 사실이지만, 젊다고 결코 자신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코로나를 부정하며 봉쇄나 마스크 등의 정책을 도입하지 않았던 브라질의 경우 현재 젊은 사망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건 비단 젊은 사람들만은 아니었다. 여든을 바라보는 한 프랑스 할머니는 봉쇄 기간 중 말했다. "우리야 어차피 살 만큼 살았는데. 굳이 모든 걸 정지할 필요가 있을까." 할머니는 장기간의 봉쇄로 실업 혹은 파산 위기에 처할 젊은 세대를 자신보다 먼저 걱정하고 있었다. 인터넷에 한참 돌았던 글이 떠올랐다.


만약 코로나가 노인들이 아닌 젊은 사람들에게서 사망률이 더 높았다면, 우리 부모님과 조부모님은 어떤 것이든 해서라도 우리를 지키려 하셨을 것이다.




코로나가 중국 우환에서 처음 발생했을 때만 해도 대부분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일주일 만에 병원을 세우고, 도시 전체를 봉쇄했을 때만 해도. 모두 '그들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타임머신이 있거나 우리에게 미래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그 바이러스가 삼개 월도 안 돼 전 세계로 퍼져나가리라는 것을 알았다면. 모두 돕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적어도 지금 같은 대규모 지구촌 확산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중국에서 한국으로 번졌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서양 국가들은 '아시아'의 문제로 치부했다. 아시아의 문제라고 생각했기에, 아시아인들을 보면 피해 다녔고 심지어 위생 상태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깔보았다. 그러던 서양이 종국에는 코로나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되었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통제권을 벗어나 있었고, 그제야 부랴부랴 너 나 할 거 없이 국가 봉쇄를 시작했다.


모든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이만큼의 피해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나 남미에 살고 있는 지인들은 말한다. 피해가 날로 커지고 있지만, 진단도 할 수 없어서 정확하게 집계가 안 되고 있는 것뿐이라고. 이 국가들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의 대부분이 빈곤 계층이다. 연령대가 아닌 가난이 사망의 기준인 것이다.


코로나는 전 세계에서 종식될 때까지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그럼에도 코로나 안정권에 들어가는 국가들은 코로나 극복을 자축하는 분위기다. 봉쇄 기간 중 파리 길상사 혜원 스님이 부처님 오신 날에 편지를 보내 주셨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우주만상의 모든 존재가 인드라망처럼 하나로 연결되어있음을 우리에게 각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스님의 말처럼 코로나로 우리는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모든 생명은 다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Image par Pexels de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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